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란 인물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대화를 쓸 때는 왜 생각이 많아질까?
평소에 이야기를 나눌 때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열심히 생각하는가? 힘들여서 말을 하는가? 단어 하나하나를 정확히 발음하고, 뜻을 분명하게 전달하고, 진심을 드러내거나 감출 말투를 고르고, 말을 보완할 몸짓을 곁들이고, 직접 입을 열지 않아도 되도록 다른 사람에게 발언권을 넘기려 골치 아프게 머리를 쓰는가? 생각만 해도 진이 빠진다. 길가에 서서 이웃 사람과 간단히 대화할 때는 당연히 이런 식으로 기운을 빼지 않는다. 하지만 소설 속 대화를 쓸 때는 그렇게 하게 된다. 그래서 대화쓰기가 그토록 어려워지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어렵지 않다. 어렵게 만드는 건 바로 작가 자신이다. 우리는 자라면서 일종의 ‘어법’을 배워 체득했다. 어법에 맞게 말하면 칭찬을 받았고 틀리게 말하면 야단을 맞았다.
“엄마, 소리 안 질러도 다 들리거든.”
“이 녀석, 엄마한테 그게 무슨 말투야.”
“엄마, 걘 또라이야.”
“그런 상스러운 말은 쓰지 마. 점잖지 못하게.”
그래서 지금의 우리가 되었다. 올바로 말하는 법을 안다고 생각하기에 일상 속 대화에서는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막상 자리에 앉아 종이 위에 대화를 써보려고 하면 갑자기 자신감이 떨어지면서 자신의 불완전함에 직면한다.
어쩌면 진짜 문제는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대화를 쓸 수 있을까?’ 하고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내가 올바로 말하고 있나?’ 하고 두려워하는 것일지 모른다.
내가 분명히 아는 사실은 ‘참선’하는 태도로 접근하면 이 과정이 좀 더 수월해진다는 것이다. 어떤 종류의 대화든, 그 대화를 쓰려는 순간에는 잊어버릴 줄 알아야 한다. 무엇을? 바로 대화를 쓰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물의 내면에서 말하기 시작하라
작가는 인물의 내면에 젖어들어 그 인물이 되어야 한다. 인물의 내면에서 말하기 시작해야 한다. 『작가의 목소리를 찾아서 Finding Your Writer’s Voice』의 저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위대한 배우는 자신의 말투를 내려놓고 다른 사람의 목소리로 말할 줄 안다. 인물에게 몰입해 그 인물을 다룰 때, 작가는 머릿속에 들어 있는 무의식적인 목소리, 즉 평소 자신의 말투를 나오게 하는 목소리를 버리고 그 인물의 목소리로 말한다.”
이 말은 마치 빙의라도 하라는 것처럼 들린다. 참선에서 뉴에이지로 가버린 셈이다. 뭐라고 불러도 좋다. 어쨌든 효력이 있기 때문이다.
미리 말해두는데 ‘올바른’ 방식은 없다. 다른 글쓰기 교사들에게 어떤 말을 들었건, 다른 작법서에서 어떤 내용을 읽었건 상관없다. 오직 ‘자신의’ 방식이 있을 뿐이다. 자신의 방식이 ‘올바른’ 방식이다. 그리고 작가로서 우리가 할 일은 특정한 대화를 쓰는 데 필요한 내면의 목소리에 도달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어떤 목소리라도 좋다. 물론 자료를 조사하고, 작법서를 읽고, 영화를 보고,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어떻게 말하는지 엿들어볼 수도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인물은 우리의 내면 어딘가에서 나타난다.
자기 자신에게, 그리고 꾸며냈든 실존하든 소설 속 인물에게 충실하고 싶다면 그에게 목소리를 만들어 줘야 한다.
일단 인물이 우리 밖에 있지 않고 우리 속에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면, 어떤 인물이건 대화를 쓰는 ‘방법’의 신비를 풀 수 있다. 인물을 외부에서 접근하는 대신 우리 내면에서 끌어내면, 대화쓰기는 자연스러운 과정이 된다.
작가가 할 일은 ‘진짜 같은’ 대화를 쓰려는 마음을 먹는 것뿐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면 인물의 진실한 목소리를 담은 대화를 쓰며 뿌듯함을 느낄 것이다. 어려운 일만은 아니고, 심지어 재미도 느낄 수 있다.
《소설쓰기의 모든 것》 개정판이 출간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