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나의 집 (8)
정여사의 반찬가게는 늘 손님으로 북적였다.
워낙 정여사가 마당발인 데다가, 그녀의 손맛은 모두가 극찬할만했다.
정여사가 멸치를 볶으면 그날 저녁 동네 사람들의 식탁에는 멸치 볶음이 올랐다.
정여사가 고구마를 잔뜩 사는 날이면 오늘의 간식은 맛탕이 되었다.
마치 대통령 같았다. 음식 대통령, 이라고 그녀는 호탕하게 말했다. 그녀도 그게 무슨 뜻인지는 잘 몰랐다.
정여사는 유복하게 컸지만, 결혼 이후로는 사업이 망한 남편을 대신해 돈을 벌어야 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정여사를 유일하게 웃게 하는 것은 무럭무럭 자라나는 하나뿐인 아들 조규용 씨였다.
"엄마, 나는 크면 대통령이 될 거야!"
아들이 말하는 건 무조건 좋았다. 내 아들이라면 대통령이든 뭐든 전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들은 자신을 닮아 씩씩하고 사람들을 호령할 줄 알았다. 그땐 미처 남편의 사업 실패까지 닮을 줄은 몰랐지만.
"엄마, 나 집으로 들어가도 돼?"
그 말을 하기까지 아들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다시 뭐라도 하겠다고 나이 40이 넘어 편의점에서 일하기 시작한 모습이 정여사는 그렇게 기특할 수가 없었다.
고마운 아들이었다. 오늘 정여사는 아들이 좋아하는 코다리 무침을 하기로 했다. 손님들이 모두 칭찬하는 메뉴였다. 기분이 좋았다.
"어서 오세요!"
시커먼 옷에 시커먼 모자를 쓴 여자가 들어왔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앳된 얼굴이었지만 주변을 살피고 조심스럽게 반찬을 고르는 모습은 정여사가 생각하는 여대생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가씨, 오늘의 반찬은 코다리 무침이에요. 아, 요즘 도토리묵도 잘 나가는데."
정여사가 말을 걸자 여자는 기겁을 하고 어색하게 고개를 숙였다.
"이, 이거 계산이요."
정여사는 여자가 고른 계란말이를 받아 들었다.
"어머, 벌써? 이것만 사게?"
여자는 입을 다문 채 모자 속으로 시선을 감추었다.
"우리 집 계란말이 맛있지. 아가씨, 먹고 맛있으면 또 사러 와요?"
"... 네."
여자가 내민 돈이 꼬깃꼬깃했다. 정여사는 혼자 사는 사람인가,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보았다. 물어보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렸다.
퇴근길 정여사는 아들에게 줄 반찬을 한 아름 안고 집으로 향했다. 사거리에 있는 체육센터에서 수영 가방을 든 아주머니 대여섯 명이 깔깔거리며 길을 나섰다.
"오 여사, 오늘 접영 잘하던데?"
"형님, 우리 저 빵집가요. 저기가 맛있어."
수다로 가득한 공기 속에서 정여사는 이름 모를 위화감에 잠겼다. 삼삼오오 또래와 어울리며 나들이도 가고 취미 생활도 하고. 정여사는 패키지여행에 다녀오라며 항공권을 내미는 아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다가 이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아들이 어릴 적, 같이 동네 수영장에 간 적이 있었다. 작은 팔다리로 열심히 첨벙거리는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엄마, 엄마! 저거 봐!"
수영장 한쪽에 있는 다이빙 대에서 아이들이 줄을 서서 점프하고 있었다.
"나도 갈래!"
다이빙 대에서 연이어 들리는 풍덩, 하는 소리와 함께 달려 나가는 아들의 뒷모습이 멀어졌다.
"근용아, 조심해서 뛰어!"
정여사는 예전부터 물이 좋았다. 어릴 적 계곡에서 뛰어놀던 기억도 있었다. 정여사가 어릴 적에는 시냇물이 참 맑았다. 꿈틀거리는 내 발가락이 다 보일만큼.
상기된 얼굴의 아들이 다이빙 대에 섰다.
"근용아, 근용아, 여기!"
아들이 손을 흔든다.
풍덩!
꺄르륵,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공기를 채운다. 계곡에서 신나게 놀던 정꽃님 양의 웃음소리도 섞여 들렸다.
꽃님이다, 정여사가 기억했다. 꽃님. 내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