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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서점 Mar 29. 2024

발행인이 뭐라고



발행인이 뭐라고 


서울식물원에서 겸재정선미술관 쪽을 바라보면 후포마을이 보입니다. 후포는 뒷갯말이라는 말에서 왔습니다. 뒷갯말은 (산) 뒤에 있는 갯가 마을이지요. 일제강점기, 일본 제국이 수많은 우리말 지명을 한자로 바꿔놓은 탓에 말의 뜻과 의미가 사라졌습니다. 그 후로 산업화를 거치면서, 단어와 지명이 담았던 풍경과 환경이 달라지면서 사람들은 종종 의문을 가집니다. 뜻도 의미도 모를 ‘지명’에 관한 의문. 많은 곳이 없으나 있고, 있으나 없는 곳이 되었습니다. 


강서구는 1963년 영등포구로 편입되면서 서울이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김포군이었고 그 이전에는 양천군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강서구는 온갖 지명이 삶 속에 뒤섞여 있습니다. 김포약국, 양서빌딩, 양천로, 양천향교... 길을 걸으며 만나는 수많은 표지판과 간판 속에 이곳이 다른 이름으로 불리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여기가 강서구임에도 양천이라는 단어가 많이 들어간 사실에 의아해하거나 불만을 터트리기도 합니다. 


먹고 사는 일에 치여 잃어가는 것보다 얻을 것을 더 찾아야만 하는 삶의 비루함과 비천함은 ‘잊기’를 좋아합니다. 육하원칙인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는 기사를 쓸 때도 중요하지만 사실을 확인할 때도 중요합니다. 하나씩 찾다 보면 우리가 잊은 것이 무엇이었는지 알게 되니까요. 허울 좋은 것 뒤로 쓰레기가 쌓입니다. 옳고 그르다는 판단, 단정, 타인으로부터 채우려는 인정 욕구가 뒤섞인 욕망 속에서 우리는 중요한 것을 잃고, 잊습니다. 


강서구는 특징이 없다고들 하지만, ‘사회적 혼합’, ‘계층 혼화’라는 뜻을 가진 ‘소셜 믹스’가 그 특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더 나아가 ‘믹스’일지도 모르겠네요. 자의든 타의든 온갖 것이 비벼진 탓에 특징이랄 것이 없다고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그 때문에 더 많은 실험이 필요하고 가능성과 성장을 기대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뒤에 남겨진 사람 없이 걸으려면 느지막하게 천천히 걸어야 합니다. 모두와 함께, 모두를 위한 ‘그 어떤 것’을 위해서는요. 


길가에 핀 들꽃을 보면서 행복을 운운함에 그칠 수는 없습니다. 들꽃과 공존하는 삶과 들꽃의 얼굴, 들꽃의 우주를 만나려면요. 여기서 들꽃은 예술이고 문화, 시민이고 사회입니다. 정답과 해설이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찾아야 합니다. 남의 집 마당에 핀 들꽃을 꺾어 내 집 앞에 심는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 꽃이 피고 열매를 맺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요. 조금 느리더라도 가장 옳은 방법으로. 누구 하나 다치지 않는 가장 안전한 방법으로 말입니다. 


3년 동안 강서 N개의 서울은 이러한 철학과 사고를 밑바탕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계산하고 셈을 따지는 이해가 아니라 타인을 인정하고 헤아리는 이해로, 지역 곳곳에 들꽃을 심는다는 마음으로요. 거친 풀숲을 걷다 보니 몸과 마음에 크고 작은 상처가 생겼습니다. 서울문화재단에서는 항상 강서 N개의 서울이, 다시서점이 문화재단이나 구청에서 해야 할 일을 하지 말고 콜렉티브처럼 움직이기를 바랐지만, 많은 것을 많은 곳에 내려놓고 3년을 보냈습니다. 


마음에 진 빚과 은행에 진 빚이 쌓였지만, 특정 집단의 이권 카르텔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정보를 공유하고 모두가 함께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다시서점에서 받았던 다른 지원사업도 덧붙여 가며 운영했습니다. 내년에는 총괄 PM을 내려놓고 좀 더 뒤에서 지원하고 응원하려 합니다. 강서구를 사랑하면서 미뤄두었던 개인의 삶이 없으나 있고, 있으나 없는 영향력이나 타이틀 따위로 치부되는 것을 보면서 많은 아쉬움을 안고 올해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곧은 길이 있어야 분별이 생깁니다. 사례가 쌓여야 미래가 보입니다. 벼를 빨리 자라게 한다고 벼의 목을 뽑아서는 안 됩니다. 바람직하지 않은 일을 더 심해지도록 부추기지 말고 결과보다는 과정을 단단하게 만들면서 그 무엇이 와도 무너지지 않는 지역의 문화와 예술을 가꿔야 합니다. 사람이 아쉽고, 사회가 아쉽고, 정치가 아쉽고, 예술이, 목숨이, 생각이 아쉽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을까요. 어디로 걸어가며 발자국을 남기고 있나요. 


가엽지 않나요. 물길을 잃어버린 갯가는. 점점 작아지고 깎이는 산은. 새벽마다 마을 곳곳에 덮이며 말의 뜻과 의미를 찾던, 짙은 안개는. 그 거리를 헤매는 인간은. 개가 된 삶은. 삶아진 개는. ‘마곡에는 고고마진이라는 나루터가 있었어요. 어제는 농촌이었고 지금은 산업단지가 되었지만, 엊그제만 해도 어촌이었어요.’ 겸재정선미술관 옆 오래된 건물에 쓰인 ’후포‘라는 글씨를 보며 생각했습니다. 쓰인 글씨는 ’후포‘인데 나는 왜 ’슬퍼‘로 읽는가 하고. 


뜻도 의미도, 공동체와 공존도, 환경과 예술도 자꾸만 다르게 읽힙니다. 말의 뜻과 의미가 자꾸만 다르게 읽힙니다. 다르게 읽는 사람들. 예의 없는 노인과 버릇없는 아이, 그런 삶. 그런 사람들. 자꾸만 슬픔으로 읽힙니다. 맹자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삶도 원하고 의로움도 원한다. 두 가지를 함께 가질 수 없다면, 삶을 버리고 의로움을 택할 것이다. 삶 역시 바라는 바이지만 그보다 더 바라는 것이 있다. 그러므로 구차하게 삶을 구하려 하지 않는다.” 


“죽음 역시 싫어하는 바이지만 그보다 더 싫어하는 것이 있다. 그러므로 환란을 피하려 하지 않는다. 만약 사람이 삶보다 더 원하는 것이 없다면 모두 살기 위한 방법을 어찌 쓰지 않겠는가? 만약 사람이 죽음보다 더 싫어하는 것이 없다면 모두 환란을 피하고자 무슨 일인들 어찌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살 방법이 있어도 쓰지 않는 경우가 있고, 환란을 피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는 삶보다 더 원하는 것이 있고, 죽음보다 더 싫어하는 것이 있다.”



* 2023년 마을소식지 방방 11월호에 쓴 글입니다.



다시서점,

김경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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