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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쳐쓰기: 한 걸음의 진보

최민석 작가

by 도서출판 다른

최근 가진 글쓰기 습관 중 하나가 바로 이미지 검색이다. 가령, 써야 할 글의 주제가 북극곰이라면 일단 북극곰이란 단어를 입으로 ‘북. 극. 곰’이라 되뇌며 검색창에 쳐 넣는다. 그러면 수십만 마리의 북극곰이 내 눈앞에 펼쳐져 ‘어서 나에 대해 쓰란 말이야. 이 게으른 작가야!’라고 빙하 위에서, 얼음물 속에서, 얼음조각 위에서 일제히 외치는 것 같다. 그럼 나는 ‘어이쿠. 이거 어서 북극곰에 대해 써야지’라고 결심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오늘은 ‘고쳐쓰기’란 키워드로 이미지 검색을 했다.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진땀을 흘리며 ‘안경을 고쳐쓰고’ 있는 정치인들이 잔뜩 나왔다. 손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안경을 고쳐쓰는 정치인, 청문회에서 답을 하며 안경을 고쳐쓰는 정치인, 성추문에 휩싸여 기자회견장에서 안경을 고쳐쓰는 대변인 등이 무리지어 내 눈앞에 나타났다. 나는 ‘어째서 고쳐쓰기의 결과가 이렇단 말인가!’라고 의아했지만, 그러다 깨달았다. 그것이 표면적으로는 거리가 있을지 몰라도 내면적으로는 일맥상통한다는 것을.


당신처럼 지적이고 현명하고 수준 높은 독서를 하는 독자라면 당연히 알아차렸겠지만, 지금 내가 쓰고 있는 ‘고쳐쓰기’는 바로 소설의 고쳐쓰기, 즉 퇴고를 말하는 것이다. 비록 어딘가 켕기는 구석이 있는 정치인들이 잔뜩 나와 곤혹스럽긴 하지만, 이들이 안경을 고쳐쓰는 이유는 바로 무언가를 다시 보기 위해서이다. 그 무언가란 당연히 자기가 처한 당시의 상황인 것이다. 그러나 당신처럼 지적이고 현명하고 수준 높은 독서를 하는 독자라면 당연히 알아차렸겠지만, 그렇다 해서 자기가 처한 상황이 바뀔 리는 없다. 당연한 말이지만, 안경을 고쳐쓰는 것은 똑같은 상황을 다시 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아직 소설을 쓰는 경험이 일천한 나이지만, 나 역시 안경을 자주 고쳐쓴다. 그렇다. 나는 사실 거액의 세금을 남몰래 포탈해 수시로 안경을 고쳐쓰며 헛기침을 자주 하는 뒤가 몹시 구린 작가, 일리는 없고, 상징적 차원에서 안경을 고쳐쓴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내가 안경을 고쳐쓴다고 해서 내 모니터에 저장된 원고가 알아서 갑자기 멋진 원고로 둔갑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마치 곤경에 처한 인물이 안경을 고쳐쓴다 해서 눈앞의 문제가 갑자기 해결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관을 만난 인물들이 안경을 고쳐쓰는 이유는 당연히 조금이라도 제대로 보기 위해서다. 나의 경우에도, 출간과 동시에 절판의 운명을 앞둔 원고가 안경을 고쳐쓴다고 해서 갑자기 베스트셀러 원고로 변화되는 마술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것의 위력은 3개월이면 절판될 원고가, 6개월이면 절판될 원고로, 혹은 1년이면 절판될 원고에서 어느 순간 ‘최소한 절판은 면할 원고’로 변하게 되는 것뿐이다.

무슨 작가의 목표가 절판을 면하는 것 따위냐고 반문한다면 할 말은 없다. 그 목표가 사소하고 미미한 것일 뿐이지만, 사실 고쳐쓴다 해서 바뀌는 것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안경을 고쳐 썼기 때문에 살림으로 빽빽한 집이 갑자기 궁궐으로 바뀌거나, 한 번 고쳐썼기 때문에 삼류작가의 원고가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의 원고로 바뀔 리도 없다. 그런 극적인 결과를 원한다면 처음부터 잘 쓰는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사람들은 안경을 고쳐쓰고, 작가들은 왜 조사를 바꾸고, 단어를 바꾸고, 문장을 바꾸고, 때로는 문단, 때로는 장(章) 전체를 바꾸는가.

그것은 진창에 빠진 자신의 원고에 묻어 있는 때를 조금이라도 벗겨 낼 수 있다면, 그 시간이 비록 모래시계가 떨어지고 있는 급박한 상황이라 해도, 처한 상황 내에서 조금이라도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고 싶기 때문이다. 마치 진퇴양난에 빠진 인물이 그 상황을 헤쳐 나가기 위해 시도하는 첫 번째 행동이 안경을 고쳐쓰는 것인 것처럼 말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면, ‘고쳐쓰기’로 이미지 검색을 했을 때 가장 많이 안경을 고쳐쓰는 인물로 나왔던 이는 문재인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는 지난 대선* 때 패배한 인물이다. 그러나 나는 이 글을 쓰면서 깨달았다.

그는 자신이 처한 불리한 상황을 고쳐 나가기 위해, 그때마다 고쳐썼다는 것을. 나는 언제나 실패하는 소설가이지만, 그래서 고쳐써도 별로 나을 것이 없는 원고를 매번 넘기지만, 그래도 나도 안경을 고쳐쓴다. 아니, 원고를 고쳐쓴다. 지적이고 현명한 당신도 당신이 처한 상황 속에서 고쳐쓰시길. 그것이 안경이든, 원고든, 삶이든 간에. 그리고 또 고쳐쓰시길. 그것으로 변하는 것이 단지 작은 한 걸음뿐이라도 말이다.


*이 글의 작성 시점인 2013년 기준으로, '지난 대선'은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입니다.



최민석
2010년 ‘창비 신인소설상’을 받으며 등단했고, 2012년 ‘오늘의 작가상’을 받았다. 쓴 책으로는 장편소설 『능력자』, 『풍의 역사』, 『쿨한 여자』, 소설집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 『미시시피 모기떼의 역습』, 산문집 『꽈배기의 맛』, 『꽈배기의 멋』, 『베를린 일기』등이 있다.
6·70년대 지방 캠퍼스 록밴드 ‘시와 바람’의 보컬로도 활동중이다.




소설쓰기의 모든 것》 개정판이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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