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치부의 양면성.

by 다슬


글을 쓰기로 마음을 먹고선 그 많은 장르 중에 에세이를 쓰면서 나는 나의 ‘치부’를 들어내고 있다. 중증장애이기에 의학적으로는 근로능력이 없다는 점이나 세상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만만하지 않음을 몸으로 부딪히는 일들을 겪어내고 있다. 세상은 냉혹하고 차가운 시선들 마저 ‘아! 어쩌라고!’하며 견뎌내는 법을 터득하여야 됐었다.


강했어야 됐었고, 강해져야 한 했었기에 그것이 내 인생에 한 포인트가 아닌 지속성을 갖고 있는 것이 좀 껄끄럽긴 하지만 내가 내 이야기 중 ‘장애’라는 친구를 빼면 글이 싱거웠으면 다른 일들로 첨가하여 글을 써 내려갔을 것 같다. 그러나 그 텁텁한 조미료 같은 첨가물은 나를 빙자한 소설 같은 일이다. 내 성격, 생각들이 마치 역할놀이를 하는 것 아니었을까. 웃기게도 그렇게 내 장애를 가끔 너무 싫어할 때도 종종 하기도 하지만, 글을 쓸 때는 ‘장애’는 나를 표현하는 것이기에 어느 정도 적당한 소스이기도 하였다.


나다운 소스.


짜지도 맵지도 너무 달지도 않는 내 입맛에 맞는 소스.


그것은 웃기게도 내 ‘치부’로 연결되는 것이 버겁기도 하였으므로 내가 갖고 있는 장애가 때론 힘들었다. 그러나 그 또한 나를 표현을 할 수 있기에 천천히 쓸 수 있게 되었다. 생각을 계속해보니, 에피소드가 굉장히 많았다.

혹자 누구는 <장애>라는 것을 인터넷에 있는 사람이지만, ‘대단하다’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였다. 그러다 보니 점점 익숙해지기 시작하였다. 물론, 익숙해지기까지 너무 고난스럽기도 하였다. 에피소드를 곱씹는 것이 직면하는 일이기 때문에 어려웠다. 신비롭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에세이를 쓰고 있는 나 자신을 보면서도 신기하다.


나의 특수성을 글로 쓸 수 있는 것이기에 한편으로 비장애인이 절대 쓸 수 없는 일을 쓸 수 있기에 나름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아직도 노력 중이다.


글이 아니더라도 지인들이 나를 소개를 시켜주는 자리에서도 ‘내가 장애인이어서 불편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하기도 한다. 예전에는 나의 자아존중감의 문제일 줄 알았는데, 조금 나이가 들고 나서는 ‘사회적 시선’이 어쩔 수 없다고 생각을 한다.


하지만 ‘치부’는 어쩌면 종이 한 장 차이 차이일지는 모른다.


나는 글을 쓰면서 느끼는 것이 치부라고 생각이 들었던 부분들이 나에게 하나의 자양분이 되어 글의 소재가 되는 것에 대해서 ‘치부’에는 양면성이 있다고 본다.


자양분이 되는 부분에서는 나름의 장점이지만, 한 없이 단점으로 나왔다고 느껴졌을 때는 내 글을 연재를 할 때 처음에는 과거의 ‘나’와 지속적으로 직면을 하면서 정서적인 고통과 싸우기도 해야만 했었다. 그러나 계속 직면하다 보니, 글은 하나씩 써내려 가지기 시작하였다. 써 내려가면서도 알몸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처음에는 ‘이게 맞나? 굳이 에세이를 써야 되나’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돌아다녔다. 그러나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서 그런 것일까. 쓰다 보니 나에게 응원과 잘 읽었다는 피드백이 오기도 하였다.


그렇게 피드백을 받은 내 에세이는 점점 단단하고 성장하고 있다.


에세이로 ‘치부’를 보여주지만, 내 치부는 양면성이기에 좋은 쪽으로만 글을 쓰고 싶다.


모든 일에는 양면성이 있기에.

keyword
작가의 이전글없는 길을 개척하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