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나의 집 (4)
이한수 군이 태어난 날, 그의 할아버지는 온 동네에 드디어 우리 이 씨가에도 의사가 났다고 외치고 다녔다. 하지만 의사가 된 것은 옆집에 사는 김요한 군이었다. 둘은 작은 동네에서 매일 어울려 놀았지만, 함께 닌자가 되자고 결의했던 다섯 살의 약속은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잊히기 시작했다.
김요한 군이 반장이 되었을 때 이한수 군은 반의 게시판을 꾸미는 '게시판 담당'이 되었고, 김요한 군이 의대를 목표로 스터디를 시작했을 때 이한수 군은 지루한 체육대회 단체티를 반에서 가장 멋지게 리폼하는 사람이었다. 멋지게 차려입고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건 멋진 일이었다. 열다섯 무렵부터 이한수 군은 패션 디자이너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꾸미기 좋아하는 남자를 친구들은 어려워했다. 공부에 열중하지 않는 아들을 부모님은 이해하지 못했고, 이한수 군은 옷가게 아르바이트를 하며 패션을 공부했다. 친절이다, 이한수 군은 생각했다. 이한수 군은 친절해지기로 했다. 이달의 친절 직원상도 놓치지 않았다. 이 방법밖에 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스물일곱이 되던 해 어렵게 들어간 패션 회사는 돈도 희망도 보이지 않는 곳이었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폭언과 함부로 버려지는 그의 기획안 사이로 이한수 군은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친절이다, 그는 여전히 생각했다. 이 방법밖에는 없다.
이한수 군이 친절하지 않다는 사실은 회사에서 딱 두 명만 알고 있었다. 유일한 또래인 김다미 씨와 유시연 씨. 야근을 마친 어느 화요일 저녁, 셋은 곱창집에 둘러앉아 다혈질 상사 한유미의 험담이 한창이었다.
“아니 솔직히, 자기도 뭐가 그렇게 잘났는데?"
이한수 군의 목소리가 커졌다.
"안 그래? 자기 기획안도 별 거 없잖아!"
험담이라고 하지만 주로 그것을 담당하는 건 이한수 군이었다. 김다미 씨와 유시연 씨는 맹한 얼굴로 몇 마디 거들뿐이었다.
"한수?"
예상하지 못했던 목소리가 불쑥 끼어들었다.
"어, 맞구나? 오랜만이다, 진짜!"
이한수 군은 옆테이블에서 다가온 김요한 군을 올려다보았다. 못 본 사이에 더 훤칠해진 키와 멀끔한 외모, 그리고 누가 봐도 병원에서 잠깐 나온 것 같은 옷차림이 그를 굳게 만들었다.
"누구예요?"
함께 온 동료들이 묻자 김요한 군이 대답했다.
"제 고향 친구요. 패션 디자이너한다는. 맞지?"
"어어..."
김다미 씨와 유시연 씨의 놀란 눈빛이 이한수 군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야... 잘 지냈냐? 진짜 오랜만이다!"
둘은 가벼운 안부를 물었다.
"우리 회사 못 들어봤어? 패션 쪽에서는 나름 알려진 매거진인데. 뭐, 복지도 나쁘지 않고. 일하는 사람들도 좋아. 너도 언제 한번..."
이한수 군이 마르지 않는 회사 칭찬을 늘어놓을 동안 김다미 씨와 유시연 씨는 조용히 곱창을 더 먹었다. 친절이다, 그들은 생각했다. 이한수 군은 역시 친절한 직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