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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서출판 다른 Mar 27. 2019

주인공에 대해 알아야 할 5가지

그림책 쓰기의 모든 것

작가는 자신이 만들어낸 인물을 ‘속속들이 알고 있어야’ 한다. 글을 쓰기 시작할 때 단순히 인물의 모습을 머릿속에 막연히 떠올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나는 이를 비싼 대가를 치르고 나서야 깨달았다. ‘인물 탐구에 시간을 쏟고 싶은 사람이 과연 있을까? 그냥 쓰면 어떻게 되겠지’라고 생각했던 게 잘못이었다는 걸!



  《하룻밤을 보내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작업할 때였다. 편집자가 내게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 소녀의 인물 탐구를 정리해두었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럼요”라고 답했다. 하지만 내 목소리에 긴장감이 실려 있다고 느꼈는지 그녀는 자신에게 기록을 보여달라고 했다. 나는 얼른 두세 문장을 적어서 이메일로 보냈다. 그녀는 내게 전화를 걸어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했다. 그녀 말이 옳았다.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 구체적으로 인물 탐구 내용을 적기 시작했다. 두세 쪽이 나왔고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제야 나는 내 이야기 속 소녀가 게임을 좋아하고 아주 활기차며 할아버지 집에 가게 되어 매우 기뻐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인물을 확실하게 머릿속에 그릴 수 있게 되자 이야기를 다시 써 내려가는 게 쉬워졌다. 나는 소녀가 공깃돌, 퍼즐, 장난감 북을 가방에 챙기리라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상상력이 풍부하니까 여왕 놀이를 할 수 있는 물건들도 넣을 거고. 나는 집을 나설 때 언제나 책을, 그것도 여러 권 챙기지만 그 소녀는 그러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활동적이라 책을 읽을 겨를이 없을 것이다.
  소녀와 할아버지가 함께 책을 읽는 장면으로 이야기를 끝낼 수 없다는 점이 아쉬웠다. 이 책에 사인을 할 때 나는 “언제나 책도 한 권 챙겨 가길”이라고 덧붙이는데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인물을 설정하고 탐구하길 두려워하고 미루던 내게 《하룻밤을 보내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은 인물 탐구의 가치를 깨닫게 해준, 눈이 번쩍 뜨이는 아주 소중한 글쓰기 경험이었다. 언뜻 보기에는 아주 복잡해 보이는 일이 막상 해보면 쉬운 데다 재미있기까지 한 경우가 많다. 인물 탐구도 마찬가지다. 작가는 신이 된다. 소년, 소녀, 곰, 토끼가 전부 작가 손에 달려 있다. 물론 잘 짜인 인물을 만들려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 하지만 생각만큼은 아니다. 그리고 그렇게 쓴 시간은 충분히 가치가 있다.

  인물 탐구를 가장 먼저 할 수도 있다. 아니면 초고를 일단 쓴 뒤 인물 탐구를 하고 머릿속에 인물의 성격, 배경, 감정을 확실히 그린 후에 원고를 다시 손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언젠가는 인물 탐구를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제 나는 인물 탐구를 기록하지 않고 원고를 출판사에 보내는 법이 없다. 모든 등장인물을 탐구하고 적어두고서 글을 쓰는 내내 참고한다. 그렇다고 너무 걱정하지는 말자! 한두 줄 정도만 등장하는 인물까지 자세히 탐구할 필요는 없다. 잠깐 나오는 인물은 그를 정의하는 성격 정도만 알아도 충분할 때가 있다.


  주인공 탐구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내 경우 컴퓨터에 저장해둔 서식에 따라 정보를 적어 넣는다. 수년 동안 다양한 책을 읽고 여러 학회에 참석해서 얻은 수많은 목록을 참조해서 만든 간단한 서식이다. 일반적인 글쓰기에서 쓰는 인물 탐구 목록은 대개 지나치게 길고 그림책 등장인물에 적용하기에는 너무 구체적인 정보를 요구한다. 그래서 나는 다양한 목록을 참조해 다섯 가지 항목을 추렸다. 이렇게 만든 목록을 나는 아주 잘 활용하고 있는데 다른 이들에게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
  그럼 이제 그 다섯 가지 항목을 살펴보자.



주인공에 대해 반드시 알아야 할 다섯 가지


  ○ 이름
  이름 속에는 무엇이 담겨 있을까? 아주 많은 것! 《쉬는 시간의 여왕》 속 심술쟁이 진에게 앨리스라는 이름을 붙였다면 똑같은 느낌이 났을까? ‘아만다’는 라틴어로 ‘사랑받을 만한’이라는 의미인데, 이 이름은 어떤 인물에게 붙이는 게 좋을까? 낙천적이고 태평스러운 아이에게 히브리어로 ‘비애, 비통함의 바다’라는 뜻을 지닌 ‘미리엄’이라는 이름이 어울릴까? 아주 거친 느낌을 주는 ‘커트’라는 이름은 어떤 인물에게 어울릴까? 부드럽게 발음되는 ‘미샤’라는 이름은 어떤 소년에게 어울릴까? 또는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마음이 여린 인물에게 커트라는 이름을, 거친 남자에게 미샤라는 이름을 붙이면 어떻게 될까? 이름은 인물의 모습을 담은 글자여야 한다.
  이름을 다루는 김에, ‘잘못된’ 이유로 편집자의 눈에 확 띄는 방법을 알려주겠다. 바로 내가 초보 작가 시절에 그랬듯 인물에게 스컹크 새미, 비버 빌리 같은 이름을 붙이면 된다. 두운을 활용한 이름 짓기는 ‘깜찍하다’는 인상과 ‘어린이 독자를 무시한다’는 인상 모두를 남긴다. 그런 이름이 등장하는 이야기는 편집자가 가차 없이 거절 목록으로 던져버린다.


  그렇다면 왜 그림책 속 인물을 그냥 스컹크나 비버라고 부르지 않을까? 나는 《다음에, 이구아나》에서 등장인물들에게 이구아나, 토르투가(스페인어로 거북이), 쿠레브라(스페인어로 뱀), 코네효(스페인어로 토끼)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게 아니라 만약에 이구아나 아이다, 토르투가 토미, 쿠레브라 캐시, 코네효 코니였다면 어땠을까!

  죽음을 대하는 자세를 아주 감동적으로 그린 이야기 《언제나 그리고 언제까지나 Always and Forever》에서 앨런 듀랜트가 한 것처럼 동물은 그저 간단히 ‘여우’, ‘두더지’, ‘토끼’, ‘수달’, ‘다람쥐’라고 부르는 게 가장 무난하다. 아니면 《내 사랑 뿌뿌》에서 생쥐를 오웬이라고 한 것처럼 사람의 이름을 붙여도 괜찮다. 어린이 독자가 헷갈리게 이름을 붙이면 안 된다. 매튜와 마틴처럼 비슷하게 들리는 이름은 같은 이야기 안에서 사용하지 않는 게 좋다.

  이름은 대개 그 인물이 그림에서 어떤 성별로 그려지는지 결정하므로 삽화가에게 성별을 선택할 권한을 주고 싶지 않다면 성별이 분명하게 연상되는 이름을 써야 한다. 예를 들어 《젤다와 아이비 Zelda and Ivy》는 누가 봐도 두 소년의 이야기는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뉴베리상 Newbery Award 수상 작가이자 내 친구인 커비 라슨 같은 이름을 가져다 쓴다면 이름만으로는 성별을 알 수가 없다. 라슨은 여성이다. 그렇지만 그녀는 가끔 ‘커비 라슨 아저씨에게’라고 쓰인 팬레터를 받곤 한다.


  ○ 태어난 해와 나이

  주인공의 태어난 해와 나이는 이야기의 시간적 배경을 정하는 데 영향을 끼친다. 이를테면 1700년에 태어난 다섯 살배기는 2000년에 태어난 다섯 살배기와는 아주 다를 것이다.

  1700년대 중반에 태어난 아이 이야기를 쓴다면 ‘마차’, ‘대장장이’, ‘혼북 hornbook’(어린아이가 글씨를 익히는 데 사용한 서판) 같은 단어를 쓰겠지만 현대의 어린이를 주인공으로 하는 이야기에서는 이런 단어를 쓰지 않을 것이다.
  주인공이 몇 살인가도 매우 중요하다. 주인공 또래의 실제 아이들에게 어떤 특징이 있는지 알고 있나? 두 살배기는 네 살배기나 여덟 살짜리 어린이와는 다르게 행동한다.
  주인공이 그 또래처럼 행동하나? 어린애 같은 말투를 쓰는지? 형, 오빠처럼 보이려고 일부러 거칠게 행동하나? 다른 사람들은 인물을 몇 살로 볼까?


  ○ 외모
  주인공이 동물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동물의 외모 또한 묘사해야 한다. 인물의 외모는 작가에게 중요한 정보다. 때때로 나는 인물의 사진을 앞에 놓아두고 글을 쓴다. 가족사진이나 잡지 또는 신문에서 오린 사진을 쓴다. 여기서 인물 묘사나 이미지는 오로지 작가만의 것임을 잊으면 안 된다.
  삽화가는 작가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인물을 그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머릿속에 인물의 모습을 그려두면 삽화가의 그림과는 별개로 이야기를 탄탄하게 구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
  주인공이 외모에 신경을 쓰나, 아니면 별 관심이 없나? 누군가를 닮았나? 단정한가? 지저분한가? 어떤 옷을 즐겨 입나? 특별히 좋아하는 옷은? 건강도 중요할 수 있다. 자주 아픈가? 절름발이인가? 자폐아일 수도 있다.


  ○ 인간관계
  먼저 가족관계를 적어보자. 특히 이야기에서 가족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면 반드시 가족관계를 먼저 정리해야 한다. 부모, 형제 그리고 그 밖의 가족은 누가 있나? 그저 이름만 붙여서는 안 된다. 그들은 각각 어떤 사람들인가? 외모와 성격 등을 정해야 한다. 주인공이 가족 누군가와 갈등을 겪고 있나? 가족이 이민자 출신인가? 그 나라만의 독특한 행동 양식이나 신념이 있나? 있다면 어떤 것들인가? 새로운 땅에서 잘 적응하고 있나?
  가족의 경제적 상황이 이야기 속에서 중요한가? 부모가 맞벌이를 하나? 주인공이 여기에 영향을 받고 있나? 친구관계는 어떤가? 이웃은? 선생님과의 관계는? 이 관계들이 이야기에 나온다면 주인공이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받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도 알아야 한다.


  ○ 성격
  집중력을 가장 많이 써야 하는 중요한 부분을 마지막으로 남겨두었다. 좋아하는 그림책을 보면서 그 이야기 속 인물에 대해 생각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만일 생쥐에게 과자를 준다면》 속 생쥐의 성격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 생쥐와 《링컨 씨의 수염 Mr. Lincoln’s Whiskers》 속 그레이스의 성격이 같다고 할 수 있을까? 어떤 점에서 다를까? 생쥐와 그레이스는 《코끼리 왕 바바 The Story of Barbar》의 바바와는 어떻게 다를까? 인물들 간의 차이점을 파악하면 이야기 속 인물들의 성격을 더 구체적으로 설정할 수 있다.
  인물의 성격을 고민할 때면 나는 인물의 강점과 약점, 관점, 두려움, 집착, 특별한 능력, 취미 등에 대해 생각해본다. “어디 한번 해봐”라고 말하길 좋아하는지, 지루해질 때마다 손으로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는 버릇이 있는지도. 또한 인물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애쓴다. 직접 그 인물이 되어 작가인 내게 편지를 써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이야기한다.


  자, 이게 전부다! 오직 다섯 가지 항목만 탐구하면 끝이다.


  1 이름
  2 태어난 때와 나이
  3 외모
  4 인간관계
  5 성격


  이제 인물 탐구가 모두 끝났다. 파일을 인쇄해서 서랍장에 처박아두거나 컴퓨터에 저장하고서 잊어버리지 말자. 끊임없이 다시 꺼내 읽어보자. 그러다 이리저리 수정하거나 삭제하거나 교정하거나 구체화 할 수 있다.
  원고를 쓰는 중이거나 막연히 아이디어를 머릿속에서 떠올리는 중이거나, 또는 글을 쓰다 인물의 행동에 의문이 들 때에도 나는 인물 탐구 기록을 다시 읽어본다. 한동안 묵혀두었던 이야기를 다시 쓰려고 할 때도 그전에 인물 탐구 기록을 다시 읽는다.
  머릿속에 인물 탐구 내용을 확실히 넣어두면 원고를 수정할 때 잠시 멈추고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이 인물이 정말 이렇게 말할까?” 결국 자신이 아는 인물이 처음 생각과는 다르게 행동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한다.
  하지만 때로는 뜻밖의 이야기가 나올 수 있도록 어느 정도 여지를 인물에게 남겨두어야 한다. 인물이 느닷없이 말을 하거나 행동을 할 때가 있다. 이럴 때 작가들은 인물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며 즐거워하곤 한다. 그리고 그것도 괜찮다. 다만 편집자에게 원고를 보내기 전에 최종 원고 속 인물이 그 자신의 성격과 어울리는 행동을 일관되게 하는지 확인하자.




♧ 아이와 어른 모두를 매혹하는 이야기
그림책 쓰기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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