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쓰기의 모든 것
모든 글은 장치다. 작가의 생각을 기호화해서 소통 수단으로 만들고, 이를 다시 독자가 해독해서 생각으로 바꾸게 하는 장치.
독자가 소설을 읽을 때 받는, 직접 소통하고 있다는 느낌은 환상에 불과하다. 마치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처럼(이때의 소리는 자성을 띤 진동판이 전기 자극을 받아 활성화하면서 만들어진다. 즉 목소리를 듣고 있다고 해서 그 순간 상대방이 진짜 그 소리를 내고 있는 게 아니다). 그래서 작가가 쓴 어떤 문장이 독자들의 가슴속에서는 살아 있지만 작가의 가슴속에서는 이미 죽은 지 오래라는 애석한 결과가 빚어지기도 한다. 이 경우 독자와 작가가 대면하기라도 한다면 안 좋은 시기에 상대가 나타났다는 당혹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둘 다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다.
여기서 또 한 가지 혼란스러운 진실은 기호화 능력이 인간이 지닌 가장 중요한 능력 중 하나라는 점이다.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종은 인간이 유일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자신들의 생각을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하기 위해 기호화하는 종은 지구상에서 인간이 유일한 게 거의 확실하다.
소통을 위한 이러한 변환에는 무수히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그런데 바로 이 어려움 속에서 예술이 태어난다. 나아가 어떤 표현 수단이 지닌 특유의 어려움은 바로 그 수단을 통해 이루어지는 예술에 특정한 성질을 부여한다. 어려움을 찾아내고 이를 극복하는 방법을 배우면 배울수록 더 좋은 소설이 나온다.
우리는 보통 논픽션은 재미보다 진실을 담고 있길 기대하고, 픽션 즉 소설은 진실보다 재미를 담고 있기를 기대한다. 논픽션과 달리 소설에서의 진실이란 지어낸 이야기라는 형태로 제시된다. 따라서 정의를 하자면 모든 소설은 거짓이다. 그렇지만 진실을 담지 않고 있다면 조잡한 글로 전락해버리고 만다.
소설이 허구의 이야기이므로 작가는 논픽션을 쓸 때보다 심미적으로 만족스러운 작품을 창작하는 자유를 더욱 누릴 수 있다. 그런 까닭에 독자 역시 소설을 읽을 때 기분 좋은 체험을 하리라는 기대치가 높다. 성공을 거둔 소설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거나, 적어도 그렇게 보인다. 다시 말해 모든 것이 조화롭고, 모든 내용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같은 뜻을 가리키고 있으며, 고유의 안정된 리듬을 지니고 있고, 요지에서 벗어나거나 부적절하거나 엉뚱한 내용이 없다.
소설은 스케치, 에피소드, 일화와 달리 완결성과 완전성을 갖추고 있다. 예를 통해 살펴보자.
먼저, 스케치다.
조그만 소년이 하나 있는데, 이름은 조다. 술집 앞에 자꾸 온다. 네 살쯤 된 것 같고, 얇고 짧은 외투와 엉덩이 부분이 큰 바지를 입었고, 맨발이다. 사람들은 조를 괴롭힌다. 씹는담배를 입에다 욱여넣는다, 무화과를 주는 척하면서. 조는 화가 나서 특유의 째지는 비명을 꿱꿱 지른다. 독기라도 품은 것 같은 소리다. 그러면서 막대기 하나를 쥐고 덤벼댄다. 사람들은 우습다는 듯 떠들썩하게 웃어댈 뿐이다. 조는 매번 이렇게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계속 온다. 사람들은 한두 푼 쥐어주며 사탕이나 땅콩, 건포도를 사 오라고 시키거나, 술집 출입구의 움푹 들어간 부분에 앉혀놓곤 반나절 동안 자리를 지키라고 으름장을 놓으며 놀려먹는다. 근데 그러면 조는 정말로 시간을 다 채울 작정이기라도 한 것처럼 제법 얌전히 앉아 있는다. 그것도 잠시, 길 건너 짐마차 안에서 놀고 있는 남자애들과 어울리려고 꼬마 조가 얼마나 신나게 뛰어가는지 한번 보라.
─ 너새니얼 호손, 《미국에서 쓴 일기 The American Notebooks》 중에서
다음은 에피소드다.
처음 데이트했을 때 빌은 세련된 대학 2학년생, 나는 고등학교 졸업반이었다. 영화를 보고 나자 빌이 별을 보러 그린힐 공원 (연인들이 주로 찾는 걸로 유명한 우리 동네 한적한 공원) 에 가자고 했지만 나는 핑계를 둘러댔다.
빌을 좋아하는 마음은 점점 더 커졌지만, 두 번째 데이트에서도 ‘별 보러 가는 건’ 거절했다. 세 번째 데이트에서는 마침내 수락했다. 빌은 외딴 곳에 차를 세웠다. 나는 빌의 얼굴이 내 얼굴로 다가오는 걸 보고 눈을 감았다. 하지만 재빨리 다시 떴다. 귓가에 들린 빌의 목소리 때문이었다. “자, 이제 저 위 좀 봐봐. 저게 바로 궁수자린데…….”
─ 조앤 P. 파우히, 《리더스 다이제스트 Reader’s Digest》에서 발췌
아래는 일화다.
이야기는 이렇다. 한번은 밴더빌트 부인이 프리츠 크라이슬러에게 얼마를 지불하면 개인 음악회에서 연주해줄 수 있냐고 따져 물었는데, 그랬다가 그만 5,000달러라는 답이 돌아오는 바람에 뒤로 자빠질 뻔했다. 밴더빌트 부인은 하는 수 없이 알겠다고 하며 한마디 덧붙였다.
“손님들과 어울리지는 말아주셨으면 해요.”
크라이슬러가 대답했다.
“그러시다면 부인, 2,000달러만 내시면 됩니다.”
─ 베넷 서프, 《제발 나 좀 말려줘 Try and Stop Me》 중에서
그렇다면 이제 소설을 보자.
지구의 마지막 인간이 방 안에 홀로 앉아 있었다. 그때 똑똑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 작자 미상
보다시피 스케치는 그저 생동감을 살려 짧게 묘사한 글이다. 에피소드는 일어난 사건을 쓴 글이다. 이 점은 일화도 마찬가지지만, 일화는 이름이 언급된 실존 인물과 관련된 글이라는 게 다르다. 위의 소설은 고작 두 문장밖에 되지 않지만 암시를 통해 완결성을 획득했으며 다른 예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방식으로 의미를 가득 담고 있다.
그런데 앞서 호손의 글에는 사실 마지막 한 문장이 더 있다.
온종일 술집만 들락날락하는 게 일인 동네의 탕아, 거칠고 방탕하게 젊음을 허비하고 한창일 때 10년은 교도소에서, 노년은 빈민보호소에서 보내게 될 탕아의 기질이 이 소년에게 다분히 보인다.
이제 이 스케치가 단편소설, 나아가 장편소설로도 확장될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 것이다. 술집 거리에서 노상 놀다가 인생을 망쳐버린 조의 행적을 따라가면서 말이다. 조를 가엾게 여겨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만 조가 운명의 굴레 속에서 맴도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아이가 없는 한 남자를 시점인물로 내세워도 좋을 것 같다.
비슷한 식으로 위의 에피소드나 일화도 단편소설로 바꿀 수 있다. 인물을 추가하고 복잡하게 만들면 가능하다. 예를 들어보자.
여고생은 별자리 보는 것을 좋아하는 대학생 남자친구와 키스하고 싶어졌지만, 그가 너무 수줍음을 타서 자신에게 키스할 용기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여고생은 그가 수줍게 굴면 굴수록 더 좋다. 그렇지만 자신이 먼저 키스를 할 수는 없다. 그렇게 적극적으로 나가면 그가 겁을 먹고 달아나 버릴까 봐. 여고생은 어떤 꾀들을 낼까? 그리고 그중 가장 효과적인 꾀는?
바이올리니스트(이제부터 프리츠 크라이슬러라고 실명을 쓰면 안 된다)는 예술에 대한 열망과 상류사회에 진출해 가족에게 기쁨을 안겨주고 싶은 열망 사이에서 갈등하는 나이 든 명연주자로, 결국 이렇게 극적으로 예술을 선택한다.
최후의 인간이 나오는 작자 미상의 소설은 그 자체로 완결성을 갖추긴 했지만, 위 방법을 통해 마찬가지로 일반적인 길이의 소설로 확장될 수 있다. 외계인들이 지구를 점령하고 모든 생명체를 학살했다. 다만 표본은 남겨서 지구 동물원을 세웠는데, 주인공 즉 최후의 인간 남자가 그중 한 명이다. 주인공에게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어떻게 외계인을 무찌를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최후의 ‘인간 여자’를 설득해 신인류의 어머니가 되도록 할 수 있을 것인가? 이 소설은 사실 프레드릭 브라운이 쓴 〈노크 Knock〉라는 작품이다.
이제 이 네 가지 글에는 전에 없던 공통점이 생겼다. 그게 무엇일까? 각각의 글에는 적어도 두 인물이 연관된 ‘감정적 관계’가 형성되어 있고(조와 조를 도와주려 하는 남자, 여고생과 그녀의 남자친구, 바이올리니스트와 그의 가족, 최후의 남자와 최후의 여자), 해피엔딩을 방해하는 ‘장애물’도 있다(조가 처한 환경과 어린 시절, 남자친구의 수줍음 많은 성격, 가족을 향한 바이올리니스트의 사랑, 최후의 인간이 외계인이 만든 지구 동물원에 갇혀 있다는 사실).
자신의 소설 아이디어를 놓고 보자. 스케치, 에피소드, 일화에 불과한 것 같은가? 그러면 감정적 관계와 장애물을 집어넣어 소설로 만들자. 이러한 작업을 거치지 않으면 편집자에게 원고를 보내봤자 다음과 같은 메모만이 돌아올 것이다. “이건 소설이 아니에요, 스케치(에피소드, 일화)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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