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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름속의 행복

by 한미숙 hanaya


해가 서서히 지평선 너머로 사라진 후, 하늘은 마치 거대한 캔버스에 물감을 번지게 한 듯 황홀한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서쪽 끝자락에는 아직 주황빛 여운이 희미하게 남아 있고, 그 위로 분홍빛이 스며들어 부드럽게 녹아든다. 높은 곳으로 올라갈수록 색은 더욱 깊어져 보랏빛과 남색이 층층이 겹쳐지며 하늘을 채워 나간다.


수채화 물감이 젖은 종이 위에서 번져나가듯, 각각의 색들이 서로를 감싸며 하나의 완전한 그라데이션을 만들어낸다. 짙은 남색은 서서히 높은 곳에서부터 내려오고, 보랏빛은 그 사이에서 신비로운 다리 역할을 한다. 이 시간의 하늘은 고요하지만 역동적이다. 색채의 변화는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천천히 변화하지만, 잠시 눈을 돌리면 어느새 또 다른 모습으로 변해 있다.


어쩌면 이 시간은 나에게 주어진 가장 온전한 시간인지도 모른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의 하늘이 나에게 축복을 보내는 듯하다. 일을 무사히 마무리하고 돌아오는 시간, 차 안에 흐르는 조용한 음악은 나의 온몸은 휘감으며 행복한 전율을 불러일으킨다. 하루종일 긴장했던 어깨는 내려앉고, 입가에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분명히 피곤해야 할 시간인데 오히려 몸과 마음이 가벼워진다. 내가 가장 행복한 아니 가장 사랑하는 시간이다. 집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비로소 나 자신과 마주한다. 오늘 하루를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 내가 만난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했는지, 그런 질문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나에게 이 시간은 선물 같다. 조금 먼 거리라도 내가 일하러 가는 이유는 바로 이런 시간이 주는 선물을 즐기기 위해서인지 모른다. 멀리 가야 멀리서 돌아올 수 있고, 이런 여유로운 시간을 더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거리는 때로 축복이기도하다.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들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진다. 가로등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하고, 아직 완전히 어두워지지 않은 하늘과 따뜻한 불빛들은 조화를 이룬다. 이 순간만큼은 내가 영화의 주인공이 된 것 같다. 평범한 일상이지만 특별한 순간으로 변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익숙한 오래된 올드 팝에 볼륨을 조금 높인다. 이런 시간에는 음악도, 하늘도, 내 마음도 모든 것이 완벽한 타이밍으로 만난다. 마치 모든 것이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들로 가득 찬 느낌이다.


집에 도착하면 이 마음은 금세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간이 더욱 소중하다. 하루 중 가장 나다운 시간, 평화로운 시간, 감사한 시간이다. 내일도 이 시간을 위해 아침 일찍 집을 나설 것이다. 돌아올 시간이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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