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스레터 #13 클라이밍 강사 윤병현 님 인터뷰 후일담
※윤병현 님 인터뷰를 아직 못 읽었다면? 여기서 먼저 읽으면 좋아요!
오랜만에 만난 병현 님은 불과 몇 달 전과는 조금 다른 사람이 된 느낌이었다. 강습할 때는 숫기도 없고 늘 수줍게 웃기만 하는 이미지였는데, 더 당당해지고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더군다나 매번 마스크를 쓰고 만나다가 맨얼굴로 마주하려니 처음 만나는 사람처럼 어색했다. 원래부터 이렇게 쾌활한 사람이었나? 싶을 정도였다.
인터뷰가 길어질수록 웃음도 많아지고, 인터뷰이인 병현 님이 대화를 주도하기도 하면서 암장에서는 보지 못한 새로운 모습을 포착할 수 있었다. 그래도 어려운 질문이 나오면 당황하며 고민에 잠기곤 했는데, 강습 들을 때 보았던 수줍고 진중한 모습 그대로였다.
그가 당황한 질문은 대체로 사실과 경험에 기반한 내용보다는 다소 추상적이고 철학적인 질문이었다. 예를 들면, “인간 윤병현은 스스로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질문에서 그는 몹시 당황하며 숨을 크게 들이켰다. 너무 어려운 질문을 준비했나? 싶어 MBTI처럼 가볍게 풀어주어도 된다고 설명했더니 그제야 미소를 띠었다. (참고로, 병현 님의 MBTI는 ESTJ라고 한다.)
가장 크게 당황한 질문은 [벽 타는 사람들] 시리즈의 공통 질문인 “병현 님에게 클라이밍이란?”이었다. 갑자기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리며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에서 새삼 ‘마음이 정말 깊고 단단한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하던 찰나, 그가 입을 열었다.
“너무 오글거려서… 차마 제 입으로 못 하겠어요”
그렇다. 그의 고민은 ‘어떤 대답을 할지’가 아닌 ‘오글거리는데 어떡하지’였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부끄러워할 만큼 오글거리는 질문인가? 오히려 내가 당황스러운 순간이었다. 아무튼 잘 다듬어서 오글거리지 않게 쓰겠다는 착한 거짓말로 설득하고 나서야 병현 님의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클라이밍이란 삶의 태도라고 생각해요
삶의 태도. 그는 이 4글자를 말하기까지도 몇 번이고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원래 사람들은 무엇인가 진심으로 좋아할 때 부끄러워하니까, 그가 얼마나 클라이밍을 진심으로 대하는지 더 크게 느껴졌다.
왜 클라이밍이 삶의 태도라고 생각하는지 찬찬히 설명할 때는 눈이 어찌나 반짝이던지. 그는 마음속에 오래 감쳐둔 이야기를 엽서에 꾹꾹 눌러 쓰듯 한 마디 한 마디 깊이 생각하며 내뱉었다. 클라이밍에 관한 그의 철학과 마음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인터뷰를 속기하던 타이핑을 멈추고 병현 님의 이야기만 온전히 집중해 들었다.
병현 님의 이야기는 그동안 클라이밍 에세이를 쓰면서 내가 하고 싶은 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말을 듣고 있자니 구구절절 써왔던 에세이들이 떠오르면서 조금 부끄러워졌다. 길고 길었던 에세이를 ‘삶의 태도’라는 쉽고 간단한 말로 줄일 수 있다니. 오글거린다는 표현은 내 에세이에 붙여야 더 어울리는 말이었다.
더군다나 그는 말로만 그치지 않고 실제 삶에서 실천하는 사람이었다.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을 하고, 좌절하기보다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나는 어땠나? 하는 반성이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떨어져도 다시 오르라고 말했지만 쉽게 포기하기 일쑤였다.
사실 병현 님을 인터뷰하기 전까지는 이렇게 깊은 인사이트를 얻을 것이라 기대하지 않았다. ‘즐겁게 클라이밍 이야기를 하다 보면 적당히 레터에 쓸 내용은 나오겠지’ 하는 안일한 마음도 있었다. 사람 만나는 일을, 글쓰기를, 클라이밍을 진심으로 대한다고 하면서도 너무 얕게만 훑으려고 하지는 않았는지.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많은 생각이 스쳤다.
클라이밍 강사에게 클라이밍 기술이 아닌, 삶의 태도를 배운 특별한 경험이었다. 앞으로도 더 많은 클라이머를 만나 이야기를, 마음을, 삶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p.s. 돌이켜보면 클라이머에게서 삶의 태도를 배운 적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그 이야기를 시작하자니 글이 길어질 듯하니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풀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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