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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팥 Apr 20. 2021

세대차이가 아니라 성향차이다

평균 연령 서른 살인 우리 팀에 50 팀장이 갑작스레 발령받아 왔다. 게다가 그룹에서 잔뼈가 굵은 어른이라 우리 같이 작은 계열사 조무래기가 감당하기는 어려웠다. 가뜩이나 나이차도 많이 나는데 팀원들이 어려워하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팀원들이 팀장을 어려워하니 팀장도 그들을 어려워했다. 같이 웃고 떠드는 와중에도   없는 벽이 느껴졌다.


팀장은 팀원들과 친해지기 위해 실없는 농담을 자주 던졌다. 그러고는 자신의 농담이 매우 만족스럽다는 듯이 호탕하게 웃었다. 팀원들도 따라 웃었다. 권력을 가지면 유머 감각도 가질 수 있었다. 나는 늘 이런 유머 감각이 불편했다. 웃기지도 않을뿐더러, 전형적으로 권력을 쥔 자만이 할 수 있는 농담 아닌 농담이었다. 그건 차라리 폭력이라 일컬어야 했다.


그런데도 팀원들은 팀장을 측은하게 여겼다. 여기서 팀원들의 공감능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있었다. 팀장의 모습에서 각자 아빠를 떠올리고, 우리 아빠도 회사에서 나이 어린 직원들과 일하기 힘들겠지?라고 이해했다. 팀에서 가장 공감능력 떨어지는 인물인 나조차도 때때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팀장의 무례한 농담이 어디까지나 나이차에서 온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세대차이니까 서로 배려하면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팀장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기에 꾸준히 무례한 농담을 건네며 친해지기를 바란 듯 싶다. 그러다 문득 세대차이라는 말로 팀장의 무례를 포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팀장을 이해하고 그의 무례를 웃어 넘기기 위해서는 세대차이라는 변명이 필요했던 것이다.


팀장의 농담에 상처 받은 날이었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고 씩씩거리는 나에게 한 대리님이 말했다.


“그건 세대차이가 아니라 성향차이죠, 원래 그런 사람인 거예요”


그 말이 맞았다. 모든 어른이 나이가 많다고 해서 무례한 농담을 건네지 않는다. 그동안 연장자에 대한 편협한 시각으로 세대차이라고 단정했다. 세대차이는 ‘머리부터 발끝까지’를 듣고 떠오르는 노래가 다를 때 쓰는 말이지 그럴 때 쓰는 말이 아니었다. 세대차이를 극복한다는 미명 하에 화를 내야 하는 순간에도 웃어주었다. 우리는 무례를 무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제 더는 그의 무례한 농담을 들을 일은 없겠지만 앞으로 살면서 비슷한 일은 수없이 겪게 될 거다. 그럴 때마다 세대차이라고 변명해버리는 실수를 다시는 범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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