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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탓할 사람은 없습니다

by 도서출판 다른
명예심은 ‘윤리 원칙에 충실할 때 나타나는 강한 도덕적 특성’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가망이 없는 상황에서도 올바른 행동을 이끌어내는 내적 자질이다.



영화 「하이눈 High Noon」에서 윌 케인은 작은 서부 마을의 보안관직에서 은퇴한다. 퀘이커 교도 아가씨와 결혼식을 올리고 함께 평온한 삶을 꾸리기 위해 떠나려는 참이다. 그런데 케인에게 두려운 소식이 들려온다. 그가 교도소에 보낸 살인자가 사면되었다는 소식이다.
그 살인자는 케인을 끝장내겠다며 마을로 오는 중이라고 한다. 게다가 이 무시무시한 일을 거들 다른 총잡이 세 명도 함께 오는 중이다. 케인은 마을에 머물러야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마을 주민들은 케인과 그의 아내를 마차에 태워 재빨리 마을에서 내보낸다.


1킬로미터도 가지 않아 케인은 고삐를 당긴다. 아내에게 돌아가야겠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으면 살인자들이 마을을 뒤질 것이다. 둘은 다른 주민들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서둘러야 한다.

그러나 진짜 이유는 더 깊은 곳에 있다. 가장 중요한 건 케인이 달아난다면 아내와는 물론이고 자신과도 평화롭게 살 수 없으리란 걸 자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치욕을 안고 살 수 없는 남자다. 그것이 죽음보다 더 견디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는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 아내(그레이스 켈리가 연기했다)를 잃을 위험을 무릅쓰게 된다. 천하의 그레이스 켈리를! 덕목이란 이렇게 한 사람을 지배하는 것이다.


영화의 핵심적인 순간은 3막이 되어 절정의 총격전이 벌어지기 직전에 드러난다. 케인은 조력자를 모으는 데 실패한다. 그가 그토록 열성을 바쳤던 마을은 그를 실망시킨다. 그는 혼자이며, 네 총잡이는 곧 도착해 그를 죽이려 할 것이다. 살아날 가망은 거의 없다.
마구간에서 그는 절망에 빠져든다. 무슨 짓을 한 건가? 무엇 때문에 아내와 미래를 포기했던가? 명예를 위해? 그게 무슨 가치가 있다고? 그는 말과 안장을 보며 말 등에 올라타 마을을 빠져나가야 하는 게 아닌지 생각한다.

그때 케인의 그늘 밑에서 이를 갈며 시기하던 젊은 보안관 보 하비가 나타난다. 속으로는 겁쟁이인 하비는 케인 대신 위인 행세를 하고 싶어 케인이 마을을 떠나기만을 바란다. 심지어 하비는 케인의 옛 애인을 차지하려 했지만 현재 그녀는 하비를 경멸하고 있다.
하비는 케인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직감하고 기쁜 듯이 말에 안장을 놓으며 말한다.


“당신을 탓할 사람은 없습니다. 당연하죠. 진작 이렇게 했어야죠.”


그 순간, 케인은 자신이 떠나면 어떻게 될지 깨닫는다. 수치심 때문에 그는 하비와 같은 사람이 되고 말 터였다. 육체는 살아 있더라도 사실상 삶은 끝장나고 말 것이었다.
케인은 말에 오르지 않겠다고 한다. 그러자 하비는 화가 치밀어 케인을 넘어뜨리려 한다. 둘 사이에 주먹이 오가고 결국 땅에 쓰러진 쪽은 하비다. 케인은 살인자들과 맞서기 위해 마을에 남는데, 그 후로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다면…
영화를 보길 바란다.


영화에서 케인에게 가장 중요한 전투는 마음속으로 고민하는 그 짧은 순간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드 몽테뉴가 말했듯 “영혼이 제 구실을 하는 이유는 겉치장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제외한 그 누구의 눈도 꿰뚫어보지 못하는 우리의 내면을 위해서다.”




소설쓰기의 모든 것》 개정판이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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