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 에피소드 05.
독일 문학계의 거장인 오스트리아의 소설가 슈테판 츠바이크(Stefan Zweig)처럼 오스트리아의 인플레이션이 사회에 끼친 영향을 실감나게 표현한 작가도 없다. 슈테판 츠바이크는 『어제의 세계』에서 당시의 시대상을 이렇게 묘사했다.
“사회는 말할 수 없이 혼란스러웠다.
사람들은 어떤 물건이 얼마에 팔리는지 몰랐다.
물가는 마구 치솟았다.
심성이 바른 사람도 전날 다른 상점에서 산 성냥 한 갑을 양심의 가책 없이 웃돈을 붙여 팔았다.
그런데 이 성냥은 다음 날 다른 상점에서 20배나 비싼 가격에 팔리고 있었다.
…… 사람들은 팔 수 있는 것은 죄다 이렇게 사고 되팔기를 하고 있었다.
자신에게 필요한 물건인지 아닌지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특히 금붕어나 골동품 망원경은 소중한 ‘자산’이었다.
사람들은 지폐 대신 자산을 움켜쥐고 있으려 했다.
임대료는 기형적인 양상으로 폭등하고 있었다.
정부는 (사회 계층의 대다수인) 임차인을 보호하고 임대인의 손해를 막기 위해 임대료 인상을 법으로 금지시켰다.”
츠바이크는 인플레이션이 사회에 끼친 영향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신랄하게 평했다.
“40년 동안 부지런히 저축한 돈을 애국심 때문에 전쟁채권에 투자한 사람은 빈털터리가 됐고, 그 덕분에 채무자들은 빚에서 해방됐다.
정직하게 자신에게 할당된 식료품만 받는 사람들은 배를 곯았다.
뻔뻔스럽게 법을 어기는 사람들만 배불리 먹었다.
뇌물을 바치는 사람들이 출세를 하고, 투기를 하는 사람들이 돈을 벌었다.
정가대로 물건을 파는 사람들의 물건은 도둑들의 표적이었고, 정직하게 돈 계산을 하는 사람은 속여 먹기 좋은 대상밖에 되지 않았다.
돈은 녹아서 증발된 상태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어떤 기준도 가치도 없었다.
미덕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약삭빠르게 행동하고 아첨을 일삼고 뻔뻔해야 살 수 있고, 말에게 짓밟히지 않기 위해 말 위에 올라타야 하는 세상이었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츠바이크는 인플레이션 상황 속에서 해외 자본의 행태에 대해서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한 국가에 인플레이션이 3년 동안 급속히 진행되어 화폐 가치가 불안정해지면 해외자본만 남는다.
…… 오스트리아는 ‘해외자본의 집결지’가 되었고 숙명적인 ‘외국인 특수’를 누렸다.
비엔나의 모든 호텔에서 썩은 내가 진동했다.
돈독이 오른 자들은 호텔에 모여 칫솔에서 토지에 이르기까지 모든 물건을 닥치는 대로 사들였다.
궁지에 몰린 사람들이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재산과 골동품이 강도나 약탈을 당한 것이나 다름없는 헐값에 팔렸다는 사실을 눈치 채기 전에, 이들은 돈이 될 만한 것은 전부 싹쓸이해갔다.
믿을 수 없는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나는 역사의 산증인으로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당시 가장 유명한 최고급 호텔 ‘드 유롭 인 잘츠부르크’는 영국 실업자들에게 장기 임대를 한 상태였다.
당시 영국의 실업자 지원 혜택은 상당히 좋았다.
그 돈으로는 영국의 빈민가를 전전해야 했지만 오스트리아에서는 여유롭게 살 수 있었다.”
츠바이크의 결론은 우울하다.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재산을 잃었다.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들과 전쟁채권을 발행하고 화폐발행을 남발하여 경제적 혼란을 일으킨 자들이 책임져야 할 책임을 무고한 시민들이 떠맡은 것이다.
독일 민족은 이 일을 떠올릴 때마다 분노하고 증오심에 불타올랐다.
정부가 조장한 인플레이션의 희생양이 된 국민들은 히틀러의 등장을 환대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글 및 사진 출처 : <인플레이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