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 소녀 도라미 양

다정한 나의 집 (9)

by 다샤

도라미 양은 강남구 대치동에서 태어나 법조인인 부모님 밑에서 자랐습니다. 깨끗한 아파트와 외제차, 바쁘신 부모님을 대신한 유모와 기사까지. 도라미 양에게는 일상적인 것들이었죠.

부모님은 도라미 양이 원하는 것이라면 뭐든 들어주는 편이에요. 명품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자주 선물 받아요. 초등학교 입학 선물로는 귀여운 몰티즈 망고를 받았어요. 도라미 양에게 가장 소중한 동생이랍니다.

도라미 양은 사립 고등학교의 학생회장이랍니다. 유명 디자이너가 만들었다는 예쁜 교복을 보고 한눈에 반해 선택한 학교는 도라미 양 마음에 쏙 듭니다. 학교에서 가장 친한 친구는 태미라고 해요. 태미는 키도 크고 예뻐서 학생 모델로 활동하고 있어요. 자랑은 아니지만 도라미 양도 귀엽고 예쁘다는 말을 자주 들어요. 두 사람이 같이 지나가면 사람들의 이목을 한 몸에 받는답니다.

완벽 그 자체였던 도라미 양의 일상. 어느 비 오는 날, 다리를 다친 고양이를 집으로 데려와 치료해 주었던 것이 문제였을까요?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어요.

"안녕, 도라미? 난 후르츠 왕국의 호위무사 애플이야."

고양이가 말을 하는 게 아니겠어요! 놀람도 잠시, 옆에서 짖고 있던 망고도 합세했죠.

"도라미.. 나, 사실 후르츠 왕국의 왕자 레몬이야."

힘을 회복한 애플이 마법을 사용하자 번쩍하는 빛과 함께 멋진 미소년으로 변신한 두 사람.

"저주를 풀어줘서 고마워. 네가 아니었다면 마력을 회복하지 못했을 거야."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너희는 누구니?"

레몬과 애플은 후르츠 왕국을 공격한 마왕 아스파라거스를 피해 도망친 것이었죠.

"후르츠 왕국은 쑥대밭이 됐어. 우리 왕국을 되찾도록 도와줄래?"

"내가 어떻게?"

도라미 양은 깜짝 놀라 물었죠.

대답 대신 애플은 마법 반지를 내밀었어요. 작은 루비가 박힌 귀여운 딸기 모양의 반지였죠.

"이 후르츠 반지를 사용해서 변신하는 거야! 마왕의 부하들이 우리를 공격해 올 거야. 그들은 채소를 괴물로 만들어서 인간들을 공격해. 다음 타깃이 너희 고등학교라는 얘기를 들었어. 학교를 지켜줘, 도라미!"

그렇게 학생회장 도라미 양은 하루아침에 학교를 지키는 마법 소녀가 되었습니다. 요즘은 단짝인 태미에게 자신이 마법 소녀라는 사실을 언제까지 숨길 수 있을지 도라미 양은 걱정입니다.

"학생회장 마법 소녀의 비밀! 많이 기대해 주세요..."

타자기를 두드리는 소리만이 작은 방을 채웠다. 김미라 양은 달칵, 하고 업로드 버튼을 눌렀다.

드디어 올렸다. 도전 웹툰 게시판에 업로드된 자신의 만화를 보며 김미라 양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어우, 어깨야. 몇 시지?"

벌써 밖은 어두워진 것 같았다. 아침부터 흐리더니 비가 오는 건지도 몰랐다. 작은 창이 난 원룸에서는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그러고 보니 배가 고픈 것도 같다. 김미라 양은 모자를 눌러쓰고 밖으로 나갔다.

습한 공기가 김미라 양을 감쌌다. 벌써 눅눅해진 검은 티셔츠를 연신 펄럭이며 김미라 양은 커다란 우산을 펼쳤다. 김미라 양은 항상 골프장에서 쓸 것 같은 커다랗고 검은 우산을 쓰고 다녔다. 좁은 인도에서 다른 우산과 부딪히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었다.

늘 가는 반찬가게에 도착하자 김미라 양은 늘 먹는 계란말이를 집어 들고 계산대로 향했다. 코다리 무침이 맛있어 보였다. 주인아주머니가 맛있다고 이것저것 추천하는 반찬을 구경은 했지만 다른 것을 살 생각은 전혀 없었다.

돌아가는 길에 편의점이 보였다. 김미라 양은 집에 남은 두어 개의 즉석밥과 참치캔이 다 떨어지기 전에는 새로 살 생각이 없었다. 음료수나 과자를 살까, 잠시 고민도 했지만 험악한 인상의 아저씨가 계산대를 지키고 서 있는 것을 보니 가까이 가기가 싫었다.

집 앞 상가에 옷가게가 새로 생긴 모양이었다. 잠시 멈춰 섰는데 옷가게 유리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검은 티에 검은 바지, 검은 우산. 좀 웃겼다. 쇼윈도에 장식된 노란 원피스를 보는데 (지금 입은 옷이 해지기 전에는 물론 살 생각은 없었다.) 마법 소녀 도라미 양이 입으면 좋을 것 같았다.

"주말 나들이 룩으로 하자... 흠, 태미랑 쇼핑센터에 갔다가 악당과 마주치는 거야. 악당은... 푸드코트 돈가스집에서 나오는 양상추로 할까?"

참고용으로 몰래 원피스를 찍으려는데 가게 주인이 나오려는 것 같았다. 김미라 양은 재빨리 도망쳤다. 스스로가 웃겨서 웃음이 약간 나왔다.

원룸으로 돌아와서 저녁을 준비하면서도 김미라 양은 이런저런 내용 구상을 해보았다. 꽤 즐거웠다.

"메타모르포-제!"

참고용이라는 핑계로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밥을 먹었다. 한창 집중하고 있는데 전화가 울렸다.

"딸, 공부는 잘하고 있어? 밥은 잘 챙겨 먹니?"

"어어, 당연하지."

"이제 시험도 얼마 안 남았는데 힘들지. 엄마가 돈 좀 더 보내줄까?"

"아냐, 괜찮아. 나 아직 생활비 남았어."

전화를 끊고 김미라 양은 잠시 속이 불편했다. 마법 소녀다, 김미라 양은 생각했다. 마법 소녀가 필요했다.

다시 애니메이션을 재생시켰다. 동작구 노량진동 원룸에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공시생 김미라 양이 아니라, 강남구 대치동에서 사람들을 구하는 마법 소녀 도라미 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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