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자리 유시연 씨

다정한 나의 집 (3)

by 다샤

경기도 분당에서 태어난 유시연 씨는 외동딸이다.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천진난만하게 컸으면 좋았겠지만, 그녀는 남동생이 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6살에 홀로 한글을 깨쳤고,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쯤 길을 잃은 금발의 이방인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학구열이 강한 동네에서 그녀는 부모님의 자랑이었다. 열 살이 되던 해 학교 대표로 수학 경시대회에 나갔는데, 유시연 씨는 그날 처음 시험지 앞에서 식은땀을 질질 흘렸다. 수학이다, 그녀는 깨달았다. 유시연 씨는 수학을 못했다.


그렇게 하나씩 포기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특목고에 떨어졌고, 수학 점수가 발목을 잡아 간신히 서울 변두리 대학의 국문학과에 진학했다. 전공 공부는 세상에서 가장 지루했다. 이대로라면 취업도 힘들 것이 분명했다. 공부를 더 하고 싶다는 그럴듯한 말로 대학원에 갔지만 그녀는 결국 6개월 만에 도망치듯 중소기업에 입사했다. 이력서를 넣은 날 출근할 수 있는 곳이었다.


동료 이한수 군이 작고 바쁜 그들의 회사를 험담할 때면 그녀는 말없이 웃으며 커피를 홀짝였다. 그녀의 마지노선을 욕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유시연 씨는 통근 버스에 몸을 실을 때면 습관처럼 오디오북을 켰다. 그녀는 옆자리 김다미 씨에게 어제 듣기 시작한 책을 보여주었다. 양자역학 이야기, 김다미 씨가 소리 내어 읽었다. 그녀는 눈대중으로 본문을 훑더니 맹한 두 눈을 천천히 끔뻑였다. 어렵네요, 그녀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하나도 모르겠어요.


그날 오후, 유시연 씨는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양자역학 이야기를 들으며 김다미 씨의 말을 떠올렸다. 수학이다, 그녀는 깨달았다.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복잡한 수학 계산식은 이제 그녀와 상관없었다. 그녀를 불행하게 할 수 없었다. 더는 포기하지 않아도 되었다. 유시연 씨는 행복했다.


핸드폰이 울렸다. 경기도 분당의 어느 아파트에서 유시연 씨를 기다리고 있는 부모님의 문자였다. 부모님은 갈비 조림을 해놓고 그녀를 기다렸다. 유시연 씨는 그들의 하나뿐인 외동딸이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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