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슬스레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느 May 17. 2023

그가 하면 클라이밍도 화보가 된다

슬로우스타터레터 #14

(사진 제공 ⓒ타냐)


돌 잡기 전엔 '붓' 잡았어요

타냐 님,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4년 차 모델이자 2년 차 클라이머인 밀류티나 테티아나 블라디미로브나(Мілютіна Тетяна Володимирівна)입니다. 줄여서 타냐라고 불러주세요!



클라이밍 시작한 지 2년 차라니!

정말 잘하셔서 전공이 체육 쪽인 줄 알았어요.


우크라이나에 살았을 땐 클라이밍을 전혀 몰랐어요. 한국에 와서 처음 접했죠. 사실 제 꿈은 화가였거든요. 네 살 때부터 그림을 그렸고, 미술대학교를 진학해 순수미술을 공부했어요. 손으로 그리는 것이라면 전부 배웠죠. 회화부터 드로잉, 조각, 해부학까지요. 그만큼 '나는 미술을 하는 게 당연해'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한국은 어떻게 오게 됐나요?


한국에서 산 지 벌써 7년을 향해 가는데요. 그림이 삶의 전부였던 제게 또 다른 길을 보여준 건 한국 드라마 <꽃보다 남자>였어요. 스토리뿐 아니라 드라마의 배경이 된 장소가 인상 깊었거든요. 진짜 저런 사람들이 있을까? 저긴 어딜까? 하면서 한국에 관심이 생겼고, 그렇게 한국어까지 배우기 시작했죠.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한국을 여행했는데 상상보다 훨씬 좋았어요. 문화 차이도 잘 안 느껴지고 음식도 입맛에 잘 맞았고요. ‘나, 혹시 한국을 위해 태어난 사람?’ 싶을 정도로요. (웃음)


특히 전시, 영화, 공연, 서점 등 다양한 문화생활을 곳곳에서 누릴 수 있다는 게 큰 메리트로 다가왔어요. 첫 여행 이후 두 번 더 방문했고, 그때마다 한국이 더욱 좋아지니 자연스럽게 '한번 살아볼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모델이자 클라이머 타냐 님의 멋진 화보 (사진 제공 ⓒ타냐)


모델 데뷔도 한국에서 했다고 들었어요.


네. 친구가 찍어준 사진 한 장이 제 인생을 완전히 바꿨죠. 대학교에서 1년 동안 한국인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프로그램에 참여할 때였는데요. 그때 친해진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사진을 정말 잘 찍었어요. 어느 날 “내가 너 찍어줄게. 한 번만 찍자!”라고 하는 거예요.


그때만 해도 저는 자존감이 낮아 스스로를 안 좋아했거든요. 제 외모가 마음에 안 든다며 대놓고 외면당한 일이 있어서. 근데 친한 친구 부탁이고, 넘치는 자신감으로 ‘멋있게 찍어줄게!’ 말하니 안 들어줄 수도 없고. 어설프게 포즈를 취했는데 진짜 잘 나온 거예요. 그때 깨달았죠.


‘아, 나는 이런 사람이구나.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보는 나는 이렇게 멋지구나.’


자신감도 생기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SNS에 올리고 잠들었는데, 다음날 일어나니 촬영 문의가 들어와 있더라고요. 마침 방학이라 남는 게 시간 뿐이라 하겠다고 답장을 보냈어요. 첫 촬영을 무사히 잘 끝냈고, 그 결과물을 올렸더니 또 좋은 반응이 돌아오고. 촬영 문의가 계속 이어져서 지금까지 하게 됐어요.



모델 경험이 바리스타로도 이어졌다고 들었는데, 자세히 알려주세요!


소속된 광고회사에서 시작한 프로젝트였어요. 사장님이 "우리 카페도 열 건데 서울 오면 같이 일해볼래?"라고 불러주셔서 모델과 바리스타 모두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죠. 타이밍 좋게 여러 기회가 저를 찾아와 좋아하는 한국에 쭉 머무를 수 있어 기뻤어요!



클라이밍을 할 때면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그 (사진 제공 ⓒ타냐)


인생 '노잼' 길 걸을 때 만난 '대유잼' 클라이밍

  

그렇다면 클라이밍은 어떻게 접하게 된 거예요?


날짜도 정확히 기억하는데요. 2021년 4월에 처음 시작했어요. 카페에서 일하고부터 이래저래 안 좋은 일이 많이 생길 때였어요. 여기에 촬영 현장과 카페만 오가서 매일 비슷한 하루를 보낸다는 생각까지 들어서 우울하고 삶이 재미없고. 부정적인 생각이란 생각은 다 하던 시기였죠.


그때 운동복을 입고 카페를 찾아오는 몇몇 사람이 즐겁고 들뜬 표정으로 커피를 사가시더라고요. 어디로 가나 봤더니 근처 클라이밍 센터였어요. 저런 얼굴을 할 정도로 그렇게 재밌나? 싶어서 퇴근하자마자 바로 클라이밍을 배우러 갔어요.



우연인 듯 운명 같은 만남이네요!


별 기대 없이 강습받았다가 인생 운동을 만났죠. 정말 재밌었어요. 일일 강습 때 주어진 문제를 다 풀라는 미션을 주잖아요? 그게 제 안의 승부욕을 깨우더라고요. 새로운 문제를 받고, 어떻게 풀지? 열심히 고민하고 움직이니까, 그제야 활력이 도는 느낌을 받았어요.

  


클라이밍이 권태로움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네요.


모델 일과 카페 일만 했을 때도 일상이 매일 똑같진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제가 로봇이 된 듯했어요. 옷을 입는다, 포즈를 취한다, 찍힌다. 커피를 만든다, 빵을 굽는다. 누군가 입력한 명령어 대로 사는 것 같았어요. 하루하루가 단조롭게 흘러가는 느낌?


그런데 클라이밍 할 때는 매번 생각하잖아요. 왼손을 올리면 발을 어떻게 해야 할까, 홀드를 잘못 잡으면 몸이 중심이 안 잡히는데 어떻게 하지, 이런 생각들을요. 그렇다 보니 운동한 날에는 오히려 에너지가 넘치고 즐겁더라고요.



혹시 이 동작할 때만큼은 다른 어떤 때보다 즐겁다! 하는 게 있나요?


스태틱한 무브를 정말 좋아해요! 말하고 보니 이것도 계속 고민하고 몸을 세심하게 컨트롤 해야 나오는 동작이네요. 뛰거나 코디 기술을 사용하는 다이나믹한 동작은 잘 못하기도 하고, 다치기도 쉬워서 가급적 피하려고 해요.


힐훅과 토훅 기술을 사용하는 문제도 좋아해요. 이 기술을 잘 활용하면 어려운 문제도 적은 힘으로 완등할 수 있거든요. 대신 힘이 적게 들어가니까 안 써도 되는데 아무 때나 막 쓰는 부작용이 생겼지만요. (웃음) 아, 잘못하면 햄스트링 부상으로 이어지니까 운동 전후로 스트레칭은 꼭 하고요.



부상 예방은 무척 중요하죠.
타냐 님이 '클라이밍할 때 이것만큼은 주의한다!'는 요소가 있다면요?


요즘엔 낙법이에요. 처음 습관을 잘못 들인 건지, 잘못 배운 건지 떨어질 때마다 발목과 무릎에 조금씩 충격이 와서요. 어려운 문제일수록 높이 올라가는 루트가 많은데 어떻게 떨어져야 안 다칠 수 있을지 고민이에요. 지구력도 약해서 루트가 긴 문제를 풀 때는 숨쉬기, 손 털기, 천천히 가기. 이 세 가지를 항상 잊지 않으려고 해요.



운동 사진도 화보처럼! 촬영도 운동도 몸을 활용하는 부분이 있어 서로 큰 도움이 됐다. (사진 제공 ⓒ타냐)


촬영할 땐 클라이밍처럼,
클라이밍 할 땐 화보처럼

      

몸을 활용해 오브제를 보여주는 모델 일과 손, 발을 세밀히 움직여 동작을 만들어가는 클라이밍은 어쩌면 비슷한 것 같아요.


확실히 서로 도움이 돼요. 클라이밍을 막 시작했을 땐 햄스트링이 항상 아팠어요. 그때 몸을 잘 푸는 게 중요하다고 느껴서 스트레칭을 열심히 했더니 어느 순간부터 다리를 높이 올리는 하이스텝 동작이 되더라고요. 통증도 잘 없고. 촬영 현장에서도 예전보다 몸 풀리는 시간이 더 빨라졌어요. 몸 쓰는 게 더 자연스러웠죠.


또 촬영할 때 포즈를 취하고 여러 가지 표정도 짓잖아요? 이제 마스크를 벗게 되면서 클라이밍 할 때도 좀 신경 쓰이더라고요. 영상을 찍으니까. 완벽주의자는 아닌데 동작을 더 예쁘게, 깔끔하게 하고 싶은 욕심이 있어서 무의식적으로 표정이나 몸의 움직임을 활용하게 돼요. (웃음)



촬영과 카페 일, 클라이밍까지.
바쁘게 사는 타냐 님만의 체력, 멘탈 관리 노하우가 궁금해요!


클라이밍을 시작했을 때는 재밌으니까 몸을 안 사렸어요. 홀드에 긁혀 상처가 생기고 발목도 다치고 그랬죠. 그랬더니 포토샵으로 흉터나 멍을 지워야 해서 보정 비용이 생기고, 손가락에 염증이 생겨 굵어지면 반지가 안 들어가서 주얼리 촬영이 힘들고. 본업에 지장이 생기는 거예요. 그때부터 조심하게 됐어요. 코디네이션이나 다이노처럼 다치기 쉬운 문제는 잘 안 하고, 손가락에 무리가 가는 홀드는 안 잡는 식으로요.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고, 사람 대하기 힘들어질 때면 그냥 자요. 엄청 자려고 해요. 약속도 아예 안 잡고, 일하고 바로 집에 가서 누워서 쉬고. 그러면 다시 시작할 의지가 생겨요.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합니다!

모델로서, 클라이머로서 어떤 목표가 있을까요?


주얼리, 의류 모델로 활동해와서 이제는 아웃도어 브랜드 모델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클라이밍을 시작하고 스타일이 바뀌기도 했고, 좋아하는 분야니까요. 아크테릭스, 케일, 그라미치, 라이튼클라이밍 등 옷을 입어보는 것 자체로 정말 행복할 것 같아요.


그동안 SNS에 운동하는 모습을 올리면 상대적으로 몸이 커 보이는 게 없지 않아서 자제했는데, 그러니까 아웃도어 관련 촬영 문의가 안 들어오더라고요. 정말 찍고 싶은데… 이제는 열심히 어필해보려고요.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고요. 몸도 마음도 잘 관리해 클라이밍도 모델 일도 오래오래 하고 싶어요.



언제나 타냐 님을 응원하며, 슬스팀에게 보내준 그의 멋진 화보를 대방출합니다! (사진 제공 ⓒ타냐)


마지막으로, 슬스 공통 질문! 타냐 님에게 클라이밍이란?


라이프스타일!

단순히 취미였던 클라이밍이 지금은 제 삶의 대부분을 차지했죠. 한국어를 배웠을 때와 비슷한 것 같아요. 언어가 좋아서 배우기 시작했고 결국 이곳에 자리 잡은 것처럼. 클라이밍도 할수록 늘 성장하는 기분을 안겨줘서 삶에서 못 떼놓을 것 같아요.

기술을 세심하게 활용한 문제가 정말 많잖아요. 멋지고 대단한 클라이머도 많고요.


문제를 풀며 나만의 루트를 찾는 시간, 멋진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쌓일수록 새로운 걸 배우며 제게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고 있어서 앞으로도 쭉 하고 싶어요.



타냐 님이 추천하는 베스트 클라이밍 코디


모델을 인터뷰한다고 하니까 옷 잘 입는 법도 물어보고 싶은 거예요. (슬스팀만 궁금한 거 아니죠?) 타냐 님 인스타그램을 보면 클라이밍 할 때도 정말 멋스럽게 입더라고요. 편한 옷도 멋스럽게 입는 타냐 님의 노하우는 무엇일까요? 그래서 타냐님에게 ‘모델이 생각하는 베스트 클라이밍 코디(코디 문제 아님)’를 물어보고 왔어요!



“기본적으로는 몸에 달라붙는 상의를 입으면 하의는 헐렁한 바지를 선택하는 식으로 밸런스를 맞춰 보세요.

저는 최근에 조금 다른 스타일도 도전하고 있는데요. 레깅스에 오버핏 티셔츠를 입으면 골반에 티셔츠 자락이 종종 걸려서 동작이 제대로 안 나오더라고요. 그렇다고 바지를 입자니 영상에서 몸이 크게 나오는 것 같고. 에라, 모르겠다 하고 브라탑에 레깅스를 입었는데 오히려 상체 근육 정말 멋있다고 칭찬해주는 분이 많아서. (웃음) 브라탑, 레깅스 조합도 선호하는 코디가 됐어요. 물론 인싸 분위기의 암장에 한해서만입니다.


암장 분위기를 생각해 코디를 정할 때도 있어요. 면적 자체가 넓고 외향적인 사람들이 많이 가는 암장이면 과감하게 입기도 해요. 아는 사람이 많거나 조용조용한 분위기의 암장은 오버핏 티셔츠에 벙벙한 바지를 입는 식으로 최대한 노출 없이, 편하게 입는 것 같아요.


절대 안 입는 건 반바지예요. 홀드에 부딪힐 때마다 멍들고, 긁히고 쓸려서 상처가 나니까요. 본업, 아주 중요합니다. 밑에서 올려다보는 구조니까 민망하기도 해서 잘 안 입게 돼요.”





슬로우스타터 레터를 구독하고 싶다면?


지난 슬로우스타터 레터를 보고 싶다면?


매거진의 이전글 클라이머에게 삶의 태도를 배우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