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탉과 아이들

by 한미숙 hanaya



“수탉과 메추라기는 인간과 달리 미덕에 대한 이해가 없고,
선이나 정의를 알지 못하며, 이러한 것들을 위해 애쓰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싸우며,
심지어 심한 부상에도 일어나 상대에게 굴복하지 않으려고 죽음을 불사하며 싸운다.”

무소니우스 '소박한 삶'



“똑, 똑”

“네”


교실 문을 열자 60여개의 눈동자가 나를 향한다.

일부는 미심쩍은 시선으로 일부는 호기심의 눈초리로 쳐다보면서 나를 탐색한다.

선생님은 그제야 책상 의자에서 일어난다.

교실에 들어서는 순간 느껴지는 분위기는 그날의 수업을 알 수 있다.

아이들이 어떤지, 수업이 어떻게 흘러갈지, 담임선생님은 어떤 분이신지 말하지 않아도 문을 여는 순간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오랜만에 예쁜 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을 만나러 갔다.

아이들은 예쁘고, 인원수도 내가 학교 다닐 때의 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들에게서 우리 때와 같은 끈끈한 정을 느끼기 어렵다.

해가 가면 갈수록 점점 더 그런 것 같다.

가끔은 선생님에게도 그런 느낌을 받는다.

담임선생님이지만, 사랑보다는 의무감으로 할 일을 하는 느낌이다.

언제나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오늘 역시 그랬다.

젊은 선생님은 수업 시간 내내 내가 진행하는 수업이지만, 책상에서 일어나지 않고 앉아 있었다.

간혹 아이들이 질문하거나 장난을 치면 통제의 목소리를 날리셨다.

이렇게 수업을 진행하면 기분이 별로 유쾌하지 않다.

초등학생은 담임선생님이 교실에 계시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대부분 뒤에서 지켜본다.

초등생의 분위기를 찾을 수 없는 통제된 느낌이 드는 반의 아이들은 친구들끼리 배려하지 않는다.

수탉과 메추라기처럼 미덕에 대한 이해도 없고, 공감이나 상대를 위한 마음을 쓰지 않는다.

단지 내가 싸워서 이겨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만 가득해 보인다.

고등학생도 아닌 초등교실에서 가끔 이런 반을 만나면 수업을 끝내고 나와도 기분이 우울하다.

자라면서 우리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나도 모르게 삶의 전쟁터에 뛰어든다.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더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서로 견제한다.

잘 되기 위해서 남을 밟고 올라서기도 한다.

그렇게 열심히 달리지만, 무엇을 위해 달리는지도 모른 채 앞만 보고 뛰어간다.

내 옆에 누가 쓰러졌는지, 내가 누구를 넘어뜨렸는지 생각하지도 않는다. 마치 수탉과 메추리처럼….

하지만 가끔은 교실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다를 때가 있다.

선생님의 밝은 미소와 아이들의 반짝이는 눈빛이 나를 반기는 경우이다.

그 교실에는 보이지는 않지만, 선생님의 사랑이 공기처럼 흐른다.

아이들도 그것을 안다.

그런 반 아이들은 서툴러도 친구를 도와주려는 모습이 보인다.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에 대해 같이 고민해준다.

서로 역할을 나누어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한다.

이런 아이들은 수탉이 아니라, 아직은 사람으로 자라고 있다는 걸 느낀다.

그런 아이들과 만나고 나오는 순간은 나는 온 세상을 선물 받은 기분이다.




#강사에세이 #씁쓸한기분 #모두가그런건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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