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에서는 나를 취업 준비생으로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어떠한 관점에서 보면 당연한 일이다. 20대 사회 초년생이 벌써 직업을 가지면 정말 노력을 많이 해서 능력이 좋은 사람인 것 같다.
글을 쓰며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의 글을 읽고, 소통하고 있다. 이 또한 인복이 아닐까.
나는 지체장애인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보다 참 엉덩이 힘은 좋은 편이다. 어렸을 때부터 내 또래가 운동장에서 실컷 뛰어다니며 놀 때, 나는 독서를 하며 엉덩이 힘을 길러왔던 것 같아 그게 글을 쓸 때의 집중의 한몫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무래도 움직임에 대한 제한이 있으니 독서, 그림, 서예 등등 참 정적인 취미나 활동을 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 활동들은 가만히 생각하고 있다 보면 창작과 엉덩이 힘이 엄청 필요한 활동들을 20대까지 하고 있으니 내 엉덩이는 참 힘이 세다.
작가가 되기 전에는 공무원이 되고 싶었다. 그 또한 엉덩이 힘이 필요한 직업이다. 공무원 공부를 하다가 노선을 휙-하고 핸들을 꺾어버린 이유는 어렸을 때부터 글 쓰는 것을 참 좋아했다. 소설이든 에세이든 편식하지 않고 글을 썼고 글 속에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멀티 엔터테이너 같은 사람인 느낌이었고, 속에 쌓인 감정들을 쏟아내는 작업이었다. 글을 쓰는 것도 좋아하지만 공무원을 준비하다 보니 지쳐 무기력함을 느껴 지인이 글을 써보는 것을 추천받아 하나씩 글을 쓰다 보니 작가라는 달달한 열매를 먹고 싶은 아이가 되고 싶어 현재는 ‘작가’가 되어있다.
비록 나는 달리기를 할 수 없지만, 다른 사람들보다 평균적으로 독서량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을 반증하는 것은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흔히 말하는 자기 계발서들을 읽기 시작하였다. 또래 아이들이 읽는 소설보다 그게 더 현실적으로 나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였고, 약간 장르를 편식했다.
그 결과 좋은 쪽으로 말하면 단어 습득력이나 생각하는 능력이 또래의 비해 높은 편이었고, 나쁜 쪽으로 말하면 또래 아이들과 소통이 되지 않았다. 사고방식이 그 연령 때와 맞지 않아 항상 어른들과 토론이나 도서 추천을 하는 것이 즐거운 아이였다.
또 다른 결과로는 나는 '애늙은이'가 되었다. 하지만 나름 독특한 무기가 생긴 느낌이라 좋다고 생각하여 지금도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다. 어른이 된 지금은 그래도 깨달음이 있어 책의 장르를 편식하지 않고, 골고루 읽고 있다. 비록 어릴 적에 편식하는 독서를 해서 얻은 것인 창의력과 상상력이 있었기 때문에 학교에서 실시하는 글쓰기 대회에서 상을 많이 수상하기도 하였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비장애인들과 엉덩이 힘은 내가 강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이러한 글쓰기를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들은 적어 내려가면서 장애가 있지만 글을 쓰는 창작의 관점에서 보면 내 또래보다 빠른 두뇌 회전을 갖고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내 경험상 장애를 갖고 있다 보니, 겪지 않아도 될 감정과 에피소드들이 많다. 그것들이 세상에서 하나뿐인 글의 소재가 되어주었다. 한편으론 돈을 지불하고도 경험하지 못할 상상 또한 하지 못할 일이기 때문에 좋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씁쓸한 양가감정의 딜레마가 있긴 하다.
'그러면 어떠하랴 이런 강철 엉덩이가 있는데!!'라고 글 쓰는데 다시 집중을 한다.
내 엉덩이 힘으로 하얀 백지에 글을 썼을 때, 세상을 바꾸는 글, 누군가 피곤한 하루에 힐링 포인트가 되는 글, 혼밥 할 때 친구가 되어주는 작가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