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3명의 거장, 34개의 질문, 그리고 919개의 아이디어
《작가라서》: 303명의 거장, 34개의 질문, 그리고 919개의 아이디어
프랑수아 모리아크
제가 쓰고 있는 기법에 대해 스스로 질문한 적이 거의 없습니다. 일단 글을 쓰기 시작하면, 중간에 멈춰서 제가 이야기에 너무 직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는 건 아닐까, 등장인물들에 대해 지나치게 많이 알고 있는 건 아닐까, 다시 생각해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저는 완전히 단순하게, 자연스럽게 글을 씁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나 할 수 없는 일에 선입견을 갖지도 않습니다. 제가 저런 질문들을 지금 자신에게 한다면, 그것은 누군가 저에게 묻기 때문입니다. 주위의 모두가 저에게 묻기 때문입니다.
저보다 젊은 소설가들은 기법에 굉장히 집착하는 것 같습니다. 좋은 소설은 외부에서 요구하는 특정한 규칙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사실 그런 집착은 창작 과정을 방해하고 당혹감을 줍니다. 위대한 소설가는 자기 자신 외에는 그 누구도 의지하지 않습니다. 마르셸 프루스트는 앞선 작가 중 누구와도 닮지 않았고 어떤 계승자도 남기지 않았으며 그럴 수도 없습니다. 위대한 소설가는 자신의 틀을 깹니다. 그 깨진 조각은 당사자만 사용할 수 있지요. 오노레 드 발자크는 ‘발자크식’ 소설을 창조했습니다. 그 문체는 오직 발자크에게만 적합합니다.
캐서린 앤 포터
저는 쭉 문장가로 불렸지만 그러다가 실제로 제 머리를 쥐어뜯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저는 그냥 문체를 믿지 않습니다. 문체는 자기 자신이에요. 오, 원한다면 문체를 계발할 수는 있을 겁니다. 그러나 계발된 문체일 뿐이죠. 그저 인위적이고 강요된 문체에 불과하며 그것으로 누구도 속일 수는 없을 겁니다. 계발된 문체는 가면과 비슷합니다. 그것이 가면임을 모두 알고 있으며, 조만간 진짜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아니면 ‘진짜 모습을 도저히 보여줄 수 없어 자신을 숨길 가면을 만들어낸 사람’이라는 실체라도 보여주게 돼요. 문체는 곧 그 사람입니다. 제가 아는 한 아리스토텔레스가 먼저 그렇게 말했고 그 뒤로 모두가 똑같은 말을 했는데, 반박할 여지가 없는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작가는 문체를 창조하지 않습니다. 글을 쓰면서 스스로를 발전시키지요. 저의 문체는 제 존재의 소산입니다.
데이비드 미첼
SF소설은 대개 인간을 대체하는 기기를 활용합니다. ‘엔터프라이즈’ 컴퓨터는 실체 없이 떠다니는 단조로운 목소리죠. ‘할HAL’은 전형적인 ‘엔터프라이즈’ 컴퓨터지만 클리셰cliché 파괴의 달인인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손을 거치며 다듬어졌습니다. 우리는 ‘할’이 독창적인 기기라고 말하지만 사실 ‘할’은 기존 방식과 새로운 방식, 친숙한 것과 파격적인 것이라는 양극으로부터 동력을 공급받는 전동기가 아닐까요? 새뮤얼 골드윈은 “새로운 클리셰를 만들자”라고 했어요. 어머니처럼 다정하던 ‘할’이 어떻게 인간의 목숨을 위협할 수 있단 말입니까? 불가능한 일이지만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독창적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요소가 평면적이고 진부하다면 이렇게 해결해보세요. 말이 안 되는 정반대 요소를 찾아내서 말이 되게 혼합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