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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감’을 익히자

by 도서출판 다른
10년 전쯤 나는 이성을 완전히 잃은 채 골프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처음 2년 동안 책과 테이프를 사들이고 잡지를 구독했다. 공부와 연습을 할 만큼 했으니 80타 정도는 거뜬히 깰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골프를 치는 독자라면 지금 웃음을 터뜨리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재미도 없었다. 아예 다 때려치우고 자수나 배우는 편이 나을 듯했다.

실은 나는 온갖 기법과 요령과 공식과 영상으로 머리를 꽉 채웠다. 그리고 골프를 칠 때마다 그 모든 요소를 하나하나 기억해내려고 노력했다. 완벽하게 퍼팅하는 22단계와 탄착점에서 기억해야 할 가장 중요한 13가지 항목 따위를 말이다.
미친 짓이었다.


골프채를 쓰레기통에 내동댕이치기 직전에 나는 월리 암스트롱이라는 골프 강사를 만났다. 월리는 빗자루와 옷걸이와 스펀지처럼 간단한 생활용품을 이용해 골프 경기의 다양한 측면에 대한 ‘감’을 익히게 해주는 교수법으로 유명하다.
그의 말에 따르면, 스윙에 대해 생각하며 골프채를 휘두르면 길을 잃고 만다. 긴장감이 오른다. 출구가 없는 이론의 미로에 빠진다. 그러나 감을 익혀두면 기법과 요령은 모두 잊고 단순하게 경기에 임할 수 있다. 감을 체득한 몸이 알아서 움직인다.
월리의 말이 옳았고 그 후로 나는 골프를 즐기게 되었다. 아직 80타를 깬 적은 없지만 재미도 있고 창피한 짓을 저지르지도 않는다.

그러니까 여간해서는 그러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좋은 소설을 쓰는 건 골프를 제대로 치는 것과 매우 비슷하다. 똑같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소설 쓰기의 다양한 측면을 가르쳐주는 책과 논문은 끝없이 나온다. 그러나 ‘글을 쓰면서’ 그 모든 것을 생각하려고 하면 긴장감이 높아질 것이다.
작가 브렌다 유랜드의 말처럼 “자유롭고 신나게” 쓰지 못한다. 게다가 재미도 전혀 없을 것이다. 자신이 쓴 글을 쓰레기통에 내던지고 싶을 것이다(솔직히 수많은 작가가 이런 기분을 느끼지만, 실행에 옮기면 실직자가 될 위험에 처할 뿐이다).
그러니 글쓰기의 ‘감’을 익히길 바란다. 글을 쓰려고 자리에 앉았다면 기법은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그냥 쓰자. 흘러나오게 놔두자. 나중에 다시 그 부분으로 돌아가 고쳐 쓰자.


글을 쓰고 있지 않을 때는 꾸준히 작법을 배우자. 지식의 창고를 확장하자. 머릿속에 든 여러 기법을 활용해 자신의 글을 분석하자. 그러나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는 글만 쓰자. 현재 배우고 있는 기법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올 거라고 믿자.
혹시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문제를 파악하는 법을 터득할 수 있다. 바로 이 점이 자체편집과 고쳐쓰기의 핵심이다. 배우고, 느끼고, 쓰고, 분석하고, 고치고, 글을 좀 더 향상시키는 것이다.
반복해서 여러 번. 평생 동안.




소설쓰기의 모든 것》 개정판이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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