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이름을 자꾸 불러야 할까?

by 도서출판 다른
초보 작가들이 소설을 쓸 때 자주 저지르는 실수 중 하나는 등장인물의 이름을 반복해서 언급하는 것이다.



1960년대에 존과 마샤라는 부부가 등장하는 우스운 촌극이 있었다. 원래 누가 공연을 했는지도 기억나지 않지만 이런 식으로 전개되었다.


“존.”
“마샤.”
“존!”
“마샤!”
“조오오오온……”
“마아아아샤……”
“존?”
“마샤?”


이런 대화가 지겹도록 반복된다. 지금은 바보 같아 보이지만 당시에는 실력 있는 희극 배우들이 공연해서 꽤 재미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쓴 소설이 이렇다면 별로 재미있지 않을 것이다. 바보 같아 보인다는 말이 나온 김에 물어보자.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 누가 바보 같아 보일까? 작가도 물론 그렇겠지만 인물들은 더욱 그렇다.


“론, 지난 밤에 파티 있었다며?”
“아, 그래? 캐런, 무슨 얘기 들었는데?”
“론, 네가 술에 취했단 얘기 들었어.”
“술에 취해? 캐런, 날 잘 알잖아.”
“내가? 그런 줄 알았지, 론. 이젠 잘 모르겠어.”
“캐런, 난 술을 마시지도 않았어. 그러니까, 많이는 말이야.”


주절주절, 주절주절. 두 사람 사이에 얼마든지 오갈 수 있는 이 대화에는 호칭이 없는 게 낫다. 이 장면에는 긴박감이 약간 있다. 감정도 있어서 이 두 사람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렇게 이름을 자꾸 불러대면 부자연스럽게 들려서 대화가 망가지고 만다.


현실 속에서 남편이든 자녀든 자매든 누군가에게 말을 할 때 우리는 호칭을 얼마나 자주 부르는가? 사람들의 대화를 들어보자. 글속의 대화는 실제 대화를 반영해야 한다. 우리는 서로에게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연속극에서도 이렇게 하지 않는다. 그렇다 하더라도 소설을 연속극처럼 만들고 싶은가?
물론 모든 규칙에는 예외가 있다. 존 그리샴의 소설 『가스실』에서 그 탁월한 예시를 볼 수 있다. 아이비 형사는 샘 케이홀이 다섯 살 난 쌍둥이 형제가 있는 사무실을 폭파한 범인이라고, 아니면 적어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음은 둘 사이에 오가는 대화의 일부다.

“정말로, 정말로, 슬픈 일이오, 샘. 알다시피 크레이머 씨에겐 조시와 존이라는 어린 아들 둘이 있었소. 운 나쁘게도 그 아이들은 폭탄이 터졌을 때 아빠와 함께 사무실에 있었지.”
샘은 깊게 숨을 쉬며 아이비를 보았다. 나머지 얘기도 어서 해달라고, 샘의 눈이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귀엽기 짝이 없던 다섯 살짜리 쌍둥이 형제는 산산조각나고 말았소, 샘. 지옥보다 끔찍한 죽음이었소, 샘.”
샘은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턱이 가슴에 닿을 듯 말 듯했다. 기운이 쭉 빠졌다. 살인, 그것도 두 사람이다. 변호사, 재판, 판사, 배심원, 교도소 등 모든 게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는 눈을 감았다.
“애들 아빠는 운이 좋았는지도 모르겠소. 수술을 받고 지금 병원에 있으니. 어린아이들은 집에서 장례를 치를 예정이라오. 정말 비극이 따로 없지, 샘. 폭탄에 대해 아는 거 있지 않소, 샘?”
“아니오. 변호사를 만나고 싶습니다.”
“그러시겠지.”
아이비 형사는 천천히 일어나서 방을 나갔다.

이 장면이 예외인 까닭은 아이비 형사가 샘의 이름을 효과 장치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권력이 있는 쪽은 형사며, 그는 이 장면에서 그 권력을 한껏 사용하고 있다. 아이비 형사는 샘의 죄를 알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 하는데, 샘의 이름을 이렇게 여러 번 부르면서 곧 처벌받게 되리라는 것을 암시한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이렇게 이름을 자꾸 부르면 대화 장면이 매우 부자연스러워진다.


혹시 대화 장면에 이런 실수를 저질렀다면 왜 그랬는지 생각을 해보자. 어쩌면 인물들이 매우 격렬한 대화를 주고받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우리는 인물이 서로의 이름을 부르면 이 대화가 중요해 보이고 독자의 주의를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여러 번 반복하다 보면 정반대의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소설의 모든 대화 장면이 너무 허위처럼 들리며 힘을 잃어버린다.
또 다른 이유로 대화할 때 인물의 특징을 드러내기 위해서였을 수도 있다. 소설에서 인물의 대화에 지문을 넣는 방법은 많다. 그러나 호칭은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초고를 쓰고 나면 빨간 펜(진짜 ‘빨간’ 펜이 필요하다)을 들고 원고를 읽어 내려가며 직접적인 호칭 두어 개만 빼고, 즉 자연스럽게 쓰인 것만 남겨두고 모두 지우자. 그럼 인물들은 좀 더 지적인 사람처럼 말하게 해준 작가에게 고마워할 것이다.




소설쓰기의 모든 것》 개정판이 출간되었습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숨 막히는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