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희 작가
우리 사회에서 배제되고 소외된 이들의 삶을 따듯한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는 작가 박경희. 18년간 극동방송 「김혜자와 차 한 잔을」의 구성작가로 활동하며, ‘한국방송작가상’을 받기도 했다. 그런 그녀에게 서면 인터뷰를 통해 처음 소설가를 꿈꾸었을 때를 물었다. 소설의 집을 짓기 위해 끊임없이 분투했던 박경희 작가만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 편집부
Q 소설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계기가 있으신지요?
A 방송 글을 써오며 나름 보람을 느꼈지만, 온갖 정보와 감동을 찾아 밤새 머리 싸매고 쓴 글이 너무도 쉽게 사라지는 것 같아 허망했습니다. 그때부터 소설을 꿈꾸게 되었지요.
소설의 집을 짓다보니 아프고 힘들고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픈 마음이 생겼습니다. 책상이 아닌 발품을 팔아 가며 그들과 교감을 나눴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가야 할 길이 보였습니다. 『분홍벽돌집』과 『류명성 통일빵집』은 그렇게 탄생한 자식 같은 작품이지요.
Q 발표하신 작품을 보면 소년원에 수감된 아이들이나 탈북 청소년 등 그간 잘 다뤄지지 않은 이야기들을 주로 쓰시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A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앓은 아들 덕분에 청소년들에 게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한순간의 실수로 소년원에 갇힌 아이들을 직접 만나다 보니 이것이 자연스럽게 글쓰기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소설은 허구지만 리얼리티가 살아 있는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소년원 아이들을 자원하는 마음으로 만나 상담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취재 차원이었지만, 시간이 거듭될수록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문제아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것을 실감했지요.
탈북 청소년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우연한 기회에 이 아이들을 만나 글쓰기 지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죽음의 강을 넘어 이 땅에 온 그들은 상처투성이 내 딸과 아들들이었습니다. 그들을 향한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의 연민 혹은 사랑이 저로 하여금 소설을 쓰게 했습니다. 앞으로도 그런 이들에게 따뜻한 손수건이 되어 줄 글을 쓰고 싶어요.
Q 지금은 강의와 더불어 치열하게 작품활동을 하고 있으시지만, 처음 소설을 쓰시기로 하셨을 때는 어려움도 있었을 것 같아요. 어디에서 특히 그런 부분을 느끼셨는지, 또 어떻게 해결하셨는지요?
A 처음 소설을 시작했을 때 가장 막막했던 것은, 길라잡이를 만나지 못했던 점입니다. 쓰고 싶다는 열망에 비해 어디서부터 시작을 해야 할지 몰랐지요. 정형화된 소설작법이 아닌, 글 쓰는 데 실제로 도움이 될 만한 지침서가 필요했습니다. 기존의 소설작법론은 복사라도 한듯 거의 비슷했고, 대학 수업을 위한 개론 정도의 수준이었지요. 그럼에도 소설작법서로 나온 책은 무조건 읽었습니다. 그것도 한계를 느껴 좋은 작품의 인물, 사건, 배경 등을 분석하고, ‘나였더라면 이 작품을 어떻게 쓸까?’ 등을 생각해 가며 꼼꼼히 읽기 시작했습니다. 어렴풋하게나마 소설의 세계가 보이는 듯싶었습니다. 그 와중에 만난 몇몇 문우들과 열띤 합평 수업을 하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열 명의 선생보다 애정을 갖고 내 작품을 합평해 줄 한 명의 문우가 소중하다’는 것을 경험한 것이지요.
소설 작법을 읽거나 강의를 듣다 보면 늘 새로운 것을 강조합니다. 그 점이 가장 부담스러웠지요. 제 경험상 해 아래 새로운 것은 없습니다. 스스로 새로움을 창출해내는 것, 그것이 바로 작가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만의 의식과 시선으로 무조건 써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미미한 작품일지라도 첫 작품을 완성하고 나면, 다음 작품이 보입니다.
Q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었던 작법서나 작품 등에는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요?
A 전상국 선생님의 『소설 창작 강의』(문학사상사)가 가장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 책에 언급된 작품을 거의 다 찾아 읽었던 것이 한국 소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소설쓰기의 모든 것』 시리즈는 혼자 끙끙대며 소설 공부를 할 때 찾던 바로 그 지침서였습니다. “당신들이 지금까지 소설가가 되지 못한 것은 단지 소설을 쓰는 방법이 잘못되었을 뿐”이라고 말하는 작가의 말이 충격적이었지요. 이 책은 작법이 아닌 소설에 대한 소설책 같았습니다. 쉽고 재밌게 쓰인 것이 가장 큰 매력이었지요. 다섯 권 모두 실질적인 조언을 해주는 스승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어요. 그중에 첫 번째 책인 『플롯과 구조』와 마지막 책인 『고쳐쓰기』를 가장 많이 애용했습니다. 이 두 권은 제 소설의 처음과 끝의 실질적인 길라잡이가 되어 주었습니다.
플롯이나 생생한 캐릭터를 만드는 데는 영화의 도움을 많이 받은 편입니다. 다양한 장르를 눈여겨보았는데요, 그중에 로베르토 베니니의 「인생은 아름다워」와 토머스 빈터베르그 감독의 「더 헌트」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습니다.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더 리더』와 위화의 장편소설 『인생』을 읽으며, 소설의 플롯과 서사를 이끌어 가는 힘에 대해 배웠지요.
Q 소설 강의도 하시고, 주변에 소설가의 꿈을 품고 있는 분들이 조언을 많이 구할 것 같습니다. 주로 어떤 고민들을 토로하나요?
A 생각처럼 소설의 집을 짓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에요. 작가라면 누구나 통과해야 하는 과정이지요. 그런데 대부분 머리로만 소설을 쓰는 문청들이 많은 것 같아요. 넋두리 대신 써야만 됩니다. 그래야 초라한 집일지언정 내 방이 생기는 법이지요. 습작품이 많아야 고쳐서라도 새로운 집을 지을 수 있습니다. 소설은 오랜 세월 갈고 닦으며 공을 들여야만 지을 수 있는 무형의 집이니까요.
Q 작가님께서 만약 소설 작법서를 쓰신다면, 작가 지망생들에게 가장 먼저 해주고픈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그분들을 위해 한마디 해주세요.
A 소설 쓰기를 두려워하지 않기. 무조건 써보기. 냉정한 시선으로 퇴고하기. 아니다 싶을 때 과감하게 버리기. 그리고 다시 쓰기를 시도하다 보면 어느 새 제법 그럴 듯한 소설의 집을 짓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박경희
1960년 경기도 양평에서 태어났다. 자연에서 뛰어놀던 힘으로 글을 쓰고 있다. 20여 년간 라디오 방송에서 구성작가 일을 했으며, 2006년 한국방송프로듀서연합회의 ‘한국방송라디오 부문 작가상’을 수상했다. 방송작가 생활을 하면서도 창작에 뜻을 두어 2002년도에 동서커피문학상 소설부문에 당선되었고 2004년도에〈월간문학〉에 단편소설 ‘사루비아’로 등단했다.
현재 통일부 주최 ‘남북 청년 창작 교실’ 지도 교수, 부산협성문화재단 ‘책만들어 주기 프로젝트’ 심사위원, 부산협성문화재단 전국 독후감대회 심사위원, 서울 YMCA 청소년 문학상 심사위원, 한국소설가협회 회원, 한국어린이책작가연대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탈북대안학교 ‘하늘꿈 학교’에서 ‘책으로 만나는 인문학’ 수업을 하고 있으며, 남산도서관/강동도서관 ‘청소년 문학교실’, 남산도서관 주최 ‘찾아가는 문학수업’, 부산서부영재교육원 ‘작가와의 문학 수업’ 등을 비롯해 전국 중고등학교 저자 간담회를 통해 독자와 소통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난민소녀 리도희》《류명성통일빵집》《여섯 개의 배낭》《몽골 초원을 달리는 아이들》《고래 날다》《분홍벽돌집》《우리의 소원은 통일》《몽골 초원을 달리는 아이들》《엄마는 감자꽃 향기》《감자 오그랑죽》《Potato Porridge》(영문 번역 해외 보급) 《여자나이 오십, 봄은 끝나지 않았다》《여자 나이 마흔으로 산다는 것은》《이대로 감사합니다》《천국을 수놓는 작은 손수건》등이 있다.
《소설쓰기의 모든 것》 개정판이 출간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