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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서출판 다른 Apr 02. 2019

좋은 결말의 12가지 기준

그림책 쓰기의 모든 것

결말이 약하면 저녁은 먹었는데 후식을 먹지 못한 느낌이다. 뭔가 부족하다. 달콤한 초콜릿 케이크를 먹으면 포만감이 느껴지듯이 결말이 훌륭하면 기분이 좋고 만족스럽다. 초콜릿 케이크는 많이 먹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자꾸 먹고 싶듯이, 결말이 훌륭한 그림책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읽고, 또 읽고, 또다시 읽고 싶어진다.



  반면에 결말이 약하면 뒷맛이 개운치 않다. 기대감을 잔뜩 부풀려놓고 시시하게 끝나는 그림책이 정말 많다. 안타깝게도 어떤 책, 어떤 연극, 어떤 영화도 앞부분이 어떤지와 상관없이 결말에 따라 훌륭하다, 무난하다, 심지어는 형편없다고 평을 받기 마련이다.

  캐서린 앤 포터처럼 “결말을 모르면 글을 쓸 수가 없어요. 언제나 마지막 문장, 마지막 단락, 마지막 쪽을 가장 먼저 쓰죠”라고 말하는 작가가 있다. 그런가 하면 이야기가 어디로 흘러가는지 전혀 모른 채 머릿속에 떠오른 내용을 그대로 옮겨 적어 예상치 못한 결말과 맞닥뜨리길 기대하는 작가도 있다. 주인공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는 것이다.


  언제 결말을 쓰든 어른 독자와 어린이 독자에게 ‘그저 그렇다’는 인상을 남기지 않도록 정성을 쏟아야 한다. 지금부터 결말을 평가할 수 있는 열두 가지 기준을 알아보자.



  ○ 쉽게 예상할 수 있으면 안 된다

  결말은 이야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면서도 뜻밖이어야 한다. 집주인을 죽인 범인이 집사라는 게 뻔히 드러나는 소설을 누가 계속 읽고 싶을까? 친구들을 괴롭히던 아이가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될지 눈에 훤히 보이는 그림책을 계속 읽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그 아이가 대가를 치르기 바라더라도 어떤 대가를 치를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알 수 없기를 원한다.



  ○ 문제는 해결되어야 한다

  때로는 이미 문제가 있는데 중간에 또 다른 문제를 끌어들인 다음 결말에서 그 두 번째 문제만 해결하는 경우가 있다. 주인공이 자신이 지나갈 때마다 으르렁대고 짖어대는 이웃집 개를 무서워한다고 해보자.

  이게 바로 이야기에 주어진 문제다. 그러던 어느 날 주인공과 그 형이 개를 피하려고 다른 길로 간다. 길 끝에 다다르자 주인공은 길을 건너기가 무서워졌다. 커다란 트럭이 저쪽에서 올까 봐 걱정이 된다. 트럭이 멈추지 않으면 어쩌지? 형이 손을 꼭 잡자 주인공은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 형제는 함께 길을 살피고 차가 오지 않는지 신경을 곤두세운다. 결국 길을 건너는 데 성공하면서 이야기는 끝난다. 그런데 이웃집 개를 무서워하는 주인공의 두려움은? 그건 아직 극복하지 못했다.

  주인공이 한 가지 질문에 집중할 때 결말 역시 잘 매듭을 지을 수 있다.



  ○ 앞에 쓴 모든 내용과 이어진다

  이어지지 않는다면 지우자. 결말로 이끄는 데 보탬이 되지 않는 부분은 전부 지우자. 아깝지만 제일 마음에 드는 단어나 문장을 지워야 할 때도 있다.

  냉정해지자. 지우는 게 너무 고통스럽다면 파일을 하나 만들어 특별히 마음에 들었던 구절을 저장하자. 나중에 다른 이야기에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



  ○ 문제는 주인공이 해결한다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를 쓰면서 해결책을 알려주는 현명하고 착한 어른을 등장시키는 경우가 너무 많다. 어른을 없애자. 그림책은 아이들에게 자신감을 북돋아 주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작가는 이 점을 결말에 이르러 잊어버리기가 쉽다.

  학교 가는 길에 자신을 괴롭히는 아이가 있다. 주인공은 그 아이에게 맞서려고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한다. 모두 실패하고 아빠에게 조언을 구한다. 아빠가 조언을 한다.

  이러면 안 된다, 안 된다, 절대 안 된다!

  만족할 만한 해결책을 주인공 스스로 생각해내야 한다.



  ○ 주인공이 어떤 식으로든 변한다

  시인이자 평론가인 맬컴 카울리는 “어떤 글이든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이야기는 세 가지 요소로 이루어진다. 인물, 상황, 무언가가 바뀌어 있는 결말.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면 이야기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따라서 그림책의 주인공도 자신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깨닫거나, 세상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거나, 자신을 가로막던 무언가를 극복해야 한다.

  드물게는 주인공이 뭔가를 바꾸려고 노력하거나 어떤 시도를 하지만 실패하고 마는 이야기도 가능하다. 이혼한 부모를 재결합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하는 아이가 있다고 하자. 결말에서 아이의 부모는 여전히 이혼한 상태다. 하지만 아이는 자신이 어떻게 해도 상황을 바꿀 수는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부모의 이혼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러한 인정은 변화다.



  ○ 우연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학교에 가기 싫어하는 아이가 있다. 맞춤법 시험에 낙제할까 봐 겁이 나서다. 엄마에게 집에 있겠다고 사정하지만 어림도 없다. 울어도 보고, 배가 아프다고도 해보지만 소용이 없다. 절망감에 휩싸인 채 학교로 가는 길에 건설 현장을 지나는데 난데없이(대부분의 편집자와 작가는 ‘난데없이’라는 단어는 어떤 이야기에서도 금지어라고 말한다) 페인트 통이 머리 위에 떨어진다. 아이는 쓰러지고 인부가 구급차를 불러서 병원에 실려 간다. 24시간 동안 응급실에 머물게 된다. 와! 운이 좋다! 맞춤법 시험은 치지 않아도 된다. 병원에서 지내야 한다는 점 빼고는 아이 입장에서 해피엔딩이다. 그럼 독자 입장에서는 어떨까? 전혀 아니다.



  ○ 조력자가 도중에 마법처럼 나타나지 않는다

  토끼가 코요테에 잡아먹힐 위기에 처했다고 해보자. 코요테가 입을 쩍 벌리고 침을 흘린다. 토끼는 이미 틀렸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때마침(‘때마침’도 금지어로 지정해야 한다) 사냥꾼이 들판에 나타나 총으로 코요테를 쏜다. 토끼는 살았다.

  다시 말하지만 이러면 안 된다, 안 된다, 절대 안 된다!

  토끼에게 계획이 있었다면? 코요테가 코에 닿을 만큼 가까이 올 때까지 꾹 참고 기다렸다면? 그 순간 토끼가 코요테에게 달려들어 넘어뜨린다. 토끼는 용기와 지혜를 발휘해 도망친다. 토끼가 혼자서 해냈다, 만세! 이래야 독자가 토끼를 마음껏 응원할 수 있다.



  ○ 등장인물 모두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다른 장르와 달리 그림책에서는 잠깐 등장했다가 영영 사라지는 인물이 있으면 안 된다. 독자는 학교 가는 길에 주인공을 괴롭히던 아이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한다. 이웃집에 간 친구가 돌아오길 기대한다. 전날 밤 우유를 준 아기 고양이가 같은 자리에 돌아오지 않으면 당연히 걱정하면서 기다린다. 만약 이 인물들이 그저 카메오에 불과하다면, 십중팔구 빼버려도 된다. 다만 여기서 ‘십중팔구’라고 했듯이 카메오 중에는 간혹 빼지 말아야 하는 예외가 있다. 이러한 예는 특히 민담에서 찾아볼 수 있다. 민담에서는 탐험에 나선 주인공에게 힘을 주는 존재가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한다. 하지만 이때에도 그 힘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그 존재는 처음부터 등장시키지 말아야 한다.



  ○ 결말은 마지막에 나온다

  당연한 말 같지만 의외로 잘 지켜지지 않는다. 그림책에서 해결책은 대개 28쪽에서 29쪽 사이에 등장한다. 30쪽이나 31쪽에 나오면 더 좋다. 그런데 어떤 작가들은 중간에 해결책을 알려주고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예를 들어보자.

  주인공이 시합에 대비해 야구 연습을 하며 열심히 실력을 쌓는다. 야구장에 가서 매일 타격 연습을 한다. 시합 날이 되었고 연습한 보람이 있다. 홈런을 쳐서 시합에 이긴다. 만세! 그런데 이야기가 끝나지 않는다. 응원단이 주인공을 어깨에 메고서 마을을 돈다. 축하 파티도 연다. 다음 날 신문에 주인공의 홈런을 칭찬하는 기사도 실린다. 이제 그만 끝낼 때가 되었는데!

  주인공이 홈런을 쳤다니 다행이다. 하지만 그뿐이다. 응원단이 환호하며 어깨에 태우고 돌아다니는 것까지 줄줄이 나오는 것은 지나치다. 작곡가 이고리 스트라빈스키의 말대로 “끝났는데도 너무 많은 조각이 들러붙는다.”

  문제가 해결되면 이야기는 끝난 거다. 마지막 단 한 조각을 빼고.



  ○ 깔끔하게 매듭을 짓는다

  그림책에서 32쪽은 남은 이야기를 매듭짓기에 완벽한 자리다. 반쪽짜리 삽화(옆쪽으로까지 넘어가지 않는 삽화)가 들어가는 자리다. 32쪽에서는 더 이상 그다음 쪽이 없다(40쪽 이상인 그림책이 아닌 이상). 아주 짧고 간결한 문장이 어울린다.

  《괴물들이 사는 나라》에서 맥스는 버릇없이 굴다가 저녁도 못 먹고 방으로 쫓겨난다. 괴물들과 모험을 즐기다 돌아왔는데, 와 이럴 수가, 32쪽에 저녁상이 맥스를 기다리고 있다. 심지어 먹기 좋게 따뜻하게 데워져 있다. 이 마지막 쪽은 아주 만족스러워서 책을 덮은 후에도 기억 속에 오래도록 머문다.

  《사과 파이를 만들면서 세계 여행을 하는 법》의 마지막 문장도 아주 훌륭하다. 주인공은 시장이 문을 닫아서 사과 파이를 만들 재료를 구하려고 세계를 여행한다. 결말에서 주인공은 친구들과 함께 파이를 먹으려고 앉았는데 이번에는 아이스크림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시장에 가지만 여전히 문이 닫혀 있다. 하지만 주인공이 다시 여행을 떠나리라는 독자들의 예상은 빗나간다. 놀랍고도 재미있는 결말이니 직접 읽어보자.

  훌륭한 마지막 문장을 읽으면 얼굴에 미소가 번지고 ‘아하!’ 행복의 감탄사가 입에서 절로 나온다. 이런 문장은 뜻밖의 결론을 내는데, 사실 더 자세히 살펴보면 ‘뜻밖이지만 당연한’ 결론이다. 그러면 누구나 그 그림책을 다시 읽고 싶어진다.

  내가 쓴 《꼬마 원숭이가 잘 자라고 인사해요》에서 꼬마 원숭이는 서커스를 휘젓고 다니며 모두에게 잘 자라고 인사한다. 이제 자러 갈 때가 되었지만 아직 인사해야 할 사람이 한 명 더 있다고 고집을 부린다. 32쪽에서 꼬마 원숭이는 이불 속으로 들어가 “나야, 잘 자”라고 말한다.

  마지막 문장은 정말 중요하니 소홀히 하면 안 된다. 이야기의 마지막 조각을 빚는 데 정성을 다해야 한다. 결말에서 아직 맞추지 못한 조각이나 매듭짓지 못한 끈이 없는지 잘 살펴보자. 어른이나 청소년을 위한 책에서는 일부러 모든 것을 깔끔하게 마무리하지 않기도 하지만, 어린이 독자들은 시리즈물처럼 뭔가가 덜 정리된 이야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림책 중에는 전통적인 의미의 시리즈물이라는 게 없다. 인기 있는 주인공이 여러 책에 등장하기는 한다. ‘올리비아’나 ‘사고뭉치 랠프’가 그런 예다. 하지만 이 책들 속의 이야기가 서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이 책에서 마무리되지 않은 이야기를 저 책이 이어받는 일은 없다. 각각의 책은 그 자체로 독립된 이야기다.

  책을 냈는데 반응이 좋아서 편집자가 시리즈로 한 권 더 내자고 한다면 아주 좋은 일이다! 초콜릿 케이크에 아이스크림을 한 숟가락이 아니라 두 숟가락을 얹는 일이나 마찬가지다. 다만 시리즈물이라 해서 각 이야기를 제대로 마무리 짓지 않는 일은 없어야 한다. 시리즈물을 쓸 때에도 각각의 책을 베스트셀러로 만들겠다는 각오로 쓰자.



  ○ 교훈이나 훈계는 필요 없다

  영화 제작자 새뮤얼 골드윈은 이런 말을 했다. “교훈 전달은 웨스턴 유니언에게나 맡겨라.”(웨스턴 유니언은 과거 통신 회사였다) 시나리오 작가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이지만 그림책 작가도 귀담아 들어야 할 말이다.

  이야기는 독자에게 재미를 안겨주어야 한다. 그러나 이 사실을 잊는 작가가 안타깝게도 가끔 있다. 아예 다른 공간, 다른 인생, 다른 세상으로 독자를 끌고 가는 것이다. 교훈을 일러주고 싶다면 논픽션을 쓰거나 종교 신자를 대상으로 글을 써야 한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아이도 어른처럼 자기 나름의 생각이 있다. 작가가 억지로 집어넣지 않아도 어린이 독자는 스스로 교훈을 깨닫는다.

  이솝은 이야기 끝에 그 이야기의 교훈을 덧붙였다. 그때는 그래도 괜찮았다.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다르다. 콜더컷상 수상작인 《아놀드 로벨 우화 Fables》처럼 이솝 우화 자체를 익살맞게 재구성해서 교훈을 덧붙인 경우라면 모를까.

  지금의 글쓰기 방식은 과거와 다르다. 앞서 예로 든 야구 시합 이야기에서 ‘연습을 열심히 하면 좋은 결과 를 얻는다’는 문장을 작가가 굳이 덧붙인다고 생각해보자. 읽으면서 썩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이다. 어린이 독자는 대놓고 말하지 않아도 그러한 교훈을 얻는다. 어리다고 얕보지 말자.



  ○ 해피엔딩이 아니어도 되지만 희망은 담겨야 한다

  희망은 그림책을 비롯해 어린이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글만의 특징이다. 어른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책에서는 끔찍한 사건을 묘사하고 비관적으로 인생을 논하는 일이 흔하지만 어린이 독자를 대상으로 글을 쓰는 작가는 그보다 더 낙관적인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오늘날 아이들은 전쟁과 죽음, 굶주림과 학대, 그 밖의 수많은 위험에 넘치도록 노출되어 있으니까.

  예전에는 단순하고 재미있는 축제였던 할로윈도 이제는 무섭고 험악해지고 있다. 어른은 어린아이보다 걱정과 불안에 더욱 잘 대처한다. 그림책 작가에게는 지금 세상을 살아가는 아이들의 불안감을 키우지 않도록 주의할 의무가 있다.

  그렇다고 전쟁, 죽음, 굶주림을 다루면 안 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런 소재를 다루더라도 어린이 독자에게 희망 한 조각을 남기는 무언가를 집어넣어야 한다는 뜻이다. 재클린 우드슨의 《울타리 너머》를 읽어보자. 인종이 다른 두 소녀가 울타리 너머로 손을 내밀고 우정을 키우는 섬세한 이야기다. 둘은 여전히 인종으로 분리된 세상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결말에서 미래는 다를 거라고 암시된다.


  결말이 훌륭한 책 세 권을 소개하겠다.

  마지 팰라티니의 《프랑스 암탉 세 마리 Three French Hens》에서 여우 필은 형편이 안 좋아 굶주린 나머지 크리스마스 전날 자신을 찾아온 멋쟁이 프랑스 암탉 세 마리를 잡아먹기로 한다. 하지만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프랑스 암탉들은 그를 너무나 잘 보살펴 주었고 필은 도저히 암탉들을 잡아먹을 수가 없었다. 암탉들의 보살핌에 감사하며 필은 크리스마스트리 밑에 암탉들이 놓아둔 선물을 돌려주기로 한다. 감동적인 해피엔딩이지 않은가! 그런데 암탉들은 선물을 받지 않는다. 유대교 신자여서 크리스마스를 기념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주 기발한 반전이지 않은가? 필과 암탉들은 포옹을 나누고 공현절(1월 6일. 기독교의 축일 중 하나)까지 남은 12일과 하누카(8일 동안 이어지는 유대교의 연례 축제) 8일을 함께 기념한다.

  《이건 상자가 아니야》의 결말도 아기자기하다. 앞 장에서 보이지 않는 화자는 토끼에게 상자를 가지고 무얼 하느냐고 묻는다. 그때마다 토끼는 항상 이건 상자가 아니라고 답하고 자신이 상상으로 만들어낸 다른 무언가라고 말한다. 토끼는 화자가 질문을 할 때마다 점점 더 짜증을 내고 결국 화자는 “그래, 알았어. 그런데 그게 상자가 아니면 뭐야”라고 묻는다. 토끼의 답은? “그건 내, 상자가 아닌 거야.”

  《탁탁 톡톡 음매 젖소가 편지를 쓴대요》에서는 암소들이 결국 원하던 전기담요를 얻어내고 암탉들 것도 얻어낸다. 거기에서 끝일까? 아니다. 다음 날 아침 오리가 농부에게 새 편지를 건넨다. 오리는 그동안 농부와 암소들 사이에서 편지를 전달했다. 새 편지에는 연못에 다이빙대를 설치해달라는 오리들의 요청이 적혀 있다. 이 책의 작가는 암소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재미있는 반전으로 오리들의 문제를 남긴다.

  결말이 훌륭한 책들은 얼마든지 더 찾을 수 있다.




♧ 아이와 어른 모두를 매혹하는 이야기

그림책 쓰기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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