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서는 시간

돌 틈 사이, 통증과 만나다

by 다시 나

통증이 고개를 치켜들 때가 있습니다.

자신의 존재를 증명이라도 해내려는 듯 어깨와 골반을 뚫고 나오는 열감과 고통. 나도 모르게 새어 나오는 신음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모든 걸 내려놓고 통증이 가라앉길 기다리거나, 아니면 눈부시게 쏟아지는 봄볕 속으로 무작정 걸어 들어가는 것뿐입니다.


깊게 호흡하며 내 몸의 감각을 지워내려 애씁니다. 내가 아닌 다른 것, 내가 아닌 다른 생명에 집중하며 그렇게 나는 봄의 한복판으로 들어갑니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겨우 첫 꽃잎을 틔웠던 매화가 주말 사이 일제히 꽃망울을 터뜨렸습니다. 공기는 어느새 달큼한 매화 향으로 촘촘히 채워졌고, 온 동네가 그 향기를 품어 안았습니다. 그 향기 속을 걷다가 내 발걸음을 멈춰 세운 것은 그토록 기다렸던 화려한 매화가 아니라 발밑의 척박한 돌 틈이었습니다.


그곳에 노란 민들레가 고개를 내밀고 있었습니다. 차가운 돌 틈이 머금은 실낱같은 온기를 나누어 가져, 누구보다 먼저 봄을 알리는 꽃. 내가 민들레에게 유독 발길이 잡히는 이유는 그 연약한 존재가 어느새 봄의 영토를 소리 없이, 그러나 무서운 기세로 점령해 버리는 당당한 정체성 때문입니다.


봄의 진짜 주인은 고혹적인 매화도, 숭고한 목련도 아닌, 보도블록 사이를 비집고 올라와 기어이 노란빛을 터뜨리는 저 낮은 민들레 같습니다.



그 강인한 생명력 앞에 허리를 숙이고 멈춰 서서, 눈 맞추며 가만히 들여다보며 지우려 애썼던 내 안의 이름 모를 통증에게 다시 묻습니다.


“너도 이 민들레처럼, 이토록 무섭게 너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냐? 어떻게 하면 너를 껴안고도 무너지지 않을 수 있겠니?”


피할 수 없는 고통 앞에서 무너지고 싶지는 않습니다. 통증이 밀물처럼 밀려들면 한없이 무력해지고 쓸쓸해지지만, 가장 낮은 곳의 생명력과 눈을 맞추며 내 안의 아픔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일은 아이러니하게도 위안이 됩니다.


이토록 무서운 생명력을 닮은 통증이, 어쩌면 내가 살아있다는 가장 뜨거운 증거이기도 할 테니까요.

무시할 수 없는, 어찌할 수 없는 이 아픔을 기꺼이 수락하고 받아들이는 것 또한 이제 나의 선택이 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나는 조금 덜 무력하고, 조금 더 단단해집니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