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백수 한보름 씨

다정한 나의 집 (6)

by 다샤

"2800원."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말했다. 험악한 인생의 40대 남자였다. 반말은 불쾌했지만 한보름 씨는 입을 다물고 캔맥주를 집어 들었다.

"아가씨, 대낮부터 웬 술이야?"

남자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여간 요즘 젊은이들, 일은 안 하고 사는 게 힘들다 취직이 힘들다 그 소리뿐이니... 아니, 누군 안 힘들어? 사는 게 다 힘들지 그럼! 아무튼-"

"안녕히 계세요."

한보름 씨는 말허리를 뚝 자르고 재빨리 편의점에서 뛰쳐나왔다.

집 앞 공원에서 캔맥주를 땄다. 한숨이 나왔다. 자신이 백수가 아니라 백수라는 회사에 취직을 한 게 아닌가 싶었다. 잔소리와 꾸지람은 도처에 있었다.


한보름 씨는 의사 면허가 있었다. 병원을 그만둔 뒤로는 꽤 고립되어 있었다. 친구들은 한보름 씨를 백수로 인정하지 않았고, 병원 사람들은 내부고발을 하고 해고당한 한보름 씨와 거리를 두었다. 캔맥주와 공원으로 출근하게 된 지 4개월째. 한보름 씨는 편의점 알바라도 시작해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세요!"

핸드폰 속 진로상담가가 열변을 토했다.

"20대, 30대, 아직 너무 어립니다. 뭘 그렇게 정답을 찾으려고 애씁니까? 지금은 실컷 도전하고 실컷 실패할 때예요!"


한보름 씨에게도 꿈은 있었다. 어릴 때는 마법 소녀가 되고 싶었다. 포지션도 확실하게 정해놨다. 동료들이 다치면 언제든 뒤에서 달려 나가는 힐러. 그래서 의사가 되었는지도 몰랐다. 그렇지만 현실은 마법과는 거리가 멀었다. 악당도 물리치지 못했다.

"메타모르포-제! “

그래서 이번에는 애니메이션을 시청하기로 했다. 백수는 과자를 우적거리면서 마법 소녀가 나오는 애니메이션을 실컷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도 일이다. 직장이었다. 즐겁지 않았다. 이제 그만 퇴근해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백수에게는 그런 해방감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아가씨! 아직도 안 갔어?"

아까 그 진상 편의점 아저씨다. 한보람 씨가 어색하게 웃으며 자리를 뜨려고 하는데 아저씨가 뭔가를 내밀었다.

"가서 먹어. 술만 먹으면 속 뒤집어져."

유통기한이 거의 다 된 건어물을 받아 들고 오는데 눈물이 났다.


그날 저녁에는 한창 인기가 많은 드라마를 봤다. 병원장의 비리를 내부고발했다가 대학 병원에서 해고를 당한 주인공이 동네 백수로 살면서 복수를 준비하는 이야기다. 이제 막 복수를 위해 병원장의 아들이 사는 청담동에 병원을 개업한 참이었다.

"절대 여기서 물러서지 않아."

주인공이 말했다.

"두고 봐. 내가 반드시 복수할 테니까."

오징어를 뜯으며 한보름 씨는 이불속으로 더 파고들었다. 당분간 복수할 생각은 없었다. 앞으로도 생기지 않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런 것에 죄책감을 갖는 것은 백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명백한 업무 외 지시사항이었다.


“선배, 요즘 뭐 하고 지내요?”

후배 김요한 군에게 연락이 올 때까지 한보름 씨는 그렇게 확신했었다. 김요한 군은 한보름 씨가 대답을 고민하는 사이 불쑥 서류 더미를 내밀었다.

“성명서 낼 거예요. 벌써 병원 사람들 서명도 받았어요. 선배 복귀할 수 있게 저희가 최선을 다할게요.”


뭘 기대한 건 아니었다. 병원에 돌아가고 싶은지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보름 씨는 서류를 받아 들고 집으로 향할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휴식이다, 한보름 씨가 생각했다. 이건 휴식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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