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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을 얕잡아보지 말자

by 도서출판 다른
『호빗 The Hobbit』, 『스타워즈 Star Wars』, 『반지의 제왕 The Road of the Rings』, 『스타트렉 Star Trek』, 『오즈의 마법사 The Wonderful Wizard of Oz』에 나오는 언어는 환상적인 이야기를 찾는 독자를 매료한다.



“포스가 그대와 함께하길”이라는 말은 대중소설이나 순수소설에서는 우스꽝스럽게 들릴 것이다. 현실 속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중소설과 순수소설 독자는 현실과 비현실을 구분한다.
대중소설과 순수소설을 쓸 때는 현실적인 요소를 집어넣어야 한다. 반면 SF소설과 판타지소설 작가는 현실이 아닌 내용을 쓸 수 있다. 이는 겉보기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작가들은 환상적인 대화를 쓰는 능력이 있지만 어떤 이들은 그렇지 않다.

J. R. R. 톨킨 같은 작가가 쓰는 환상적인 대화는 정말 진짜처럼 들린다. 그러나 홀든 콜필드(『호밀밭의 파수꾼 The Catcher in the Rye』의 주인공)이 여동생에게 “포스가 그대와 함께하길!”이라고 말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혹시 홀든이 그런 기색을 조금이라도 보였다면 이 소설의 작가는 오늘날처럼 유명해지지 못했을 것이다.


SF소설과 판타지소설에서만 환상적인 대화가 나오는 건 아니다. 실력 있는 로맨스소설 작가도 이런 대화를 쓸 수 있다. 환상적인 대화에는 아주 감상적인 흐름이 있다. 판타지소설과 SF소설, 로맨스소설의 작가는 그런 대화를 쓸 수 있을 뿐 아니라 멋지게 쓸 수 있을 때까지 연습해야 한다. 때로 장르 작가는 환상적인 대화를 쓰는 데 타고난 것처럼 보인다. 심지어 일상 대화에서도 환상적인 말로 이야기하는 작가도 있다.
나는 그런 작가가 아니다. 내가 그렇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작가가 대화를 쓴다는 건 어떻게 보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소설가로서 어떤 분야에 어울리는지 안다는 것이기도 하다. 자신이 판타지소설에 맞는지, SF소설에 맞는지, 로맨스소설이 맞는지 알고 있는가? 이 점을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다음의 『반지의 제왕』 속 대화문을 살펴보자.

샘이 이끄는 호빗 열두 명이 하나같이 소리를 지르며 뛰어나가 악당을 바닥에 내팽개쳤다. 샘은 칼을 뽑았다.
“안 돼, 샘!” 프로도가 외쳤다. “이렇게 됐지만 죽이면 안 돼. 그는 날 해치진 않았잖아. 그리고 어떤 경우든 이런 사악한 분위기에서 죽음을 맞게 할 순 없어. 그래도 한때는 위대한 존재였어. 우리가 감히 손을 들어 만질 수도 없는 고귀한 존재였지. 타락해버렸지만, 그걸 바로잡는 건 우리 능력 밖이야. 하지만 혹시 모르니 목숨은 살려주고 싶어.”
사루만은 자리에서 일어나 프로도를 빤히 바라보았다. 놀라움과 존경, 증오가 뒤섞인 묘한 눈빛이었다. 사루만이 말했다. “자랐군 그래. 많이도 자랐어. 현명하면서도 잔인하군. 내게서 복수의 달콤함을 빼앗아버렸으니 이제 난 네가 베푼 자비를 등에 지고 괴롭게 살아야 한다. 정말 싫은 일이지! 너도 마찬가지다! 이제 사라져주마. 더는 괴롭히지 않겠다. 하지만 너의 행복을 빌어줄 생각은 없다. 너 역시 불행할 것이다. 내가 그러겠단 뜻은 아니다. 예언일 뿐.”
사루만은 걸음을 옮겼고, 호빗들은 그가 지나가도록 길을 터주었다. 하지만 무기를 움켜쥔 호빗들의 손가락 마디는 하얘졌다. 뱀혓바닥 그리마는 머뭇거리다가 주인을 뒤따랐다.

이 대화 장면을 생생하게 만드는 건 무엇인가? 이 장면을 환상적이게 만드는 건 무엇인가?
당연히 ‘극적인’ 분위기다. 첫 문장의 “악당을 바닥에 내팽개쳤다”라는 구절을 보자. 이 구절은 대화가 아니지만 대화로 만들 수도 있다. 정말 극적이다. 내팽개치다니! 그것도 악당을!
또한 이 장면은 ‘웅변적’이다. “내게서 복수의 달콤함을 빼앗아버렸으니 이제 난 네가 베푼 자비를 등에 지고 괴롭게 살아야 한다.” 그리고 ‘직설적’이다. “하지만 너의 행복을 빌어줄 생각은 없다. 너 역시 불행할 것이다.”
판타지소설이나 SF소설을 쓰고 싶다면 환상적인 대화문의 달인이 되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될까? 연습이 답이다. 판타지소설이나 SF소설을 읽고 또 읽자. 그리고 연습으로 스스로를 단련하자.


로맨스소설의 환상적인 대화는 판타지소설이나 SF소설과는 약간 다르지만, 지금 시대의 평범한 사회에서 사람들이 서로에게 말하는 방식을 초월했다는 점은 똑같다. 마찬가지다. 내가 로맨스소설을 많이 읽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많은 작가가 그런 초월적이고 환상적인 대화를 쓰지 못하기 때문이다. 노력은 하지만 결과를 보면 환상적이라기보다는 진부하다.
로버트 제임스 월러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The Bridges of Madison County』에서 환상적인 대화를 탁월하게 써냈다. 남주인공 리처드와 여주인공 프란체스카 사이에 오가는 다음 대화를 보자.

로버트는 대답하려 했지만 프란체스카가 말을 막았다.
“로버트, 내 말을 좀 더 들어봐요. 당신이 나를 품에 안고 트럭으로 데려가서 꼭 함께 가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면, 난 불평 한마디 하지 않을 거예요. 당신이 그러자는 말만 해도 따를 수 있어요. 하지만 당신은 그러지 않겠죠. 너무나 섬세한 사람이고, 내 감정을 너무나 잘 아니까요. 그리고 난 이곳에 책임감을 느껴요.
그래요, 이렇게 사는 건 지겨운 일이죠. 내 인생 말이에요. 낭만도, 에로티시즘도 없고, 촛불 켠 부엌에서 춤출 수도 없고, 여자를 사랑할 줄 아는 남자를 황홀하게 쓰다듬어볼 수도 없어요. 그 무엇보다도, 당신이 없죠. 하지만 내겐 지독한 책임감이 있어요. 리처드에게, 아이들에게. 내가 떠나서 내 육체적인 존재만 사라져도, 리처드는 무척 힘들어할 거예요. 그것만으로도 망가져버릴지 몰라요.
하지만 그보다 훨씬 끔찍한 건, 이곳 사람들이 쑥덕거리는 소릴 들으며 여생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에요. ‘저 남자가 리처드 존슨이야. 부인은 화끈한 이탈리아 여자였는데, 몇 년 전에 장발의 사진사랑 눈이 맞아 달아났다지 뭐야.’ 리처드는 괴로워할 테고, 아이들은 여기 사는 한 윈터셋 사람들의 조롱을 견뎌야 할 거예요. 그 애들도 무척 힘들겠죠. 그것 때문에 나를 무척 미워할 테고요. 정말이지 난 당신을 원하고, 당신과 함께 있고 싶고, 당신의 일부가 되고 싶어요. 하지만 이 책임감이란 현실을 박차고 나갈 수가 없어요.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당신이 나에게 함께 가자고 고집을 부린다면, 아까 말했듯이 난 저항할 도리가 없어요. 힘도 없어요. 마음이 온통 당신에게 가버렸으니까요. 당신에게서 길을 빼앗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내가 간다면 당신을 원하는 내 이기심 때문일 거예요.”

솔직히 누가 이런 식으로 말을 하겠는가? 내가 아는 사람 중에는 없다. 즉흥적인 순간 치고는 무척 명료한 말이다. 명료할 뿐만 아니라 무척 환상적이기도 하다. 완벽히 조리 있는 데다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 언어로 표현한 환상적인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놀라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이 저런 상황에 처했다면 “안 돼요, 난 이제 당신이랑 어울릴 수가 없어요. 리처드한테 들키면 정말 곤란해져요” 따위의 진부한 말을 했으리란 사실을 똑똑히 인식하게 된다.


왜 그런지 로맨스소설의 환상적인 대화는 우리 안에 자리잡은 낭만을 건드리므로, 우리는 프란체스카와 함께 그 자리에 서게 된다. 눈앞에 실제 그런 일이 벌어진 것처럼 느낀다. 프란체스카의 말을 생생하게 만들어 우리의 감정을 뒤흔드는 건 대체 무엇일까?

우선은 세부 사항이다. 작가는 단어로 그림을 그린다. 프란체스카는 “그는 험담을 들으며 여생을 살아야 해요”라는 말 대신 “그보다 훨씬 끔찍한 건, 이곳 사람들이 쑥덕거리는 소릴 들으며 여생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에요”라고 말한다.
이러면 독자의 마음에 이미지가 생기고, 마을 사람들이 로버트와 프란체스카를 두고 서로 쑥덕거릴 때 리처드가 받게 될 고통을 보고 느낄 수 있다. “당신이 나를 품에 안고 트럭으로 데려가서……”, “부인은 화끈한 이탈리아 여자였는데, 몇 년 전에 장발의 사진사랑 눈이 맞아 달아났다지 뭐야” 같은 표현들도 마찬가지다.
또 환상적인 대화에는 은유가 들어 있다. “당신에게서 길을 빼앗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여기서 프란체스카는 로버트의 자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환상적인 대화는 감정이 깃든 대화다. 프란체스카는 로버트가 함께 떠나자고 해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과 가족들을 버리고 로버트와 함께 노을 속으로 떠나버렸을 때 괴로워할 남편, 아이들을 가엾게 여기는 마음을 명료하게 표현한다. 그녀는 이 두 감정을 동시에 품고 있으며 이 때문에 둘로 찢어진다. 정말 환상적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대부분의 작가는 이런 대화를 쓸 능력이 있거나 없거나 둘 중 하나다. 우리는 머릿속으로 환상적인 단어와 문장, 구문을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식으로 글을 쓸 수 있는 작가를 보면 경외감이 우러나며, 그 경외감에 압도된 나머지 대개는 그런 글을 그들의 몫으로 맡긴다.
그러나 가끔은 노력한다. 혹시 자신에게 이런 능력이 있다고 여겨진다면 꾸준히 키우길 바란다. 그렇지 않더라도 노력을 멈추지는 말자. 자신 안에 존재하는 낭만을 결코 얕잡아보지 말자.




소설쓰기의 모든 것》 개정판이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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