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작가로서 자기 자신만을 위해 글을 써야 한다고 얼마나 많이 말해왔는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신을 기쁘게 해야 한다고 말이다. 가족도, 친구도, 동료도, 지인도, 적도 아니다. 자기 자신과 백지만 있을 뿐이다.
이 말은 어느 만큼은 사실이다. 진실성을 추구하려면 우리 안에 살고 있는 진실을 바탕으로 글을 써야 한다. 그러나 섬세한 균형감이 필요하다. 자기 자신에게 진실해지는 데 몰두하고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는 데는 신경쓰지 않으면 이기적인 작가가 되고 그러면 독자를 따돌리게 된다. 독자가 이를 느끼지 못하리라 생각하면 안 된다. 이기적인 작가는 이미 너무 많다.
내가 늘 좋아하는 성경 구절은 “……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마태복음 20장 26절)다. 나는 위대함과 섬김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소설을 쓸 때마다 독자를 배려하는 법을 터득하면 독자에게 힘을 주고 그의 삶을 바꿔 준다는 측면에서 우리는 소설로 독자를 섬길 수 있다. 내게는 이게 소설 쓰기의 전부다.
열정과 진정성 있는 인물의 대화는 독자의 삶을 정말로 바꿀 수 있다. 삶을 바꾸는 것, 이것이야말로 많은 작가가 글을 쓸 때 생각하는 목표가 아닌가? 허구의 인물을 표현해서 누군가의 삶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면 정말 멋지지 않을까.
나는 그런 변화를 경험했다. 내 삶을 바꾸고 나를 더 나은 사람, 좀 더 애정이 넘치는 사람으로 만들어준 대화를 얼마든지 떠올릴 수 있다. 래리 맥머트리의 『애정의 조건』에서 엠마가 죽어가며 아이에게 한 말도 그중 하나이다.
“그러니까, 이 엄마가 널 사랑했단 걸 기억하게 될 거야. 네 생각이 변했다고 엄마에게 말하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네 모습이 떠오르는구나. 그러니 네가 엄말 사랑하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고, 지금 말해줄게. 네가 나중에 조금도 의심하지 않도록. 알겠니?”
죽어가는 그 짧은 순간에 엠마가 아들 토미에게 남긴 이 말이 내게는 잊혀지지 않는다. 토미는 심술을 부리고 마음을 닫아버린다. 엄마가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화를 낸다. 엠마는 그 모든 것을 마음에 담아두지 않고 엄마로서 아들의 행동과 닫힌 마음 너머에 숨은 진심을 알고 있다고, 엄마를 깊이 사랑하지만 지금은 그 사실을 잊고 있으며 나중에 기억해내리란 것을 알고 있다고 말해준다.
나는 엠마의 말을 기억해두었다가, 지금은 장성한 내 아들이 나에게 마음을 닫고 다가오지 않으려 할 때 그대로 들려줬다. “네가 엄말 사랑한단 걸 알아.” 나는 몇 번이고 아들에게 말했다. “네가 엄말 사랑한단 걸 알아.” 이것은 지금 우리 관계에서 내가 아들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이다.
우리도 독자가 기억할 만한, 어쩌면 영원히 간직할 만한 대화를 쓸 수 있다. 작가라면 누구나 독자와 교감하고 독자의 마음에 아로새겨질 대화를 써서 독자를 섬길 수 있다고 격려하고 싶다.
《소설쓰기의 모든 것》 개정판이 출간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