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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팥 Apr 19. 2021

회사는 내 커리어를 책임지지 않는다

앞으로 커리어를 어떻게 쌓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질문에 인사팀장이 답했다. 회사는 개인의 커리어를 책임지지 않으니 스스로 찾으라고. 인사팀장의 말은 배신처럼 느껴졌다. 그동안 회사가 강조하는 성장의 가치를 철석같이 믿었다. 회사에서의 성장이란 곧 커리어 아닌가? 그런데 이제 와서 내 커리어를 책임지지 않는단다. 입사하고 만 3년이 흘렀다. 나는 늘 제자리걸음이고 심지어 퇴보하는 것 같아 조바심이 났다. 그것은 온전히 회사 탓이라고 생각했다.


지난 3년간의 내 커리어는 딱 세 글자로 요약된다. 물경력. 사회생활 4년차에 주임까지 달았지만 사람들을 만나면 나를 소개하기 어려웠다. 에디터라고 하기엔 글을 안 쓴 지 너무 오래됐고, 기획자나 작가라고 하기엔 제대로 기획한 콘텐츠가 있던가? 촬영, 편집이 안 되는 사람을 PD라고 할 수는 더더욱 없었다. 마케팅과 브랜딩, PR 언저리의 일을 하고 있었지만 어느 하나도 전문적으로 수행하진 못했다. 자신의 일에 프로의 자세로 임하는, 아니 이미 프로인 친구들 앞에서 항상 주눅 들 수밖에 없었다.


주먹구구식으로 일하고 새로운 것은 일단 거부하는 보수적인 회사 때문에 내 커리어는 엉망이 됐다고 늘 분노에 차있었다. 여러 동료들이 전문성 강화를 위한 교육 및 인력 충원을 회사에 요구했지만 반영되지 않았다. 반영된다 하더라도 일회성 교육에 그치거나 여전히 전문성 없는 스터디로 진행되다 흐지부지 됐다. 회사는 매번 성장을 말하면서도 성장을 원하는 직원들을 외면했다. 그리고 그 직원들은 떠났다. 인사팀장의 말이 맞았다. 회사는 개인의 커리어를 책임지지 않았다.


물론 모든 직원이 성장에 불만을 갖지는 않았다. 분명 성장하고 있는 직원도 많았다. 그러나 확실히 내 직무는 성장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는 커리어를 찾으러 회사를 떠나기로 했다. 내 커리어는 내가 책임지기로 했다. 어쩌면 그동안 너무 순진했거나 바보 같았는지 모른다. 내 커리어를 회사가 책임진다고 생각했다니. 커리어도 내 인생인데 책임을 전가해 왔다. 인사팀장의 말은 배신이 아니라 공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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