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현재 디스토피아를 살고 있는 지체장애인이다. 장애가 있기 때문에 같은 장애라는 공통점을 갖은 사람들과 살고 있다. 나는 우울한 미래상인 디스토피아를 살고 있다. 물론, 내가 미래를 살고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만큼 장애를 갖고 인생을 사는 게 우울하다 표현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살고 있는 디스토피아도 밝고 좋은 방향으로 가기 위하여 정말 사전 뜻인 우울한 미래가 되지 않기 위해 고쳐나가기 위해 하나씩 목소리를 내고 있다. 내가 사는 곳과 다른 비장애인들은 나와 달리 유토피아에 살고 있다. 물론,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상태를 갖춘 사회가 유토피아지만 이 세상에는 완벽한 것은 없기 때문에 유토피아도 공사 중인 곳은 분명하다.
사실상 디스토피아 사람들과 유토피아사람들은 서로의 공간에서 공사 중이고, 이 공간들의 교집합을 찾아서 우리의 공간을 하나의 사회로 만들 계획이다. 하지만 한 번에 디스토피아와 유토피아 사람들을 이해해야 한다. 그 시작은 편견들도 깨부수어야 된다.
유토피아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 ‘다름’을 많이 느껴지고, 나는 유토피아에 사는 사람의 질문에 씁쓸함과 기분이 만감이 교차했다. 내 그런 반응에 대부분의 유토피아에서 온 사람들은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신기한 표정을 지으며 깨달음을 얻는 사람도 있었고, 전혀 이해 안 간다는 표정으로 갸우뚱하는 사람도 있었다.
‘왜 너는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우울해하는 거야?’
사실상 장애와 비장애를 유무를 떠나서 사람이기에 편견은 당연히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우울한 감정만 있다고 할 수 없는 이유는 사회의 편견, 인간관계의 편견, 장애의 대한 스스로의 이해 등 여러 가지 감정이 있기 때문이다. 나 자신 또한 그렇고, 같은 생각이다. 그리고 장애인이 아니라고 우울한 감정을 안 느끼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꼭 장애가 있다는 이유가 우울한 기분이 된다고 생각을 안 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한다.
‘장애를 극복한 사람들 중에서도 성공한 많은데 너는 왜 그래?’
장애를 극복한다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고 생각은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장애는 극복이 되는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장애는 내 인생의 일부분이지 그게 극복이 된다면 현실적으로 몇 년의 세월을 지금보다 더 큰 노력을 해야 되는지 꼭 위인 또는 요즘 자주 나오는 드라마 소재 중 장애인 특히 발달장애인들이 흔히 서번트증후군을 갖은 캐릭터들처럼 무엇인가를 정말 천재적으로 한 분야의 일을 할 수 있다고들 내게 이야기를 한다. 정말 이것은 디스토피아 또는 유토피아를 다 떠나서 현실적으로 보았을 때 서번트증후군은 상위 2%도 안 되는 희귀한 증후군 중 하나이다.
장애인들이 모두가 천재라고 생각하는 것은 정말 머리가 지끈지끈한 일이기도 하다. 이것은 항상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를 괴롭히는 질문이다. 그러면 요즘 뜨는 연예인 중 그 사람은 연기도 하고 다른 특정분야에 특출한 재능을 보인다고 나에게 핏대를 세우며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정말 많은 장애인들이 그렇게 살고 있다고 믿으며 말이다. 과연 그 사람이 태초부터 그 특정분야를 재능이 뛰어나게 됐는지, 그 사람이 후천적인 노력을 해서 그렇게 됐는지 사실상 그 사람만 알 수 있는 부분일 뿐 타인인 우리는 아무도 모른다고 나는 답변을 하며, 약간은 씁쓸해하며 우리는 모두 같은 사람이고 단지 다름이 존재한다고 이야기를 덧붙인다.
유토피아 사람들의 드라마에서는 대부분 든든한 상사 또는 친구, 연인 등 우리가 1차원적인 사회인 가정을 떠나서 정말 사회구성원이 되었을 때 과연 그러한 친구, 상사, 연인을 만날 확률이 얼마나 되는가? 에 대하여 디스토피아 사람들, 유토피아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내게 정신적, 육체적인 도움을 준 선생님께서 ‘내게 좋은 회사를 하려면 너에게 맞는 상사가 있어야 되고, 너를 이해를 하고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라고 내게 말씀해 주신적이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인생이 나에게 맞춘 맞춤정장처럼 내 몸에 맞을 수 있을까? 너무나 현실적인 말에 나는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장애인은 연애든 결혼이든 장애인들끼리 해야 되는 거 아니야?’
이 질문은 무지에서 온 편견이라고 생각이 드는 질문이다. 질문에 많은 의문이 든다. 왜 대체 디스토피아에 사는 사람끼리 연애를 해야 하는지, 결혼을 해야 하는지, 이 질문 자체가 예민한 문제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는지 내게는 하나의 질문이 왔지만 나는 이 질문에 한꺼번에 눈덩이 같은 질문들이 생긴다. 처음으로 내가 이 질문을 내게 한 사람에게 도리어 질문을 던졌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있어?’ 아주 어이가 없고,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상대는 너무나 당연한 표정으로 내게 질문의 대답은 같은 장애인으로서 편안함이 그 이유였다. 만약 편안함이 내가 느낄 수 있는 정말 정당한 사유였으면 나는 드라마에서 나오는 흔한 주인공이 삼각관계를 펼치듯이 내 연애사는 아주 복잡한 관계도 일 것이다. 내 인생의 비중은 장애인이 더 많이 있고, 친밀도 또한 비장애인 보다 깊기 때문에.
일단, 나는 디스토피아사람과 연애 또는 결혼할 생각이 전혀 없다. 왜냐하면 나 또한 몸이 불편한데, 다른 지체장애인이나 지적장애인과 연애를 할 만큼 내 마음은 깊지 않다. 나는 누군가에게 챙김을 받고 사랑을 받고 싶다. 충분히 유토피아의 사는 남자들은 나를 사랑해 주고 다정하며 나를 챙겨줄 수 있는 사람은 많다고 생각한다. 나는 디스토피아 사람하고는 사랑에 빠지는 경우는 나의 경우는 불가능할 것 같다.
‘장애인이면 거의 공짜로 살 수 있는 것 아니야? 나라에서 돈 주잖아’
이 이야기는 주로 정말 유토피아적인 질문이다. 세상에는 공짜는 없다. 이 부분에서 유토피아인들도 장애인은 사회적 약자라고 인정을 하기 때문에 혜택 아닌 혜택을 정책적으로 받고 있는 것이다. 거의 이러한 말을 하는 사람들 ‘장애인연금’을 이야기하는 것인데 연금이 직장 다니는 웬만한 회사원 월급이라고 생각하는 경우, 취직이 굉장히 쉬울 것이라는 경우가 가장 많은데 회사원 월급이면 취직걱정도 안 한다. 그 돈으로 생활이 충분히 가능하지 않으니 디스토피아 사람들은 ‘보호자’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강해졌다. 취직이 쉽다면 이미 모든 디스토피아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취직을 해야 되나 걱정과 치열하게 고민하고 생각하는 일 또한 없지 않을까? 장애연금 같은 경우, 장애상태에 따라 연금이 측정되고, 취직은 장애인고용제도 때문인 것 같은데 제도가 있어도 들어가는 것은 매우 치열하고, 정규직보다는 계약직이 더 많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사실 취업 부분에서 은 디스토피아나 유토피아나 도긴개긴이다.
대화를 했다는 것 자체가 디스토피아 사람과 유토피아의 사람이 더 알고 싶고, 서로에게 대화를 하고 무지에서 벗어나 서로 소통을 하고 싶다는 의미이다. 디스토피아와 유토피아를 나눠서 사는 세상의 시선이 다름을 이해하고 소통하며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고, 서로의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집합은 있기 마련이다. 서로 맞춰나가고 어느샌가 서로의 세계의 공사는 끝나고, 우리가 만든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밝은 사회인재상이 돼있길 바란다.
이 글은 내가 썼지만, 흥미로운 글이라고 생각을 한다. 이 글을 쓸 때 '디스토피아'는 장애인의 시선으로 물론, 부정적 시야로 쓰기는 했다. '유토피아'는 비장애인의 시선에서 쓴 부정적인 시작이지만 두 시선 다 내가 겪어 본 일 들이다. '장애인은-한다.'에서부터 시작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공통적이지만 다른 세상에 존재하며 공존하는 것을 느끼면서 서로 융화되어 잘 지냈으면 하는 마음이 가장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