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콩밭에 가 있습니다』 에피소드 02.
현재를 즐기는 사람이 있는 반면, 현재에서 벗어나고 싶은 사람도 있다.
누군가는 과거에 매여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현재를 충실히 사는 데 의미를 둘 것이다. 다른 누군가는 미래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할 것이다. 시간에 대해서 느끼는 감정도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운명이 이미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느 한쪽에서는 미래를 바꾸기 위해 노력한다.
세계적인 심리학자이자 스탠퍼드대학교 명예교수인 필립 짐바르도는 존 보이드와 함께 저술한 책 『나는 왜 시간에 쫓기는가』에서 사람들이 시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시간관 검사’를 소개했다. 짐바르도의 시간관 검사에 따르면 인간은 다음과 같은 여섯 가지 시간관을 지닌다.
과거 부정적 시간관 … 어제 내가 왜 그랬을까
과거 긍정적 시간관 … 내가 왕년에는 말이야
현재 숙명론적 시간관 … 이미 이렇게 된 거 어쩔 수 없지
현재 쾌락적 시간관 … 먹고 죽자!
미래지향적 시간관 … 적금을 몇 개 더 들어야겠어
초월적인 미래지향적 시간관 … 저는 윤회를 믿어요
각각의 시간관은 사람마다 강하게 나타나기도 하고 약하게 나타나기도 한다. 이러한 연구 결과를 토대로 짐바르도는 삶을 더 긍정할 수 있는 시간관의 황금 비율을 제시했는데, 이는 다음과 같다.
강한 과거 긍정적 시간관 … 대학 생활에는 전혀 후회가 없어요
약한 현재 숙명론적 시간관 … 상황은 언제든 바꿀 수 있으니까요
비교적 강한 현재 쾌락적 시간관 … 기회가 언제 또 올지 모르잖아요
비교적 강한 미래지향적 시간관 … 내년쯤에는 아파트로 이사 가고 싶어요
결국 맞고 틀린 것은 없다. 과거를 추억하느냐, 현재를 즐기느냐, 미래를 대비하느냐 하는 관념의 차이일 뿐 긍정적으로 삶을 바라보는 것이라면 모두 시간관의 황금비율인 셈이다.
늘 새로운 재미를 찾는 당신은 과거나 미래보다는 ‘현재’를 보는 사람이다. 지나간 일이나 앞으로의 일보다는 지금의 순간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그런 당신에게, 내일에 대비하는 것이 우선인 계획적인 사람들은 잔소리를 늘어놓거나 타박하기 일쑤다. 이솝 우화 속 개미와 베짱이의 교훈을 삶의 규범으로 삼는 그들에게는 ‘현재’만 바라보고 있는 것이 한심해 보일지도 모른다.
… “언제까지 대책 없이 일을 벌이기만 하면서 살 거야?”
… “벌써 서른이 넘었는데 돈은 얼마나 모았어?”
… “너 그렇게 살다가 말년에 고생한다.”
그들은 ‘현재 쾌락적’ 시간관을 이해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한다. 하지만 막상 그렇게 잔소리하는 이들이 대단한 삶을 살고 있는 것도 아니다. 무척 계획적으로 산다고 하지만 인생이 늘 계획대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인생을 결정하는 것은 상당수가 우연이다. 학교 다닐 때 1등을 하던 학생이 과연 지금도 학교 다닐 때 노력한 만큼 잘 살고 있을까? 직장에서 죽어라 일하는 이들이 과연 정년까지 직장을 다니는가? 최소한의 노력은 물론 필요하다. 하지만 필요 이상으로 노력하지 않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시험에서 100점 만점을 받으려면 100만큼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해보자. 200만큼의 노력을 쏟아도 100점 이상을 받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100 이상은 노력하지 않는 것이 합리적인 것 아닐까? 90만큼 노력하면 대체로 90점을 받지만 운이 좋으면 100점도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보자. 100점이 안 나올까 봐 강박적으로 200만큼의 노력을 쏟아붓느니 90만큼 노력하고 남은 10은 현재를 즐기는 데 쓰는 게 합리적일 수도 있다.
‘지금’이 가장 중요한 사람이라면,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일에 부딪쳤을 때는 안 하는 것이 답이다. 대신 현재를 즐기는 것이 정신 건강에 더 좋은 일이다. 때론 열정적으로 최선을 다했는데도 결과가 안 좋게 나올 수도 있다. 그러면 쓸데없는 짓을 했다는 생각을 할 게 아니라 재미있게 했다는 데 의미를 두면 된다.
일도, 인생을 살아가는 것도 마찬가지다. 당신의 빛나는 순간순간을 충실히 즐기고 열정을 다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값진 경험이 된다. 그러니 당신은 지금까지처럼 현재를 열심히 살아가면 되는 일이다.
프랑스의 정신분석가 자크 라캉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현실계, 상상계, 상징계라는 용어로 나누어 표현했다. 현실계가 지금 나의 현재를 말한다. 그런데 인간은 항상 현재 나에게 없는 것을 욕망하면서, 나에게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상상한다. 현실계에서 상상계로 이동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다 상상하던 것이 막상 실현되면 그때부터는 상상계가 현실계로 바뀌게 되고, 인간은 다시 새로운 무언가를 욕망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욕망이 이동하며 반복되는 곳이 상징계이자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다. 상징계가 계속 펼쳐지는 것이 곧 인생인 것이다. 그러므로 삶의 목적은 무언가를 소유하는 것, 이미 소유한 것을 지키는 것이 아니다. 무언가를 이루는 과정, 그 자체를 즐기는 것. 그것이 본래 우리가 살아가는 가장 큰 이유일지도 모른다.
출처 : <마음이 콩밭에 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