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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서출판 다른 Feb 22. 2019

소설 구상에 필요한 5가지 질문 1

단편소설 쓰기의 모든 것

바로 옆에 독자가 있다고 상상하면서 글을 써보자. 이 독자가 내용 하나하나를 보며 끊임없이 지적하고 캐묻는다면 어떨까?



  그는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갔다.

  (독자: 방이 얼마나 커요?)

  그는 문을 열고 길고 좁다란 방으로 들어갔다.

  (독자: 그 방 안에 다른 사람은 없어요?)

  그는 문을 열고 길고 좁다란 방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는 사람이 많았다.

  (독자: 사람들 옷차림이 어때요?)

  그는 문을 열고 길고 좁다란 방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는 야회복을 차려입은 사람이 많았다.

  (독자: 사람들이 여기서 뭘 하고 있나요?)

  그는 문을 열고 길고 좁다란 방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는 야회복을 차려입은 사람이 많았는데, 모두 손에 마실 것을 들고 있었다. 어떤 남자가 그에게 다가왔다.

  (독자: 이 남자는 어떻게 생겼어요?)

  그는 문을 열고 길고 좁다란 방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는 야회복을 차려입은 사람이 많았는데, 모두 손에 마실 것을 들고 있었다. 머리가 벗어지고 코는 부러진 어떤 남자가 인상을 쓰며 그에게 다가왔다.



  이 글에서는 소설을 구상할 때 자문해봐야 할 질문들을 소개한다.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어느 정도는 갖고 있어야 한다. 특히 답을 알고 나서 집필을 시작하면 엄청난 고뇌에 빠지는 상황을 예방할 수 있다.



‘누구’에 관한 이야기인가?
‘왜’ 인물은 그러한 행위를 하고 있는가?
‘무엇’에 대한 이야기인가?
‘어디’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인가?
‘언제’ 일어나는 이야기인가?



  소설을 쓰기 시작했으면 최대한 빨리 이 중 네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놔야 한다. 첫 쪽에 내놓는 게 이상적이다(‘왜’에 대한 답은 보통 약간 나중에 나온다). 그렇지 않으면 독자의 관심을 끄는 일관된 심상을 제시할 수 없으며, 이는 치명적인 문제일 수밖에 없다.



인물: 누구에 관한 이야기인가?

  인물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작가는 독자에게 그 이유를 재빨리, 충분히 알려주어야만 다음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하나, 작가가 인물에 대해 상세히 알고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알린다.


  둘, 독자가 인물에게 뭔가를 느끼도록 만든다. 호기심이든 공감이든 반감이든. 무관심만 아니면 된다. 그렇지 않다면 독자가 글을 계속 읽어나갈 이유가 무엇일까?


  초보 작가들은 처음에는 다른 작가의 소설 속 등장인물이나 자신이 아는 누군가를 본떠 인물을 만들어내려 한다. 특히 남의 소설 속 복잡하기 그지없는 인물을 흉내 내기란 불가능하므로 단순한 인물을 서툴게 모방하거나 상투적으로 그려 넣기 쉽다.
  실제 인물을 그대로 따라 등장인물을 만들 때는 두 가지 위험이 따른다.

  우선, 묘사하려는 실제 인물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독자에게 충분한 정보를 전달하는 데 실패할 수 있다. 자신이 쓴 글을 보면 ‘나는’ 그의 모습이 보이고 그가 말하는 게 들리기 때문에, 독자도 마찬가지로 다 알 거라고 잘못 생각해버리는 것이다.

  또 다른 위험은 이와 정반대다. 바로 실제 인물에 대해 알고 있는 점을 너무 많이 집어넣는 것이다. 그는 치과의사고, 엘름 가에 살고, 아이는 셋이고, 에어데일 테리어도 한 마리 키우고……. 사실 그 인물에게서 가져오고 싶었던 것은 혈색 좋은 얼굴과 낙천적인 기질, 사람들이 청하지도 않은 충고를 건네곤 하는 성향이 전부였는데도 말이다.
  등장인물을 만드는 요령은 실제 인물들에게서 부분 부분을 조금씩 가져와 새로운 방식으로 조합하는 데 있다. 그렇게 하면 어느 누구의 복제품이 아니라 자신만의 인물을 창조할 수 있다.
  아래는 인물을 만드는 연습에 활용할 수 있는 다른 방법들이다.


  1  인물마다 약력을 써본다. 생년월일과 태어난 장소, 부모, 학력, 경력 등. 인물 약력을 쓸 때도 다른 창조적 글쓰기를 할 때와 마찬가지로 무의식과 함께 일해야 한다. 그저 마구잡이로 세부 사항을 지어내다가는 자신이 사실은 그 인물을 잘 알지도 못하며, 쓰고 싶지도 않다는 기분에 휩싸이게 될 뿐이다.


  2  인물을 소설 속 다른 인물의 입장에서 묘사해본다. 등장인물이 많다면 최소한 서로 다른 ‘두 인물’의 입장에서 각 인물들을 묘사하는 게 유용하고 효과적이다. 각각의 인물을 적어도 두 가지 관점에서 파악할 수 있으므로 작가 자신이 창조한 인물을 선명하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며, 작가가 모든 인물을 무대 장치의 일부가 아니라 살아 있는 진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습관을 들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


  3  인물이 집에 들어와 일상적으로 그 시간에 어떤 일과를 보내는지 그 장면을 써본다. 제일 처음에 무얼 할까? 담배에 불을 붙이나? 화분에 물을 주나? 앵무새에게 먹이를 주나? 아니면 다른 무슨 일을 할까?


  4  인물의 인생에 일어난 짤막한 사건을 하나 써본다. 작품에 집어넣지는 않을 테지만 인물에 관한 뭔가를 드러내 보이는 사건이어야 한다.


  5  첫 번째 인물과 전반적으로 닮은 두 번째 인물을 만들어낸다. 잠시도 가만히 있질 못하는 10대라든가. 그리고 두 인물 사이에서 벌어지는 장면을 써본다(이번에도 작품에 집어넣지는 않을 내용으로 한다). 사고방식이나 말투 등 분명히 다른 점이 나타나게 되어 있다. 만약 두 사람이 주는 인상이 너무 똑같아서 차이점이 이름밖에 없다면 다시 써야 한다. 차이점이 ‘분명히’ 드러날 때까지 계속 다시 쓰자. 그래도 차이가 나질 않는다면, 그건 바로 첫 번째 인물이 전형적인 인물이라는 증거다(이 경우 첫 번째 인물보다 두 번째 인물이 오히려 생생하게 살아 움직일지도 모른다. 그러면 이 두 번째 인물을 작품에 등장시키는 편이 낫다).


  인물의 시점에서 장면을 쓸 때는 작가 자신이 그 인물의 머릿속에 들어가 있다고 상상해야 한다. 그가 지금 이 순간 보고 있는 것은 정확히 뭔가? 듣고 있는 건? 그 밖에 의식하고 있는 다른 감각이 있나? 무슨 생각을 하나? 무얼 기억하고 있나? 어떤 충동을 억누르고 있나? 다른 사람의 말에서 신경 쓰이는 게 있나? 기분은 어떤가? 기뻐하고 있나, 우울해하고 있나, 아니면 또 다른 기분을 느끼나?
  이제 그 장면에서 주인공 다음으로 중요한 인물의 머릿속에 자신을 투영하자. 지금 그런 행동을 하는 ‘그의’ 동기가 뭔가? 무얼 보고, 무얼 느끼나? 주인공의 머릿속으로 돌아가 장면을 다시 처음부터 훑어보자. 주인공이 보고, 듣고, 느끼는 것들이 완전히 바뀌어 있을 것이다. 지금은 두 번째 인물에 관해 더 많이 아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보조적 인물이라 할지라도 인물에게는 자기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모든 인물은 각각 자신의 드라마에서 중심이다. 즉 작가는 어느 인물을 주인공으로 소설을 쓴대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만큼 모든 인물을 실감 나게 그려야 한다.


  어떤 인물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에 대해 근거 자료를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정보원은 기쁘게도 바로, 작가 자신이다. 사람은 열여섯 살이 되면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감정을 경험한 상태가 된다(발달심리학자 장 피아제에 따르면 ‘여섯 살’이다). 인물이 이기적으로 행동하는가?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자. 이기적인 면을 발견할 것이다. 용기, 악의, 헌신, 질투, 모든 것이 자신 안에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 감정들을 활용해 타당성 있는 인물을 창조할 수 있다(한마디 덧붙이자면, 이렇게 자신을 들여다보고 인물을 창조하는 일은 훌륭한 심리치료법이기도 하다).
  우리는 수년 동안 알고 지낸 사람이라면, 특히 함께 살아온 사람이라면, 그 사람을 처음 만난 상황에서는 당연히 알아챘을 사소한 정보를 전혀 모르고 있을 수 있다. 이런 까닭에 때로는 인물과 장소를 낯설게 느낄 수밖에 없는 손님을 시점인물로 내세우는 게 가장 효과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인물들과 오랫동안 친밀하게 지내온 새 인물을 시점인물로 내세우더라도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확실히 말할 수 있는 방법은 있다. 예컨대 강렬한 애정을 느끼는 순간에 우리는 상대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처음부터 다시 의식하게 되고, 짜증이 치밀어 오르는 순간에 우리는 상대의 결점을 마치 처음 본 것마냥 생생하게 느끼곤 한다.
  누군가 평소와 달리 행동할 때마다, 또는 누군가의 겉모습에 변화가 일 때마다 우리는 그 사람을 주의 깊게 살핀다. 바로 이런 순간들이 작가에게는 인물을 생생하게 묘사할 수 있는 기회다. 독자가 ‘매일 만나던 사람을 왜 갑자기 주목하지?’ 하고 의구심을 품지 않게 하면서 말이다.


  인물을 직업에 따라, 또는 대중매체에서 받은 인상에 따라 정형화하려는 충동을 물리쳐야 한다. 그건 독자도 할 수 있는 일이다. 고작 그런 것을 보여주는 작품을 돈 내고 사 읽을 이유가 없다. 경찰 경력이 거의 20년 정도 있는 인물을 가정해보자. 레슬링 팬, 맥주 애호가, 공화당 지지자가 아니어도 괜찮다. 달리아 품종 개량을 하며 나이 어린 신부와 함께 살고 있는, 마르크스주의자에 초월명상 수강생일 수도 있다. 인물이 자신만큼이나 복잡하고 흥미로운 자질을 지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기회를 주자. 무의식이 인물에 대해 뭐라고 하는지 주의 깊게 들어보자. 그래서 나 자신이 아니라 ‘인물’이 무얼 하고 싶어하는지 알아내자. 이렇게 하면 인물들이 때로는 플롯을 더욱 멋지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인물에게 동기부여가 제대로 이루어졌는지 모르겠다면, 인물과 가상의 심문자 사이의 대화로 진행되는 장면을 하나 써보자. 이 심문자는 “그건 왜 그렇게 했어?”라는 질문을 계속하면서 인물이 정직한 대답을 내놓지 않으면 그런 대답이 나올 때까지 압박을 가해야 한다.



○ 인물이름 짓기

  소설 속 인물의 이름은 현실적으로 짓는 게 좋다. 신뢰성과 미의식을 충족하는 범위 내에서, 현실적으로 사람들이 쓸 법한 이름을 부여해야 한다는 말이다. 인물들의 이름은 서로 쉽게 구별되어야 하고(두 이름이 발음상 비슷하게 들리거나, 똑같은 철자로 시작하는 것은 좋지 않다), 각각의 인물에게 어울려야 한다. 인물을 부르는 방식은 한 가지로 정하고, 가능한 한 이 호칭을 고수하자. 예를 들어 팀 벵코라고 이름 지은 인물을 앞에서는 벵코라고 부르다가 뒤에서는 팀이라고 부르는 것은 좋지 않다.
  소설을 쓰면서 되는대로 이름을 짓고 그 와중에 로빈슨, 쿠퍼, 스미스 같은 흔한 이름만 왕창 내놓는 것은 작품을 빈곤하게 만들고, 앵글로색슨계 백인 개신교도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는 인상을 퍼뜨리는 데 일조하는 것이나 진배없다. 실제로 알고 지내는 사람들은 다양한 계층과 출신 성분을 반영하는 이름을 지니고 있는데도, 작품 속에서는 죄다 앵글로색슨계 이름만 나오는 이유가 무엇일까?


  전화번호부는 급히 이름을 찾기에 별로 좋은 자료가 아니다. 철자 하나에 해당하는 이름을 다 훑는 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니까. 그보다는 눈에 띄는 이름을 발견할 때마다 모아서 목록을 만들어두자. 가나다순으로 정렬되어 있지 않고 섞여 있으면 훨씬 유익하게 활용할 수 있다. 그리고 항상 이름과 성 전체를 다 적어두어야 한다. 예를 들어 ‘레노어 번바움’이라는 이름을 ‘레노어’라고만, 또는 ‘번바움’이라고만 적어두면 안 된다. 작품에 쓰려고 할 때 무의식적으로 나머지 성이나 이름을 떠올리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서다(가끔 자기 이름이 소설에 나온 것을 보고 항의하는 사람들이 있다).
  외국인인 인물의 이름을 진짜처럼 짓고 싶다면 백과사전에서 해당 국가 항목을 찾아 부록으로 딸려 있는 도서목록을 훑어보는 게 아주 좋다. 백과사전 본문에는 유명인들의 이름만 가득 열거되어 있는 반면, 부록에는 보통 무명 학자들이 쓴 책도 언급되어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외국인 이름을 짓기 위해 미국의 전화번호부를 이용하는 일은 절대 하지 말자. 미국 사람들은 이름을 온갖 방식으로 뜯어고치기 때문이다. 예컨대 할아버지가 독일인인 사람이라고 해도 그 사람은 독일에서 절대 쓰지 않는 이름을 쓰고 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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