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리를 작년부터 다이어리를 쓰고 있다. 어렸을 때는 쓰기 싫었던 일기를 성인이 되고 꼬박꼬박 열심히 쓰고 있는 내 모습이 조금은 웃겼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야 일기를 쓰면 좋은 점을 알게 되었다. 내 하루의 감정을 정리할 수 있다는 점, 기록의 뿌듯함, 추억생성, 하루의 반성과 잘한 점을 서술함으로써 같은 잘못은 하지 않으려는 노력을 더 기울일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습관이 되었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일기를 쓰는 것이 미친 듯이 쓰기 싫었던 아이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내 '개인사생활문제'를 쓰는 공간이라는 게 일기이고 이것을 보고 선생님이 '코멘트'를 해준다는 자체가 어느 순간부터 머리가 곤두서도록 싫었다.
나의 어렸을 때부터 루틴은 학교->학원->병원-(정해진 요일)->심리치료(정해진 요일)->집이 끝이다.
병원이야기는 쓸 스토리가 딱히 없다 물리치료를 받는다. 정도랄까? 세세히 쓰자면 이 자세는 코어를 올리는 자세이고, 이 자세는 유연성을 더하여 움직일 수 있는 동작이다. 지금이야 조금 더 깊이 생각할 수 있는 나이가 되어 이렇게 그래도 나열이라도 하지만 이런 세세히 쓰는 것도 쓰기가 싫었다.
심리치료는 다른 의미로 싫었다. 음악치료나 미술치료를 하는데 굳이 엄마가 오늘 내가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엄마께서 묻는 것도 불편한데, 어린 나이에도 상담은 비밀유지가 중요하다고 생각이 들어 당연히 일기에도 쓰지 않았다.
학교에서의 일 딱히 쓸 말이 없다. 쓰자고 하니 선생님의 교육방식을 평가 아닌 평가를 하는 느낌이 들고 내가 만약 선생님이라고 역지사지로 생각을 하였을 때 기분이 좋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학교에서 있었던 일도 쓰기 싫었다. 그리고 나는 아이들과 친하게 지내는 것이 어려운 아이였다. 나는 잘 걷지도 못하는데 아이들은 노래방이나 놀이공원을 다녀왔다. (부모님이나 어른인 보호자 없이 친구들과 놀았다.)라는 것은 나의 입장에서는 꿈 보다 더 꿈같은 일이었기 때문에 그 또한 싫었다. 어른이 되고 다시 생각해 보니 하나의 자격지심이었는지도 모른다. 마치 '난 할 수 없기에 일기에 쓸 수 없으니 일기가 싫다!'라는 심보였다.
가끔 쓸만한 에피소드가 나오는 곳은 학원인데 한 건물에 여러 분야의 학원이 있는 곳인데 나는 영어, 전 과목(영어제외), 피아노 학원을 다녔다. 그래서 피아노 이야기나 영어학원에서 과자파티이야기를 쓰기도 하고, 피아노공연준비이야기 등 등을 쓰는 게 전부였다.
일기를 써도 '피드백'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교사가 학생에게 보내는 적절한 반응이 아니라, 그냥 일기 감상평으로 밖에 안 느껴졌다. 그 속에서도 등급을 받는 느낌이었다.
정말 쓰기 싫은 게 일기에 내 기분이나 나의 행동 일 등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좋은 습관을 길들이기에 도와주는 것이 아닌 나의 프라이버시를 침해받는 느낌이 컸다.
점심시간이나 쉬는 시간에 선생님께 '왜 일기를 써야 하는가?'에 대하여 진지하게 여쭤보았다. 선생님의 답변은 매우 교과서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지금 생각을 해보면 그냥 매뉴얼 같은 것 같다. 구체적이고, 논리적인 이유였다면 진절머리가 나도록 싫진 않았을 것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자기 계발서를 읽거나 인생강연 듣는 것을 좋아했던 나는 선생님의 답변을 듣고 허무해서 계속 나는 소크라테스식 질문만 열심히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반항 아닌 반항으로 시작을 했던 게 일기를 제출을 하되, '왜 일기를 써야 하는가?'와 '일기를 제출하는 것은 학생의 자유를 뺏는 행동이 아닌가'의 대해서만 열심히 썼다.
아직도 그 선생님은 모를 것이다. 다음부터는 이렇게 써오지 말라를 반복하셨으니 하지만 그 글에는 내 심리도 분명 들어가 있었다. 생활에 제한이 많은 사람에게 일기를 쓰라고 할 때 많은 괴리감과 감정이 많이 들어가 있었지만, 지금도 생각해 보면 선생님께 부정을 당했는지도 모른다.
사실 정확히 짚어보자면 내가 일기를 쓰기 싫었던 근본적 원인은 두 가지이다.
첫 째, 내 사생활이 침해받는 것 같아서.
둘째, 아이들과 여가시간에 다른 패턴들 때문에 괴리감과 다름을 받아들여야 되는 것을 알게 되고 그것이 결핍이라는 아이를 낳았다는 것을 자각했기 때문이다.
그 결핍으로 좋은 점을 굳이 생각해 보니 이런 에세이의 소재로 쓸 수 있게 되었다.
지금 와서 짧지만 꾸준히 다이어리를 감정일기 또는 정말 하루의 일기처럼 쓰는 이유는 처음에는 정말 단순 '다꾸'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습관이 들어가면서 자아성찰도 되고, 그 속에서 나를 위로하는 시간 날 돌보며 수고했어 오늘도 토닥토닥거리기도 한다.
딱히 어렸을 때처럼 '정해진 시간에 무엇을 해야 된다'가 있어서 제한이 있고, 생각하면 지금 나름 FM 식으로 살아가고는 있지만 학교라는 공간이 아니기 때문에 나름 효율적, 자율적이다.
스티커로 일기를 꾸미고, 내 다이어리를 보는 사람이 나밖에 없으니 마음이 편하기도 하다. 편하고 나와의 소통을 할 수 있어서 좋다.
일기의 다른 방법으로는 블로그도 뜨문뜨문 쓰고 있다. 그렇게 내 이야기를 조잘거린다.
그렇게 일기가 정말 싫었던 한 소녀는 어른이 되어 일기 쓰는 시간이 편안하고 좋은 어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