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이렇게 된 거, 정동진이다

길을 잃어야 도착할 수 있는 곳

by 다루오

길을 잃어야 도착하는 곳이 있다


결단코, 내 목적지는 정동진이 아니었다.

그날 나는 세 아이를 태우고 부산을 향하고 있었고,

출발 전부터 머릿속에는 도착 후의 일정이 그려져 있었다.


그런데 내 뒷좌석에 앉은 세 마리 아기곰들은

아웅다웅 자기 권리를 주장하며

“이 노래 틀어야 해!”, “아니야, 저 노래!”

끝없는 토론과 소란을 벌였다.


차량을 갓 바꾼 터라 조작이 낯설었고,

차 내비게이션 화면은 내가 익숙한 것과 달라

길 안내보다 당황스러움만 주었다.

그 와중에 뒤에서는 끊임없이 소리가 쏟아졌다.


세 번이나 길을 잘못 들고 나서야 깨달았다.

아, 오늘은 부산이 아닌 길을 걷게 되겠구나.





기왕 이렇게 된 거,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한 시간 반은 돌아가야 원래 목적지에 닿는 상황.

그 순간, 내 마음속에 결심이 섰다.

“그래, 이렇게 된 거면 잘못 든 길에서 제일 예쁜 데로 가자.”


내가 선택한 곳은 정동진.

처녀 시절, 예쁘게 사귀던 남자친구와 여행했던 곳이자,

이미 세상을 떠난 언니가

20대에 홀로 훌쩍 떠났던 바다.


작고 고즈넉하지만,

모래시계처럼 시간을 품은 그곳.

나는 그 바다를 아이들의 기억 속에도 심어주고 싶었다.





엄마, 감상을 허락받다


정동진에 도착하자,

온몸을 조여오던 긴장과 짜증이 파도 소리에 씻겨 내려갔다.

역시, 나는 바다의 사람이다.


아이들은 옷이 젖는 것도 잊고

바다로 달려갔다.

나는 “안 돼”라는 말 대신,

그저 그 순간을 허락했다.


바위 위에 앉아

아이들을 바라보며 메모장을 켰다.

나는 작가이니까.

아니, 적어도 그 마음을 가진 사람이니까.





문제보다 풍경을 붙잡는 법


남편도, 조력자도 없이

세 아이를 데리고 살아온 10년.

나는 문제에 머무르지 않고

그 상황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훈련을 해왔다.


길을 잘못 들어 도착한 바다,

그 실수조차 선물처럼 느껴졌다.





엄마도 한때 소녀였다


첫째 다엘이가

“엄마, 이제 가자” 재촉했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여기, 엄마 대학교 때 남자친구랑 온 적 있어.”

다엘이의 눈이 커졌다.

그 순간, 나와 딸의 시간 속에

작은 비밀이 생겼다.


바위 위에 앉아, 나는 다시 바다를 본다.

하늘은 여전히 푸르고,

저 수평선 너머에는

또 다른 내 인생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길을 잃어야 도착하는 곳이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다시 나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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