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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라마즈 Oct 21. 2023

가을에는 카박 타틀르스

튀르키예 음식은 케밥밖에 없나요?


몇 년 전 추석 즈음

터키인 직장동료가 반짝거리는 눈으로 추석 연휴에 다녀온 터키인들 모임에서 자기가 뭘 먹었는지 물어봐달라고 했다.

업무 외의 이야기는 잘 하지 않던 동료인데 어떤 대단한 걸 먹었길래 저러나 싶어 못 이기는 척 물어봐 주었다.


"Kabak Tatılısı yedim, biliyor musun?"(카박 타틀르 먹었어, 뭔지 알아?)


카박 타틀르 들어보기만 했던 디저트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중동 디저트들이 그러하듯 터키의 디저트에도 설탕 본연의 단맛으로 디저트를 만들어 내는 경우가 많은데, 

음식을 보면 맛을 곧잘 예상해 내는 내게 카박 타틀르스의 외관은 설탕시럽에 절여졌을 것이 뻔한 너무나 예상 가능한 음식으로 보였기에 한 번도 맛볼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지난해 가을. 나는 몇 년 만에 터키를 다시 방문했고 머무는 내내 그간 그리웠던 단골 식당들을 끼니마다 드나들고 있던 차였다. 

저녁을 먹으러 갔던 단골 식당에서는 옆자리에 터키인 부부가 앉아 있었는데 먼저 식사를 마친 그들이 후식을 추천해 줄 것을 부탁하자 직원 아저씨는 카박타틀르스를 추천하셨다.



그 이름을 듣자마자 귀가 쫑긋해졌다. 

이름만 듣던, 사진으로만 보던 카박 타틀르스를 실제로 보게 된 것이다! 

궁금함을 참지 못한 나의 시선이 너무 노골적이었는지 옆자리의 부부는 빈 접시 하나를 받아 내게 웃으며 호박 한 조각을 건네주었다.


설탕시럽을 한껏 끼얹은 잘 익은 호박이 내 앞에 놓였다.

'네가 맛있어 봤자지, 얼마나 맛있겠어?'하는 생각으로 나는 카이막이 올라간 호박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그 순간 나는 바로 우리 테이블에도 카박타틀르를 주문했고, 옆자리의 부부는 깔깔 웃었다.


아니 지금까지 이걸 튀르키예에서 안 먹고살았다고?

생각도 못 한 맛에 나는 충격을 받았다. 

고작 호박 주제에! 정말 특별할 게 없다고 생각했던 디저트가 이렇게 내게 특별해진 디저트가 되었다. 


레시피라고 해봤자 껍질 깎은 노란 호박을 설탕물에  정향, 시나몬을 넣고 끓인 뒤 차갑게 식히는 게 끝이다.

그리고 먹을 땐 호두 분태와 카이막을 곁들이면 되는 간단한 음식인데 그 맛은 정말이지 기대 훨씬 그 이상이었다.


애초에 기대치가 낮아서였을까? 친구들에게 엄청 맛있다며 큰소리치고 데려간 맛집보다 '여기 괜찮아'하고선 소개한 식당이 더 반응이 좋은 것처럼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양고기 집에서 갑자기 카박 타틀르와 사랑에 빠지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을거다. 


그날 이후 나는 가을이 되면 카박 타틀르스가 생각이 난다. 

마침 거실장에 엄마가 올려둔 노랗게 잘 익은 늙은 호박이 보인다. 내일 저 호박을 잘라서 한번 졸여봐야겠다. 


P.S.

맛있는 음식은 비싸더라도 좋은 재료를 사용하는 맛집에서 시작해야 다음을 또 시작할 수 있다.

2021년 가을 기준 호박 디저트 30TL 카이막 추가 15TL

2023년 가을 기준 호박 디저트 90TL(터키의 물가는 고공행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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