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강의: 묘사와 배경

한정영 작가

by 도서출판 다른
배경이란, 아주 간략하게는 공간과 시간에 관한 것이며, 우리가 소설에서 그리려는 인물이 구체성을 확보하는 지점입니다. 나아가 문학적으로는 리얼리티를 확보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며, 이야기의 개연성과 완성도에 기여하지요. 그러므로 훌륭한 배경은 그 자체만으로도 독자들의 기억에 오래 남습니다.



소설에 등장하는 공간은 아무리 흔한 곳이라도, 인물이 그 배경 안에 들어서는 순간 “특별한 공간”이 되고, 또 그래야 합니다. 사실 이 말은, 지금 주인공이 발 딛고 선 곳이 “단순한 장소 이상”(244쪽)이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물론 그래서 아주 특별한 공간을 선호하는 작가들이 있습니다. 공간 자체가 특이하고 낯설면 그것만으로도 호기심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작가들이 유독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이기도 합니다.
공간의 장르라 일컫는 영화에서 유독 배경에 신경을 쓰는 이유 역시 그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기가 좀 많았던 영화나 드라마가 끝나면 그 장소가 곧장 명소가 되곤 합니다.


그러나 무조건 낯선 공간을 찾아다닐 수는 없습니다. 자신이 쓰려는 그런 낯선 공간이 어딘가에 늘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설사 그런 공간을 찾았더라도 우리가 쓰는 이야기가 그 공간과 어울리는지, 또 재미있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대중 독자에게 아주 익숙한 공간이라도 어떤 시간─낮인지 밤인지, 새벽인지에 따라 독보적인 공간으로 재창조될 수 있습니다.(2장 세부사항: 어떻게 수집할까?) 흔히 볼 수 있는 집 앞 사거리 교차로의 자정 무렵을 떠올려 봅시다.
하필 그때 비가 내리거나 유독 심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면 어떨까요? 아니, 100년 전으로 시간을 되돌리거나, 30년 후로 건너뛴다면?


내가 쓰려는 글의 좋은 배경이란, 일상에서부터 찾아 나가면 됩니다. 그 공간을 변형하면 되니까요. 작가들이 종종 게을러 보이기는 하지만 그 정도의 상상력이 없지는 않습니다. 심지어 SF 소설이나 영화에 등장한 그 놀라운 배경들도 사실은,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배경의 창조적 변용입니다.

Y=F(x)

이 공식에서 Y는 이야기에 가장 적확한 공간이며, 작가가 창조하려는 공간입니다. 그리고 F는 내가 경험한 공간이며, 함수 x는 시간을 비롯한 다양한 조건들입니다. 그렇습니다. 론 로젤이 말하듯 “하늘 아래 새로운 이야기는 없”습니다. “작가가 선택한 장르, 작가가 만든 배경, 작가가 쓴 묘사와 세심한 문장이 꾸미는 그 독특한 전개가 새로울 뿐”(263쪽)이지요.


이를테면 아무리 익숙한 공간이라도 x값을 적확하게 변용하고 묘사하면 필요한 배경을 얻어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때 적확한 묘사란 “독자도 현장에 현장에 있어야 한다”(31쪽)라는 말을 충족시켜줄 만한 것이어야 합니다. 그러면 독자는 “그 안에 있고 싶어”하지요. 함께 즐기기를 원하니까요. 그러므로 묘사란 “소설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과 같습니다.
이를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오관(눈, 귀, 코, 혀, 피부)를 이용하는 것입니다─사실 이러한 진술은 대부분의 작법서에도 공통적으로 실려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작가들은 이에 소홀한 편입니다.


왜냐하면 첫째는, 인간은 누구나 외부의 정보를 받아들이고 판단할 때, 대부분 시각에 의존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잘된 묘사라는 것도 잘 살펴보면 대부분 시각적입니다. 더구나 시각적 묘사에 지나치게 의존하다 보면, 간혹 트리비얼리즘(사물의 현상이나 본질 대신 사소한 문제를 상세하게 서술하려는 태도)가 되고, 과할 경우에는 오히려 독서를 피로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주인공이 보는 대상─그것이 물건이든 사람이든─을 똑바로 쳐다보고, 냄새를 맡아보고, 들어보거나, 심지어 깨물어 보려는 시도를 해야 합니다.
두 번째 이유는, 이와 관련해서 사건 위주의 스피디한 전개에 지나치게 의존한 나머지 앞으로 달려갈 뿐 주변을 돌아보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인데, 특히 입문자들이 겪는 함정입니다.


그러나 오관을 이용하면 대상이 보다 구체성을 획득하면서 독자는 대상에 대해서 입체적으로 파악하게 됩니다. 그랬을 때 독자는 그 이야기 안으로 들어오게 되지요.(5장 감각적 묘사: 오감과 직감을 다루는 솜씨)
그러면 나아가 주제도 부각시킬 수 있습니다(이 말은 작가가 독자에게 바라는 바를 얻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특정한 분위기나 색을 강조하는 방법들이 그것입니다. 독자들이 작가가 표현하고 싶은 느낌을 떠올릴 수 있도록 그와 관련된 형용사들을 다양하게 사용하고, 비유도 그에 부응하도록 하는 것이지요.(9장 전개: 묘사와 배경을 통한 진전)
또한 좋은 묘사는 갈등을 심화시키는 데에도 유용하게 사용됩니다.


그러나 이에 앞서 문법적 구조를 이해하고, 문장을 만드는 각각의 단어와 어절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형용사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고 어떤 때에 쓰이는 게 효과적인지, 부사어를 최대한 절제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문장 부호의 역할은 어떤 것인지, 등등에 관한 것들이지요.(3장 글쓰기 도구: 올바른 사용법)
대부분의 입문자들이 감각적으로만 쓰면 멋지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말초적 신경만 자극할 뿐,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발전시켜 나가는 데는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다만 그것은 언어유희에 그칠 뿐입니다.
첨언하자면, 언어유희의 잘못된 나락으로 빠지는 경우는, 잘못된 비유법이나 억지스러운 상징들을 사용할 때도 많이 발견됩니다. ‘글을 잘 쓴다’라는 칭찬은 이야기를 잘 이끌어간다는 뜻이지, 말장난에 능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말장난은 도리어 자신이 많은 어휘를 알고 있지 못함을 폭로(?)하는 꼴이 되므로 자제하는 것이 좋습니다. 꾸미기 전에 정확하고 적확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무엇보다 소설에서는 “모든 단어와 구절은 효과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모든 것들은 “군더더기에 불과”하지요.(300쪽) 독자를 효과적으로 내 소설에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더 많이 쓰는 게 아니라, 혹시 버릴 것이 없나를 고민하는 게 우선입니다.
즉 소설에서는 “써야 할 것 못지않게 쓰지 말아야 할 것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런 것들은 대체로 “독서의 속도를 떨어뜨리고 독자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는 일”(338쪽) 외에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작가는 “모자람과 지나침”의 중간에 서서 적절한 마법을 부려야 합니다. 묘사가 우리의 소설을 볼 것 많은 이야기로 만들어주기는 하지만, 그 어떤 경우에도 잘 흐르고 있는 이야기를 방해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11장 정도: 모자라지도 않고 지나치지도 않게)


그러면 이제 첫 문장을 써볼까요? 아, 그 전에 첫 문장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다음 문장을 읽고 싶게 만드는 것”이라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시의 첫 문장은 신이 주는 것이라 했지만, 소설의 첫 문장은 간절함에서 나오는 것도 잊지 마시고요.



※ 본문의 괄호 표기된 출처는 《소설쓰기의 모든 것 2: 묘사와 배경》 입니다.




한정영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고, 같은 학교에서 연구교수를 지냈다. 지금은 서울여자대학교와 한겨레교육문화센터 등에서 강의하며, 청소년 소설로 《빨간 목도리 3호》, 《히라도의 눈물》, 《짝퉁샘과 시바클럽》, 《너희는 안녕하니?》, 《바다로 간 소년》 등을 썼고, 단편 〈변신-서울 2017〉은 《어린이와 문학》에서 제정한 4회 어린이와 문학상(2017)을 수상했다.
동화 《굿모닝 굿 모닝?》은 초등학교 교과서(2015)에 실렸다. 《바빌론의 사라진 공중정원》, 《거짓의 피라미드》를 시작으로 12권에 이르는 문명 판타지 동화를 쓰고 있다.




소설쓰기의 모든 것》 개정판이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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