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쌓아가는 시간

by 한미숙 hanaya



‘“애야, 너는 어디서 왔니?
’네가 사는 곳‘ 이라는 데가 어디야?
그 양을 어디로 데려갈 거니?”



어린 왕자를 필사하고 있다. 필사하다 보니 눈에 보이지 않던 문구들이 보인다.

비행기 조종사는 어린 왕자에게 묻는다. 어디서 왔는지? 양을 어디로 데려갈 건지?


나는 사람들을 만나면 잘 묻지 않는다.

타인에게 별로 관심이 없는 편이기도 하지만, 굳이 꼬치꼬치 캐묻고 싶지 않다.

만약 나와의 인연이 계속될 사람이라면 시간이 흐르면서 저절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런 이유로 내가 만나는 사람은 늘 한정적인지도 모른다.

가끔은 내가 인생을 잘못 살았나? 내가 너무 소극적인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러나 여러 사람과의 관계로 피곤해지고 싶지 않다.

많은 사람과의 피상적인 관계보다는 소수와의 깊은 관계가 나에게는 더 편안하다.


특히 상대가 말하고 싶지 않은 부분을 끝까지 캐묻는 것은 실례라고 생각한다.

딸 아이 입시시즌에 아이가 어느 대학을 갔는지 끈질기게 묻는 사람이 있었다.

적당히 대답했지만, 계속해서 묻는 사람하고 더이상 연락을 주고받지 않는다.

질문에 답하는 사람이 대답하고 싶지 않은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은 전혀 배려하지 않는 행동이라 생각한다.


질문을 많이 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그들에게는 질문은 관심의 표현일 수도 있다.

상대를 좀 더 알고 싶은 진심일 수도 있다.

“관심 없으면 묻지도 않는다.”는 말처럼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유대감을 표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다만 나는 그 관심이 때로는 부담스럽다.

관계는 서로 다른 속도로 깊어지는 것이고, 나는 천천히 층층이 쌓아가는 방식이 편하다.

급하게 캐묻는 관심, 과한 친절은 관심이라기보다 상대의 경계를 존중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결국 좋은 관계란 서로의 속도를 맞춰가는 것이 아닐까.

묻고 싶은 것을 참는 것도 배려이고,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을 지키는 것도 관계를 지키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관계 #시간 #일상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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