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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서점 Mar 29. 2024

소모되는 담론에 관하여


다시서점은 2020년부터 서울시 강서구 지역을 대상으로 한 프로젝트를 진행해왔습니다. 이는 다시서점이 용산구 한남동에서 강서구로 완전히 이전하면서 당면한 강서구 문화예술 환경이 너무 척박한 탓도 있고, 지자체 예산으로 진행되는 사업이 너무 없어서 중앙 예산을 끌어오려고 노력한 부분도 있습니다. 그렇게 4년 가까이 사업계획서를 쓰다 보니 지역에 관한 조사를 많이 하게 되었고 최근에는 지역에서 발견한 문제가 비단 해당 지역만의 문제는 아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먼저, 지역에서 발견하게 되는 문제를 이야기 하기 전에 사람들은 지역, 로컬이라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요. 사람들은 지역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서 태도나 행동도 다르게 느끼는 것 같습니다. 지역에서 프로젝트를 하다보면 왕왕 듣는 말이 "나는 여기가 고향이 아닌데?" 입니다. 저는 강서구에서 태어났지만, 전통적 의미에서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태어나 자란 곳은 강서구가 맞지만, 강서구, 양천구, 영등포구, 마포구, 종로구, 용산구가 제 활동 영역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 조금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여기가 고향이 아닌데?" 같은 이야기는 오히려 이분법적인 사고로 보여요. 지역이 갖는 성질이 지역성이라면, 지역이 왜 지금 이런 모습이 되었는지에 관한 탐구가 선행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일 겁니다. 내 모습을 바꾸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거울을 보듯이 말입니다. 게다가 서울은 서울을 고향으로 한 사람들보다 타 지역에서 이주한 시민들이 대다수를 이루는 곳입니다. 서울에 오래 산 사람들은 "사대문 안이 서울이지."라고들 하지만, 지금처럼 서울이 확장된 건 수도 서울이라는 그릇이 담아야 하는 사람이 많아진 것이기도 합니다. 


서울이라는 그릇에 담긴 사람들은 어떤 삶을 꿈꾸며 서울에서 살아갈까요. 사회와 기술이 발전하면서 시민들은 더 나은 삶을 위한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해방 이후로, 6.25 전쟁 이후로, 민주화 이후로 그 당시 꾸지 못하던 꿈을 현실로 마주하고 싶어합니다. 그 꿈은 정책이나 제도로 나타나기도 하고, 사회 현상으로 대두되기도 합니다. 욕구와 욕망이 나르시시즘적으로 발현되고 현실에 만족하는 방향으로 쌓이는 것을 '행복하다'라고 느낄 수는 있지만, '행복'이라고 정의할 수는 어렵지 않을까요. 사람 사는 게 다 똑같다지만, 사람 사는 세상이 그렇게 단순한 건 아니니까요. 


어떤 이에게 서울은 로컬이 아니라고 여겨지지만, 그건 로컬을 지역으로만 번역한 탓입니다. 로컬은 어떤 곳, 장소일 수도 있고 한 지역이나 부분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요 몇년 간 지긋지긋하게 로컬, 로컬 문화, 로컬크리에이터 같은 말들이 쏟아지는 걸 보면서 이 담론의 끝은 언제쯤일까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이미 10여년 전에, 그리고 그 전에 활동하는 분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매번 듣게 되는 답은 "이미 끝났어."이지만 말입니다. 이미 민간에서 자연스레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정책이나 제도 안으로 끌어들이면 획일화되어 버린다는 이야기지요. 담화하고 논의하는 담론이 아니라, 소모되고 틀에 박힌 유행이 되어버립니다.  


실례로 쏟아졌던 기획기사의 말미에는 언제나 '지속가능성'에 관한 이야기가 따라다닙니다. 언젠가 어떤 자리에서 이에 대한 조소를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지속이 가능하지 못하니까 계속 지속가능성을 이야기한다."라고요. 정부 지원이 끝나면 운영비를 확보하기 어렵고, 지원서를 쓸 때부터 자체적인 수익모델을 만들기 보다 사업의 방향에 맞는 계획서를 쓰기도 하지요. '로컬 크리에이터라고 불리는 많은 사람들이 시장에서 성공했다는 이야기를 별로 들어본 적이 없다'라는 말이나, '사업비 얼마를 들여서 몇 명의 사업을 완수했다'라는 식의 말만 떠도는 건 사실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닙니다. 


연구자들은 이런 모습들을 계속 기록하고 정리해 나갈 거예요. 그 의미를 분석하고 해석하면서요. 하지만 그 연구에서 몇 문장만 쉽고 편하게 떼어 사업화하다 보니 그 누구도 성장하지 못합니다. 이름만 다른, 제품에 들어가는 특산물만 다른, 어디서 본 듯한 사업이 줄을 잇고 박수 치고 사진 찍고 로컬 어쩌구 저쩌구에 그치죠. "저거 누가 했던 거 아니야?", "와, 예쁘게 베꼈네." 같은 대화를 나누다 보면 아무대나 'K'를 붙여대는 것이 오히려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라벨에 K만 붙여 바꿔 달아도 브랜딩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보다 보면 ~리단길 같은 해괴한 말이 유행하는 건 다 이유가 있겠다 싶습니다. 


각설하고, 지역에 관한 이야기가 계속되는 건 흥미로운 일입니다. 저는 사람들이 지역에 관하여 떠드는 이유가 '머무를 곳이 없어서'라고 생각하거든요. 커피숍이 많은 것도 그런 이유 중에 하나가 아닐까요. 사람들은 '고향', '로컬', '지역' 같은 단어에 집착하지만, 저는 사람들이 단어에 집착하거나 스스로를 규정하거나 포장하려는 건 그런 선명한 이미지를 원하고 끌려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사람들이 머무는 '단어'나 '모습'도 있을 거예요. 언어는 의사소통을 위한 도구이지만, 단어마다, 문장마다 상상의 여지가 있는 영역이니까요.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환경이 생길 겁니다. 홍대에 놀러 갔던 이유는 예술가들이 있었으니까, 클럽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전에 그들이 머무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었으니까요. 홍대가 아니라 그 주변 상권이든, 이태원이든 한남동이든, 을지로든. 가치를 발견할 줄 알고 만들 줄 아는 사람들이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자꾸 똑같은 게 아닌 다른 걸 해야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100년 전에도 있던 작업을 또 다른 의미없이 똑같이 하는 건 시대라는 공장이 찍어낸 모나리자 같아서요. (아, 이 모나리자는 전통의 위생기업에서 만든 휴지를 말합니다.) 


지역 담론이 담화하고 논의하는 담론이여서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잘 보여주었으면 합니다. 예술? 부동산?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 자판기에서 콜라 꺼내마시듯이 생각하지 말고요. 언젠가 청년 담론이 온갖 곳에서 쓰이고 소모되는 모습을 보면서 '저들이 말하는 청년이란 대체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누군가가 규정한 담론장 안에서만 뛰놀게 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푯말이 붙은 안전한 놀이터에서 돈돈돈 거리는 돈미새와 돈에 관심 없다는 미친 사람들이 하나의 동물원을 이루는 그 광경을 보면서요.  


요 몇 주 지원사업을 몇 개 쓰려다가 정말 하고 싶은 일만 해야지, 라면서 지워버리고 머릿속을 떠돌던 이야기를 적어봅니다. 여기저기서 논란이 되는 몇몇 크리에이터나 인플루언서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미 10여년전에도 있어 왔던 것이 이제와서 각광을 받거나 기성 세대들이 그들을 대단한 것처럼 치켜세우는 건 기성 세대들이 그만큼 세상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거나 이제서야 그 모습과 문화를 이해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입니다. 10년 정도 시간이 들어야 강산이 바뀐다는 말을 새삼 깨닫게 되는 요즘입니다. 



다시서점,

김경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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