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부터 병원을 '집'처럼 들락날락거리면서 생활했던 나는 항상 알록달록한 어린이병원에 다녔기 때문에 동화 같은 분위기를 풍기며 병원을 항상 보며 무섭기보다는 어디 놀러 온 아이처럼 다녔다. 참 특이케이스인 나란 아이는 첫 수술을 어린아이에 하게 되었다. 이곳저곳에서 불려 다니는 느낌이었다. 예를 들어 '키 재기'미션, '몸무게 재기'미션, 혈액검사 또는 다른 검사'미션 등등 어린 나이인 애매하게 미취학아동쯤 병원이라는 스페이스에서 하나씩 의료진들이 퀘스트를 주면 하나씩 엄마 손을 잡고 하나씩 '검사'라는 미션을 했다. 너무나 정신없이.
아마 겁을 안 먹는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어린이병동 특성상 밝은 분위기로 캐릭터들이 벽에 알록달록 밝은 색깔로 한 군데씩 물고기나 고래 등등 아쿠아리움으로 콘셉트를 잡아 어린 나이에 병원이라는 공간이 그다지 무섭거나 거부감이 드는 곳은 아니었다. 지금에서 생각해 보니 고도에 아동에게 거부감이 들지 않게 순수하게 분산시키는 심리가 아닐지 생각이 든다.
어느새 수술 전 모든 검사 퀘스트 미션을 마치고선 하얀색이었던가 베이비핑크색이었던가 기억이 흐릿하지만 그때는 큰 환자복이 힙해 보였다. 그때 당시에는 오버핏이라는 것을 몰랐기에.
"이제 수액 맞으러 오셔야 돼요"
라는 간호사선생님 말을 듣고 휠체어를 타고선 '주사실'이라고 쓰여있는 곳으로 향하였다.
내 또래의 아이들 울음소리 그 소리가 긴장감을 고조했다.
"아이고... 혈관이 없네"
라는 소리를 듣고 속으로는 '흐음.. 내 눈에는 눈으로 핏줄 잘 보이는데' 하며 무슨 소리인지를 몰랐다. 알코올 냄새가 조금 진동하는 곳에서 겨우 링거를 달랑달랑 달고선 간호사선생님은 내가 울지 않아서 폭풍칭찬을 해주셨다. 그런 흔하지 않은 아이였다. 울음 속에서도 고요한 아이는 내가 처음이라면서 지친 표정에서도 편안함이 보였다.
내 내 자리라는 곳에서는 이름표처럼 이름과 나이가 쓰여있고, 침대에 앉아 주변을 보니 내 연령때와 비슷한 아이들이 있었다. 똑같은 이불과 똑같은 옷들.
어느새 '금식'이라는 퀘스트가 있는데 꽤나 고난도에 퀘스트였다. 그냥 음식(식사나 간식 같은 것)들만 먹으면 안 되는 줄 알았지만, 물조차 먹으면 안 되는 줄 그때는 그 당시에는 몰랐다. 먹지 말라고 하니 더욱 목마른 느낌이 들었다. 괜히 입이 마르는 느낌이랄까?
그때 당시에도 수줍음이 굉장히 많은 아이라서 주로 이불을 덮고 누워있었지만, 엄마는 주변 엄마들과 스몰토크를 하는 것이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성인이 돼서 생각을 해보니 아마 감히 자식입장에서 추측해 보는데 '동질감'이었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수술당일 어떤 선생님이 다가와 내 침대를 그대로 밀고 엄마는 나를 따라오고 있고 몇 명에 간호사 선생님 특히 손을 잠시 따뜻하게 잡아주시곤 웃으시면서 응원한다는 듯이 '잘하고 와'라고 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같이 이동해주시는 선생님은 내 컨디션은 어떤지 춥지는 않은지 이름은 뭔지 물어봐주는 것이 지금은 환자를 위한 확인이었겠지만, 그때 당시에는 ' 선생님이 나와 친해지고 싶구나'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조잘조잘 묻는 말에 대답을 했다.
"근데 저 안 무거워요?"
라고 단순 호기심으로 물어보았더니, 웃으며 답변을 해주셨다. 뭔가 그때는 내가 되게 무거운 아이 같다고 생각하였다. 내 무게와 침대의 무게면 바위 같을 것 같았다.
"어른들도 이런 침대에 누워서 수술실 가는데 선생님이랑 같이 가는데 다슬이는 완전 깃털같이 가벼워"
라는 답변을 듣고 까르르 뭐가 웃기는지 모르겠지만 웃었고 수술실에 도착하였다.
회복실에 가서 대기 중일 때는 굉장히 떨렸고 긴장이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또 나는 누워있는 채 어디론가 가고 있길래 어디 가는 것이냐고 물어봤을 때 수술실이라는 답변을 듣고 돌덩이처럼 굳었다.
생각 외로 수술실은 매우 정적이 흐르고 차가웠다.
특유의 소독약 냄새와 병원냄새가 가득한 방이라고 생각이 들 정도인데 조용하니 더 긴장이 되었다.
"다슬아 긴장 많이 돼?"
라는 주치의 교수님이 들어오시면서 말씀을 하셨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마취 주사 넣기 전에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해도 돼".
"수술하고 꿰맬 때 예쁘게 해 주세요"
라고 이야기를 하였고, 교수님은 피식 웃으면서 내 손을 잡아주셨다. 꽤 유머러스한 마취 전 마지막 말.
"예쁘게 해 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최대한 안 아프게 해 줄게"
라는 말을 듣고 나는 마취가 되었다.
그 이후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내 장애의 특성상 하는 수술들 중 1차 수술이 끝났었다. 그리고 회복과 재활을 하면서 천천히 성장을 하며 병실 친구들과 친해지기도 하였다. 그 외 수술을 더 했었지만, 다 하고 나선 지금의 '다슬'이 되었다.
그러나 수술은 몇 차례가 남았는지 모른다. '걸을 수 있어야 된다.' 또는 '일어나서 서서 있을 수 있어야 된다.'등등이 부모(주 양육자)의 목표였다. 그것도 모른 채 알록달록 병원의 병실에 있는 나 이외에 아이들은 생각보다 밝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장애인이다.'대신 '나는 다른 친구들과 다르다.'라는 '다름'만 인지를 하였을 뿐 '장애인의 삶을 깊이 있게 생각할 수 있는 나이'는 아니기에. 그때에만 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저 알록달록한 어린이병원이 신기한 여행을 하는 아이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