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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서출판 다른 Jun 03. 2019

첫 장면에 꼭 필요한 열가지 재료

소설가를 위한 소설쓰기

소설을 쓸 때 첫 장면에 꼭 필요한 열 가지가 있다. 


첫 장면에서 가장 중요한 네 가지 

1. 계기적 사건 

표면적 갈등을 불러일으키며 갈등의 첫 불씨를 지피는 계기적 사건은 플롯의 중요한 일부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인공은 이런저런 행동을 한다.

 알라딘은 자스민과의 오해를 풀기 위해 궁전으로 몰래 잠입하는데 이것은 악당 자파의 눈에 띄게 되는 계기가 된다. 


2. 표면적 갈등

계기적 사건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생긴다. 주인공이 행동하게 하고 앞으로 더 깊은 갈등이 서서히 밝혀지는 과정에 시동을 건다. 더 큰 갈등으로 진화해서 다른 많은 문제를 낳는다. 뒤이어 나올 갈등들은 표면적 갈등에서 유기적으로 파생되어야 하고, 근본적 갈등과 단단히 연결되어야 한다. 

알라딘이 자파의 계략에 의해 램프를 소유하게 되면서 램프가 많은 갈등들의 시발점이 된다. 

3. 근본적 갈등

타인의 시선으로 자신의 가치를 평가하고 자신의 신분을 비천하게 생각하는 것이 알라딘의 가장 근본적인 갈등이었다. 


근본적 갈등은 소설 내내 인물의 심리에 계속 영향을 준다. 표면적 갈등을 이끌어내는 원동력이다. 결말에서 주인공이 해결해야 하는 궁극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계기적 사건은 잠재된 문제를 터뜨리거나 새로운 문제를 일으켜 갈등을 드러낸다. 또한 나머지 서사에서 근본적 갈등이 서서히 밝혀지는 과정의 출발점이다. 나머지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주인공은(그리고 독자는) 갈등의 본질에 더 다가간다. 


4. 설정 

다음 장면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독자에게 명확하게 알린다. 대화로 소설을 시작하지 않는 편이 낫다. 대화로 시작하게 되면 독자가 인물들이 어떤 관계이며 어떤 맥락에서 말하는지 파악하기 위해 처음으로 돌아가야 해서 가독성이 떨어진다. 따라서 배경 설명은 빼거나 최소한만 해야 하며 앞으로 닥칠 곤경에 관한 단서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꼭 들어가야 한다. 예를 들어 한 쌍의 남녀가 식당에서 서로 마주 앉아 있는 장면을 쓴다면 여자는 대화를 시도하지만 남자는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도입부에서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재료들

5. 배경 설정(이전 이야기)

초보 작가가 첫 장면에서 가장 많이 실수하는 부분이다. 계기적 사건이 벌어지기 전에 있었던 모든 일이 들어간다. 편집자 대부분이 가장 읽기 싫어하는 내용이며, 출간을 거절하는 가장 주된 이유가 되기도 한다. 배경 설명을 도입부에서 아예 빼거나 계기적 사건에 꼭 필요한 만큼만 집어넣어야 한다. 배경 설명은 소설이 어느 정도 전개된 뒤에 아주 조금씩 서사 여기저기에 흩어놓아야 한다. 


6. 아주 뛰어난 첫 문장

첫 문장에 엄청나게 공을 들여야 한다. 독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겨야 한다. 내 단편소설「동네의 험한 구역The Bad Part of Town」의 첫 문장이다. '그는 성질이 하도 고약해서 그가 서 있는 곳이 곧 동네의 험한 구역이 되었다' 이런 문장을 읽으면 그다음 이야기를 읽지 않고는 못 배기지 않을까?


7. 문체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부사와 형용사는 쓰지 말자. 묘사를 더 잘하겠다는 생각으로 부사를 여러 개 이어붙이지 말자. 강렬한 동사와 구체적인 명사를 쓰는 것이 중요하다. '아름답다'같은 모호한 단어와 '빨리 달렸다'같은 의미가 중복되는 표현은 피해야 한다. 담백하게 쓰자. 


8. 인물 

핵심은 간결함이다. 인물의 외모를 길고 지루하게 묘사하거나, 그의 성격을 보여준답시고 짤막한 일화들을 쉴 새 없이 나열해서는 안 된다. 효과적인 수단은 설명이 아니라 인물의 행동이다. 예컨대 주인공이 구두쇠라는 사실을 꼭 독자에게 알리고 싶더라도, 어린 시절 푼돈을 아낀 일화를 구구절절 들려주거나 그가 불쌍한 수전노라고 직접 말하지 말자. 대신 그가 쩨쩨하게 '행동하는'모습을 간결하게 보여줘야 한다. 주인공이 사탕 뽑기 기계의 잔돈 출구를 뒤지는 장면 같은 것 말이다. 한 번에 너무 많은 인물을 등장시켜도 안 된다. 소설이 막 시작되었는데 이런저런 인물이 계속 등장하면 독자는 머리가 핑핑 돈다. 


9. 배경(무대)

도입부에는 배경, 이야기의 무대가 아주 조금이라도 묘사되어야 한다. 생생하게 느껴지게 쓰되 정말 중요한 세부사항만을 간략하게 묘사한다. 그래야 독자를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인다. 세세한 묘사는 뒤로 미루자. 


10. 전조 

도입부의 전조는 앞으로 닥칠 사건이나 장애물에 대한 단서다. 마지막 순간에 아주 넓고 깊은 계곡을 건너뛰어 모두를 구하는 주인공이 나오는 이야기를 쓴다면 이런 결말과 연결 짓기 위해 도입부에서 주인공이 올림픽 멀리뛰기 동메달리스트라는 사실을 언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조는 도입부에 무조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며 장르에 따라 달라진다. 


(영화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레스 에저턴 Les Edgerton
미국의 소설가. 소설은 물론 시나리오, 에세이, 기사 등 다양한 글쓰기를 시도하고 즐긴다. 단편소설 「그것과는 다르다 IT’S DIFFERENT」, 「내가 생각하는 좋은 것들 MY IDEA OF A NICE THING」 등의 소설을 발표하고 지금까지 19권의 책을 썼으며, 푸시카트상, 오 헨리상, 에드거 앨런 포상 등 유수의 문학상 후보에 올랐다. 미국 털리도대학교에서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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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를 위한 소설쓰기 1: 첫 문장과 첫 문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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