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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팥 Aug 01. 2022

어쩌다 클라이밍 : 시작은 수영이었다

슬로우스타터 레터 #3

고백할 것이 있다. 클라이밍 에세이를 쓰고 있지만 사실 3개월째 클라이밍을 못 했다. 볼더링 문제를 풀다가 30센티 정도 되는 아주 낮은 높이에서 떨어졌는데 왼쪽 발목을 접질리면서 실금이 갔기 때문이다. 한 달 동안 깁스하며 오른발만 쓰다 보니 이번엔 오른발에 염증이 생겼다. 염증이 도무지 가라앉지 않아 클라이밍을 압수당했다.


클라이밍을 해야 에세이 소재도 발굴할 수 있을 텐데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고로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고민고민하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다 클라이밍을 하게 됐지?’




어느 날 내 삶에 운동이 찾아왔다



생존의 몸부림이 성취감으로


내 운동의 역사를 훑어보면 그 출발선에 수영이 있다. 때는 2017년, 인턴으로 직장인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하루 8시간을 꼬박 앉아있으니 원래 있었던 허리디스크가 다시 도졌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일단 살고 보자!는 마음으로 수영 강습을 등록했다.


어릴 적 목욕탕에서 빠져 죽을 뻔한 경험이 있어 수영은 하나의 도전이었다. 물이 무서운지라 남들보다 배우는 속도가 더뎠다. 한 달이 지나도록 킥판을 떼지 못했다. 킥판 없이는 물에 못 뜰 줄 알았는데 킥판을 뗐을 때의 성취감이란! 정말 짜릿했다. 물론 선생님이 강제로 킥판을 빼버려서 어쩔 수 없는 성취였지만.


그때부터였다. 운동을 싫어하던 내가 수영에 빠져든 건. 수영은 정말 성취감 투성이었다. 자유형, 배영, 평영, 접영까지 다 배웠다고 생각했는데 영법 교정은 끝이 없었고, 스타트 자세와 물잡기 등 배움이 계속됐다. 그런데 파워 접영을 하던 중 갑자기 허리가 따끔했다.



이때는 복근이 있었는데, 지금은... 뱃살이 있다!



성취감이 행복감으로


그렇다. 프로 근육 부족러였던 나는 코어가 약했다. 아아, 좋아하는 수영을 할 수 없다니… 그렇다면 이제 코어를 키워보자는 결론을 내렸다. 2018년, PT의 시작이었다. 말라깽이가 근육을 키우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난 어려운 일을 해낼 때 행복감을 느끼도록 세팅된 사람이었다. 운동을 하며 처음 알게 된 나의 새로운 모습이었다.


그냥 수영을 잘하고 싶었을 뿐인데 정신 차리고 보니 바디프로필까지 찍는 나를 발견했다. 운동이 이토록 재미있다는 사실을 왜 모르고 살았을까? 왜 학교 체육은 도무지 즐겁지 않았던 걸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앞으로 배울 수 있는 운동은 무궁무진했다.



비염과 돌발성 난청으로 못하게 될 줄 모르고 장비부터 샀던 프리다이빙. 한 번 썼지만 언젠간 꼭 다시 할 거다! ㅠㅠ



행복감이 새로운 도전으로


본격적으로 운동에 재미를 느끼면서 색다른 운동을 경험해보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원데이클래스를 통해 프리다이빙, 서핑 등 이색 스포츠를 즐겨보았다. 그리고 드디어 2021년, 클라이밍을 영접했다! 역시 원데이클래스로 서울숲 클라이밍을 방문했는데, 열심히 수업하던 중 선생님이 물었다.


“클라이밍 처음 맞으세요? 혹시 운동하는 분이세요?”


그동안 운동에 쏟아부은 돈이 아깝지 않아지는 질문이었다. 솔직히 월급의 너무 많은 부분을 운동에 쓰지 않나 걱정한 적도 있었다. 무엇보다 운동으로 달라진 신체 능력을 느낄 수 있는 칭찬이었다. 수영을 처음 배울 때는 몸치라고 많이 놀림 받았기 때문이다. 수영계에서는 몸치인 나도 클라이밍계에서는 에이스인가? 하며 속으로 뿌듯했다.


그렇게 또 정신 차려보니 클라이밍 강습권을 결제하고 있었더랬다. 그다음에는 암벽화와 초크백을 결제하고 있는 나… 그리고 에이스가 아니었음을 깨닫고, 진짜 에이스 클라이머들에게 “나이스”를 외쳐주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에이스가 아니면 어때. 재미있으면 그걸로 오케이.



에세이 쓰면서 첫 클라이밍 영상을 봤는데 에이스라고 하기엔 너무 못하더라!



일단 벽에 붙어보자


길게 쓴 것치고는 너무 사소한 이유로 클라이밍을 시작해서 머쓱한데... 클라이밍을 하다 보면 루트파인딩만으로는 안 풀리던 문제가 막상 벽에 붙어보면 풀리는 경우가 있다. 스타트 홀드를 잡았더니 다음 홀드가 자연스럽게 보이고, 또 다음 홀드가 보인다. 내 경우에는 수영을 잡았더니 웨이트 트레이닝이 보이고, 웨이트를 잡았더니 클라이밍이 보였다고 할 수 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무슨 일을 시작할 때 꼭 엄청난 계기가 있는 경우는 드물다. 인생의 중대한 결정들도 사실은 사소한 이유로 마음먹기도 하고. A라는 일을 시작했더니 B, C, D가 밀물처럼 밀려오기도 한다. 혹시 오랫동안 루트파인딩만 하고 있는 일이 있는가? 그렇다면 과감히 스타트 홀드를 잡아보라고 조언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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