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 에피소드 03.
1700년대 프랑스에 종이화폐의 발행을 주도한 장본인이자 인플레이션의 대서사시를 쓴 주인공이 있었다. 돈 한 푼 없이 돈 버는 법을 발견한 사람, 프랑스에서 활동한 영국의 재정가 존 로(John Law)다.
존 로는 무에서 유를 창조할 줄 알았다. 타고난 도박꾼이자 모험가였던 그는 고향 스코틀랜드에서 결투를 벌이다 사람을 죽이는 바람에 도망자 신세가 되어 유럽 전역을 전전했고, 도박판에서 툭하면 사기를 쳐서 도박꾼들에게 쫓겨 다니기 일쑤였다. 그는 화폐론에 관한 책도 여러 권 집필했는데, 29세에 이미 자신의 저서에서 ‘악마의 화폐체계’에 관한 내용을 썼다.
그는 대출과 통화량을 늘리면 경제를 활성화시킬 수 있다고 확신했고, 국가에서 가치를 보장하는 화폐를 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715년 프랑스로 건너간 그는, 빈털터리가 된 프랑스 국왕에게 도움을 주겠다고 자청했다. 존 로에 의한 총 4막의 대서사시는 이때부터 5년 동안 펼쳐졌다.
제1막은 1716년에 존 로가 프랑스 국왕으로부터 은행 설립 허가를 받으며 시작되었다. 이 은행이 바로 최초의 지폐발행은행 뱅크 제너럴(Banque Generale)이다. 뱅크 제너럴은 고객에게 대출을 승인하고 예금을 받고 은행권을 발행했다. 요즘과 마찬가지로 자금 출자를 위해 정상적으로 수익이 발생하는 주식을 발행한 것인데, 다만 주식 지분의 일부는 국왕의 소유였다.
존 로는 일반은행에서 대출한 자금으로 국가의 부채를 상환했다. 국가 부채의 일부를 은행에서 인수하고 은행에서 발행한 은행권이 담보가 된 것이다. 은행에서는 시민들에게 언제든 이 은행권의 가치만큼 은으로 교환해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물론 국민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꼼수였다.
사실 뱅크 제너럴은 그만큼의 자금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은행권 전액을 은으로 돌려줄 수 있을 만큼의 예금도 자본도 없었다. 하지만 존 로는 ‘은행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동시에 은으로 교환해달라고 요청하지만 않는다면 그만큼의 금액을 충당하고도 남을 만큼의 은행권을 찍어낼 수 있다. 고객들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은행권이 가치가 있다고 믿어주기만 한다면 리스크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 원칙은 지금도 여전히 금융 및 화폐 체계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한편 프랑스 국왕은 시민들의 은행권 사용을 장려하기 위해 은행권으로 세금을 납부하도록 했다. 존 로가 발행한 은행권은 그 사이 프랑스의 합법적인 지불수단이 되었다. 이때만 하더라도 사람들은 은행권의 매력에 푹 빠져 있었다. 부채도 순환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최대 채무자였던 국가는 은행으로부터 은행권을 대출받고, 국민들에게는 이 은행권으로 세금을 납부하도록 지시함으로써 은행권을 확보했다. 그러고 나서 이 은행권으로 국가의 부채를 정리했다.
프랑스 국왕은 이 사업 모델이 성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실제로 은행은 상당한 흑자를 냈다. 1718년 뱅크 제너럴은 뱅크 로얄(Bank Royale)로 승격되는 동시에 국영화되었다. 국왕이 은행권의 가치를 보장하면서 드디어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조폐권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제2막은 1717년 존 로가 서인도회사를 설립하면서 시작됐다. 식민지의 자원을 개발하고 약탈할 수 있는 독점권을 갖고 있었던 서인도회사는 해외 식민지를 개척하면서 자본을 축적했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주식을 발행했고 수익이 보장되는 주식이라며 사람들에게 주식 투자를 권장했다.
사람들은 서로 주식을 사겠다고 아우성이었다. 이 돈으로 국가의 부채를 지불할 수도 있고 지금껏 그렇게 해왔는지도 모른 채 말이다. 국가의 채권자들은 자신들이 갖고 있던 차용증과 사실상 국가의 소유물을 착취하고 있는 기업의 주식을 맞바꿨다. 국가의 채권자들에게는 투자를 통해 돌려받기 바라는 금액이 있다. 서인도회사 주식에 명시되어 있듯이 식민지 투자에서 얻은 수익을 돌려달라고 청구할 수 있었다.
서인도회사가 애초부터 해외 자원만 이용했다면 사업 영역이 확장되며 사업이 번창했을 것이다. 하지만 서인도회사는 국가로부터 담배독점권을 사들인 다음 식민지를 약탈하는 다른 회사들을 사들였다. 그리고 조폐권을 비롯한 다른 권리들까지 사들여 국가의 세금을 몰래 챙겼고 이 수입으로 주식을 계속 발행했다.
국가와 서인도회사 간의 모종의 사업 진행 방식은 이랬다. 국가는 서인도회사에 식민지, 흡연자, 납세자를 착취할 수 있는 권리를 팔고 서인도회사는 그 대가로 채무를 변제해주었다. 결국 국가는 향후 수입원을 자금을 조달하는 회사에 주식으로 팔아넘기고, 시민들이 이 주식을 사들인 꼴이다. 물론 시민들은 로의 은행에서 발행한 지폐로 주식을 매수했다. 이제 새로운 국면이 시작되었다.
제3막은 1719년부터 막을 올렸다. 존 로가 재무장관이 되면서 서인도회사와 은행이 합병됐다. 이렇게 탄생한 새 회사는 국가 부채관리기관이 되었다. 이 회사를 운영하기 위해 국민의 돈과 주식을 끌어들였다. 국가의 부채를 이 회사에서 전부 떠안은 셈이다. 이 계획의 궁극적인 목표는 국가의 부채를 회사의 주식과 맞바꾸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 주식을 무엇으로 사들였을까? 물론 존 로의 은행에서 열심히 찍어낸 돈으로 지불했다. 이 계획의 마지막 수순은 금과 은을 지불수단에서 퇴출시키는 것이었다. 국가의 부채는 주식과 지폐로 전환되면서 프랑스 경제는 원활하게 돌아가는 듯했다.
1720년부터 제4막에 진입했다. 이제 존 로의 대서사시도 막을 내릴 때가 되었다. 프랑스의 현금거래에서 금리가 인하되면서 경제는 활성화됐지만 존 로의 체제 자체에서 몰락의 씨앗이 싹트고 있었다. 몰락의 첫 번째 신호는 은행권에서 나타났다.
금과 은, 값어치 있는 천연자원 등 부를 가져다줄 것이라 약속했던 식민지는 질퍽하고 생활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야생의 불모지였다. 이런 곳에서 부를 기대할 수는 없었다. 주가가 오를 것이라고 큰소리를 뻥뻥 쳤던 존 로는 이 사태를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 대체 주주들에게 배당금을 어떻게 돌려준단 말인가?
새로운 주식을 발행하여 그 수익을 주주들에게 돌려주는 방법밖에 없었다. 언뜻 보기엔 그럴 듯하다. 하지만 이는 망할 수밖에 없는 전형적인 폰지게임(ponzi game, 일종의 금융 다단계 사기수법을 말한다. 1925년 미국 전역에서 8개월 만에 4만여 명으로부터 1500만 달러를 끌어모은 사기범 찰스 폰지의 이름을 따서 붙여진 용어)이었다.
처음에는 모든 일이 순조롭게 돌아가는 듯했다. 프랑스 사람들은 존 로의 주식을 사겠다고 몸싸움을 벌였다. 주식 덕을 본 하녀들이 하루아침에 벼락부자가 되는 일이 더 이상 드문 일이 아니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때문에 주가 등귀 현상을 두고 ‘하녀의 강세’라는 이름도 붙었다.
프랑스의 마지막 왕 루이 필리프의 아내 리제로테 폰 데어 팔츠가 쓴 편지 구절에서 당시 상황을 엿볼 수 있다. “지금 프랑스에는 부자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분명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사람들은 백만 단위가 아니면 얘기도 하지 않는다. 나는 지금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부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마치 재물의 신이 파리를 지배하고 있는 듯한 생각이 든다.”
하지만 영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만 것이다. 프랑스 시민들은 과열된 주식의 가치, 부를 가져다주지 않는 식민지의 실상, 은행권의 가치, 은행의 안정성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프랑스 시민들이 주식을 대량으로 매도하자 현금이 부족해진 중앙은행은 지폐를 발행하여 적자를 메웠다. 그러자 경기는 과열되고 물가는 상승했다. 1717년과 1720년 사이 연 인플레이션율은 26퍼센트에 이르렀다.
물가뿐만 아니라 주가도 폭등했다. 거액을 잃은 프랑스인들은 분노를 표출할 방법을 찾았다. 신변의 위협을 느낀 존 로는 은행과 무역회사가 파산하자 몸을 피해 벨기에를 거쳐 베네치아로 도주했다.
존 로의 대서사를 겪고 난 프랑스는 1720년 10월 금과 은을 다시 지불수단으로 돌려놓았다. 프랑스 계몽주의의 선구자 볼테르(Voltaire)가 지적하듯 지폐의 가치가 땅으로 떨어졌다. 지폐의 내재가치는 0에 가까웠다. 존 로의 경제정책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그를 온 나라를 망쳐놓은 도박꾼이자 사기꾼으로 보는 견해가 있는 반면, 다양한 사상을 앞장서 실천했던 최초의 금융이론가로 보는 견해도 있다.
실제로 존 로의 일부 사상은 이후 국민경제에 편입되었다. 존 로는 지폐를 발명하지는 않았으나 지폐의 메커니즘을 밝혀냈다. 그의 실패는 지폐의 명목가치와 실질가치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사실과 잘못된 화폐정책이 경제를 어떻게 무너뜨릴 수 있는지 보여준 셈이다.
글 및 사진 출처 : <인플레이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