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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컵이 주는 교훈

by 한미숙 hanaya

일요일마다 독서 모임을 한다.

일주일 동안 분량을 읽고, 한 명이 내용을 정리하고 질문을 만든다.

그 질문에 대해 서로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시간이다.

서로 다른 지역에서,

하는 일이 전부 다른 사람과의 만남은 흥미롭다.

나와 다른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나는 평생 우물 안에서만 숨 쉬었던 개구리 같다.


다양한 세상을 걸어온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는

그들이 흘린 땀과 눈물로 빚어낸 경험들이 살아 숨 쉰다.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나는 무심코 흘려보낸 나의 시간들이 얼마나 허망했는지 깨닫는다.


조용히 듣는 편인 나는

독서 모임을 끝내고 책상 위에 놓여 있는 빈 컵을 보았다.


한 번도 주의 깊게 살피지 못했던 빈 컵,

컵이 비면 무언가를 채우기 바빴다.

물, 커피, 음료, 차...

빈 컵은 나에게 언제나 채움을 위한 그릇이었다.


텅 빈 그릇 같았던 젊은 시절,

나는 그 컵을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 별로 생각해 보지 않았다.

남들이 그렸던 지도를 따라 대학을 갔고,

적당한 직장에서 일했고,

때가 되어 결혼하고 육아를 했다.

아이가 자라면서 나를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흘려보낸 시간에 대한 아쉬움으로 가득했다.


컵을 채우기 전에도

내가 무얼 마시고 싶은지 생각했지만,

깊이 고민하지 않은 채 물결처럼 흘러간 시간이 지금의 나를 빚어냈다.

돌아보니 되돌릴 수 없는 시간들이 모래알처럼 빠져나가 버렸다.


어쩌면 나는 아직도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 모르고 헤매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채우기보다 비워야 하는 때이다.

넘쳐나는 물건과 욕심,

이기심과 질투심,

정의라는 가면 뒤에 숨겨진 완고한 고집,

버리고 덜어낼 것이 산더미 같은 나를 이제 한 걸음씩 비워가야 한다.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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