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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서출판 다른 Mar 20. 2019

나도 그림책을 쓸 수 있을까 2

그림책 쓰기의 모든 것

지금까지 그림책 원고의 형식, 형태, 분량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제 그림책만의 독특한 특징인 두 부류의 독자층에 대해 알아보자.



두 살부터 여덟 살까지의 어린이 독자
  그림책의 핵심 독자는 바로 두 살부터 여덟 살까지의 어린아이다. 그림책 작가라면 당연히 이 연령층의 아이들에 대해 공부하고 이 아이들이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연구해야 한다. 자신의 어린 시절이 가물가물하거나 현재 가까이 지내는 어린아이가 없다면 그림책을 쓰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조카나 이웃의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배워야 한다. 다음은 내가 그림책을 쓸 때 언제나 머릿속에 새기는 어린이의 특징이다.


  ○ 아이들에게는 모든 게 새롭다
  어른들은 차를 너무 자주 타서 운전을 하며 딴생각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뒷자리 창문 너머 보이는 모든 나무, 집, 가게가 신기하다. 나의 손녀 헤이즐은 세 살 무렵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자신의 이름 첫 글자인 H가 쓰인 트럭을 찾아내는 것을 아주 재미있어 했다.
  지렁이? 어른은 무심코 밟고 지나가기 일쑤다. 어린아이는 그 옆에 쭈그려 앉아 기어가는 지렁이를 지켜본다. 아이의 눈에는 온 세상이 신기한 것투성이지만 어른은 이미 세상만물이 익숙하다. 그러니 어린 아이들을 대상으로 글을 쓸 때는 새로운 것을 발견할 때 느끼는 흥분을 기억해내야 한다.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
  새로운 장소로 여행만 가도 감탄은 저절로 나온다. 하지만 멀리 아프리카로 날아가야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는 건 아니다. 집 근처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 색다른 일을 해보자. 아직 가보지 않은 박물관에 가자. 낯선 동네를 돌아다니자. 싫어하는 음식을 한번 먹어보자.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을 열린 마음으로 대하자. 낯선 가게에 들어가서 사탕 냄새를 맡아보자. 비단 드레스의 매끄러운 감촉을 느끼자. 카드 기계에서 영수증을 인쇄하는 소리에 귀 기울이자.
  바보처럼 보일 거라는 걱정일랑 접어두자. 다시 어린아이가 되었다고 상상하자. 키를 낮추어보자. 엎드려보자(그렇다고 남의 가게 안에서 그러라는 게 아니다. 집에 돌아갈 때까지는 참자). 시선이 낮아지면서 무엇이 눈에 들어오나? 마루는 매끄러운가, 딱딱한가, 서늘한가? 엎드린 자세에서는 고양이가 더 커 보이나, 아니면 더 작아 보이나? 먼지 덩어리를 집어 들자. 간지러운가? 밖으로 나가자. 달팽이가 지나간 자리를 만져보자. 끈적거리나? 다람쥐를 쫓아가자. 잡을 수 있을까? 손가락으로 땅을 파보자. 흙이 축축한가? 말랐나?
  다음번에 글을 쓸 때는 세상에 대한 다양한 호기심을 담아내자.


  ○ 아이들은 현재에 충실하다
  아이와 다니면 늘 받는 질문이 있다. “다 왔어요?” 그러면 어른은 이렇게 답한다. “한 시간 뒤면 도착할 거야.” 10분 뒤에 아이는 다시 묻는다. “다 왔어요?”

  ‘한 시간 뒤’, ‘내일’, ‘다음 주’ 같은 개념을 어린아이는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어린아이가 독자인 그림책은 몇 시간, 하루, 하룻밤 동안의 일을 다루어야 한다. 그보다 더 긴 시간을 다루는 책은 좀 더 큰 아이에게 적합하다. 그림책은 어린이 독자에게 시간의 흐름을 알려주기 위해 특정 구절을 반복해서 보여주기도 한다. ‘다음 날’ 같은 평범하고 흔한 말이나 ‘내가 할아버지와 바닷가 모래사장에 도착했을 때’처럼 이야기 속 특정한 표현을 반복하는 것이다.


  ○ 아이들은 경험이 많지 않다
  그래서 친구가 장난감 블록을 양보하지 않으면 난리를 친다. 또 아이스크림이 땅에 떨어지면 운다. 그리고 햄버거를 먹어야만 행복해질 거라고 고집을 부린다.
  어른들은 살면서 숱하게 실망을 해왔다. 그래서 블록을 가지고 놀 기회가 또 있을 거라는 사실, 언제든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때로는 햄버거보다는 치킨이 더 맛있다는 사실을 안다.
  아이들은 그런 사실을 아직 모른다. 아이들은 베이비시터와 단 둘이 집에 남겨지면 운다. 부모가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겁을 내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는 그만큼 ‘큰일’이 없다. 그림책 작가는 어른에게는 사소해 보일지라도 아이에게는 아주 중요한 것들을 찾아내야 한다.
  《도와주지 마! Big Help!》에서 주인공 소년은 여동생이 툭하면 도와주겠다고 끼어들어서 귀찮아 미칠 것 같다. 《토끼 케이크 Bunny Cakes》에서 주인공 맥스는 식료품 가게 점원이 자신이 쓴 글씨를 읽게 하려고 무척 애쓴다. 어른이 보기에는 대수롭지 않은 일을 아이는 세상이 뒤집힐 듯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 아이들이 느끼는 감정은 강렬하다
  작가이자 문학비평가인 아나톨 브로야드는 이렇게 말했다.
  “어릴 때는 모든 것이 중요하다. 모든 것이 심각하다.”
  제일 아끼는 티셔츠가 빨래 중이라 입을 수 없다면 어른은 어깨 한 번 으쓱하고 다른 티셔츠를 꺼내 입을 것이다. 그런데 아이는 울고불고 난리가 난다. 자러 가기 싫은 아이는 세상이 떠나가라 울기도 한다. 애착 담요를 포기하는 건 상상도 하기 싫다. 그게 아이에게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알고 싶다면 케빈 헹크스의 칼데콧상 Caldecott Medal(미국어린이도서관협회ALSC에서 매년 가장 뛰어난 그림책의 삽화가에게 수여하는 권위 있는 문학상) 수상작인 《내 사랑 뿌뿌 Owen》를 읽어보자. 아이들은 감정을 마음속 깊이 느낀다. 그림책을 쓸 때는 아이들이 느끼는 강렬한 감정을 떠올리자.


  ○ 어린 시절이 온통 장밋빛인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대개 어린 시절을 모든 게 좋았던 때로 기억한다. 온종일 제일 좋아하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다른 사람이 해준 음식을 먹으며, 먹고살기 위해 힘든 일을 할 필요가 전혀 없다.
  이보다 더 쉬울 수가 있을까?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있을까? 아이들은 공과금을 내고, 장을 보고, 차로 꽉 막힌 길 위에서 운전대를 붙잡고 시간을 죽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한다.
  분명 아이들은 그런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 대신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할 수 있다. 자신의 이름을 제대로 쓰기 위해 연습해야 하고, 이야기 듣기 시간에 늘 옆자리에 앉던 짝꿍이 다른 아이 옆에 앉는 가슴 아픈 일을 겪기도 한다.
  아이들에게도 비극적인 일은 일어난다. 애완동물이 죽는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돌아가신다. 아빠, 엄마가 죽거나 집을 버리고 나가서 딴살림을 차리기도 한다. 패트 브리슨은 《페리 선생님을 기억합니다I Remember Miss Perry》에서 사랑하는 선생님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는 사건을 겪는 한 아이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다룬다.
  “어린 시절은 즐겁고 재미있기만 한 게 아니다”라는 문장을 인쇄해서 컴퓨터 옆에 붙여두자. 절대로 잊으면 안 된다. 아이들이 겪는 인생의 단맛과 쓴맛 모두를 늘 생각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힘든 일을 겪을 때는 유머가 힘이 된다. 고민과 걱정으로 가득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재미있는 책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주디스 바이올스트는 이제 고전이 된 《바니가 우리에게 해준 열 가지 좋은 일 The Tenth Good Thing About Barney》에서 애완묘의 죽음으로 겪는 슬픔을 유머로 승화했다. 나는 주인공이 바니의 첫 번째 좋은 점은 한 번에 새를 한 마리만 잡아먹은 것이라고 꼽는 장면이 제일 좋다. 그 장면을 읽을 때마다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다. 아이들에게는 자신들이 겪는 문제를 자상하게 다루어주는 책이 필요하다. 형제자매의 죽음을 극복하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린, 수 알렉산더의 명작 《마음이 단단한 나디아 Nadia the Willful》가 그런 책이다.


  ○ 아이들은 생각보다 더 많은 것을 이해한다
  때때로 아이는 어른보다 더 똑똑하다. 적어도 어른보다 직감은 더 뛰어나다. 아이들은 자신의 감정을 믿고 그에 따라 행동한다. 아이들은 마음으로 읽고 듣고 관찰한다.
  1년 전 나의 남편이 어머니날(5월 둘째 주 일요일)을 잊은 것에 화가 났을 때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고 애썼지만 아이들을 속일 수는 없었다. 아이들은 내가 기분이 언짢다는 것을 눈치 채고 평소보다 더 매달렸다. 내가 바쁠 때면 아무 말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귀신같이 알아챈다. 그리고 꼭 없어진 신발 한 짝을 찾는다거나 점심 도시락을 챙기면서 시간을 질질 끈다.
  그림책 작가는 시시콜콜 다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아이들은 똑똑해서 도덕적인 교훈을 갖다 붙이지 않아도 이야기의 주제를 잘 이해한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게 우리 일이니 억지로 교훈을 가르치려 들지 말자. 그건 교육을 담당한 사람들에게 맡기자.


  ○ 아이들은 오래 집중하지 못한다
  텔레비전과 게임기 때문에 책을 보는 아이들의 집중 시간은 전보다 더욱 짧아지고 있는 듯하다. 그러니 길고 복잡한 이야기는 쓰면 안 된다. 사물 하나가 아니라 사물 하나의 ‘한 부분’에 집중에서 글을 써야 한다.
  예를 들어 바다 이야기를 쓴다고 해보자. 그럴 때는 고래에만 집중한 토니 존스턴의 《고래의 노래 Whale Song》를 참고하자. 아니면 앨리스 셰틀의 《바닷가에 갈 때 필요한 모든 것 All You Need for a Beach》처럼 바다의 다른 부분에 집중해도 된다. 이브 번팅은 《고무 오리 Ducky》에서 바다로 떠내려간 고무 오리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 사물의 한 부분에 철저하게 집중하고 있다. 바다를 두고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 특별했던 바다 여행, 서핑, 바닷가에서의 소풍 등등. 바다에 관한 이야기들로 아이들을 위한 책을 쓰겠다고 마음먹는다면 평생을 다 바쳐도 모자랄 것이다.
  소설가 커트 보니것은 “인물에 대해 무언가를 알려주거나 사건을 전개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내용은 무조건 빼라”고 했다. 성인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분야의 책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지만, 이는 그림책 작가도 깊이 새겨들어야 한다. 글 전체를 구성하는 모든 단어, 모든 문장은 이야기를 결말로 이끄는 데 꼭 필요한 부분이어야 한다.


  ○ 아이들은 자기중심적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중심적이다. 어른은 그런 면을 좀 더 잘 감출 뿐이다. 아이는 교사나 부모가 겪는 문제에 대한 이야기에 관심이 없다. 자신이 겪는 문제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 이 점은 어른도 크게 다르지 않다. 누구나 다른 어떤 책보다 마음에 더 드는 책이 있을 것이다. 나는 남자가 주인공인 소설보다 나와 같은 여자가 주인공인 소설에 더 끌린다.
  아동도서를 쓸 때는 등장인물이 진짜 아이거나 《잘 자라 프란시스 Bedtime for Frances》에서처럼 아이 같은 동물, 《마법 손수건 The Magic Kerchief》에서처럼 아이 같은 어른이어야 한다. 《마법 손수건》의 주인공 그리젤다는 머리가 하얗게 센 어른이다. 그녀는 주변 사람들의 기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쉴 새 없이 진실을 내뱉는다.

  그리젤다는 내 막냇동생의 어린 시절과 다를 게 없다. 예전에 동생은 마트 계산대에 줄 서 있는 한 여자의 치마를 들추었다. 그 여자는 다리 하나가 없었다. 동생은 큰 소리로 물었다. “엄마, 이 여자 다리 하나 어디로 갔어요?” 아이들은 아무 말도 하지 말아야 할 때가 있다는 사실을 아직 모른다.


  ○ 아이들은 독립하고 싶어 한다
  다른 사람이 가르치려고 들면 나를 도와주려고 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기분이 나쁘지 않은가?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은 뭐든지 스스로 하고 싶어 한다. 좋은 부모와 선생은 위험하지만 않다면 아이들이 새로운 능력을 얻도록 가만히 놔둔다. 숟가락으로 음식을 먹게 하고, 컵을 들고 물을 마시게 하고, 날이 무딘 가위로 종이를 자르게 한다.
  또한 아이들이 본보기로 삼도록,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용감한 소년과 소녀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래서 재클린 우드슨의 《울타리 너머 The Other Side》처럼 아이들에게 용기를 주는 책이 필요하다. 《울타리 너머》에는 두 소녀가 나온다. 한 명은 흑인, 다른 한 명은 백인이다. 둘은 두려움과 편견으로 가득 찬 어른들의 간섭이나 개입 없이 우정을 쌓는다. 《크라신스키 광장의 고양이들 The Cats in Krasinski Square》에서는 주인공인 소녀가 게슈타포(독일 나치스 정권의 비밀국가경찰)와 경찰견이 게토(독일 나치스 정권이 유대인들이 모여 살도록 강제한 거주지)에 음식을 몰래 들고 들어가는 사람들을 잡아내지 못하게 막을 방법을 생각해낸다.


  ○ 아이들은 복잡하다
  아이들도 어른과 똑같다. 착하기만 하거나 나쁘기만 하지 않다. 그림책 속 인물에게도 이도 저도 아닌 부분이 있어야 한다. 다양한 면을 지닌, 종잡을 수 없는 인물을 만들어내자.
  영화배우 흄 크로닌은 연기를 할 때 단 하나의 규칙을 따랐다고 하는데, 이 규칙은 그림책에도 아주 잘 들어맞는다. “악마 역을 맡았다면 그 인물 안에서 천사 같은 면을 찾아내라. 천사 역을 맡았다면 그 인물 안에서 악마 같은 면을 찾아내라.” 이 또한 컴퓨터 옆에 붙여두면 좋을 문구다. 잭 갠토스의 ‘사고뭉치 랠프’(《랠프가 나타났다! Rotten Ralph》) 시리즈를 읽어보면 고양이 랠프가 소녀 사라를 따라다니며 ‘늘’ 말썽만 부리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랠프도 옳은 일을 할 때가 있다.


  ○ 아이들은 상상력이 풍부하다
  아이들은 세상 경험이 적기 때문에 어른들이 이미 불가능하다고 못박은 수많은 가능성을 순순히 믿는다. 남자아이는 풍선을 붙잡고 세계 일주를 한다. 개구리와 두꺼비는 말을 한다. 동물원의 동물들은 책을 읽는다. 아이들의 상상력은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간다. 그림책 작가의 상상력 또한 아이들의 상상력을 따라 끝없이 날아갈 수 있어야 한다.




♧ 아이와 어른 모두를 매혹하는 이야기
그림책 쓰기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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