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피어나는 것들 곁에서
매일 안부를 묻는 나무 몇 그루가 있습니다.
나의 산책은 대략 두 종류로 나뉩니다. 평일 점심 식사 후 사무실 주변의 공원길을 걷는 것과, 주말에 아파트 공원길과 연결된 낮은 산자락을 오르는 일입니다.
평일 점심시간, 누군가는 쏟아지는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시계 초침을 쫓고, 누군가는 달콤한 단잠에 빠져들 때, 나는 나무가 봄을 데려오는 느릿한 속도 속으로 초대받습니다. 매일 같은 길을 걷고 같은 풍경을 만나지만, 그 짧은 시간 속에서 나는 매일 조금씩 다르게 당도하는 봄을 발견합니다.
이번 주 산책길에선 첫 노란 민들레와 인사했습니다. 시작은 연약하지만 머지않아 온 천지를 자기 세상으로 만들 이 작은 꽃의 생명력은 언제 보아도 경이롭습니다.
내가 유난히 애정하는 나무들이 있습니다. 가장 먼저 나를 환호하게 만드는 홍매화, 피었을 때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애를 태우게 하는 청매화, 그리고 긴 겨울 동안 침묵하며 서 있는 목련 나무입니다.
홍매화는 이번 주 드디어 첫 꽃잎을 터뜨렸습니다.
"꺄아악!"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이 천진난만한 감탄사가 내 안에서 터져 나왔습니다. 그 순간, 나는 내가 다시 살아나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봉오리를 머금은 시간은 길었지만, 한 번 터지고 나면 절정으로 치닫는 것은 한순간입니다.
홍매화가 선 자리를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홍매화는 벽에 기대어 서 있어, 봉오리에 머무는 햇살만큼이나 담벼락에 스며든 온기를 함께 나누어 가집니다. 오롯이 혼자 서 있는 청매화보다 담벼락의 온기가 더해진 홍매화가 더 빨리 꽃을 피웁니다.
혼자의 힘보다 함께하는 온기가 더해질 때, 생명은 더 힘차게 깨어나는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돌아보면 나의 겨울에도 나를 지탱해 준 묵직한 담벼락들이 있었습니다. 중환자실 밖을 지키던 가족의 기도, 매일 아침 안부를 묻던 다정한 문장들. 그 따스한 버팀목 덕분에 나는 다시 이 길을 걷습니다.
또 다른 청매화는 아직 꽃봉오리를 단단히 머금은 채입니다.
매일 조금씩 부풀어 오르며, 주말쯤이면 꽃망울을 터뜨릴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주말 동안 첫 꽃잎을 터뜨리는 순간, 누군가가 바라봐주고 기뻐해주길 바랍니다.
“기특하다, 고생했다.”
그렇게 말해주는 이가 있었으면 합니다.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이 오면, 나는 그 나무를 보러 어린아이처럼 먼저 달려갈 것 같습니다. 그 기쁨을 함께 나눌 생각에 벌써 미소가 번집니다.
또 한 그루, 가을부터 봄까지 미동도 하지 않는 목련이 있습니다.
나는 목련의 기다림이 마치 기도처럼 느껴집니다. 겹겹이 쌓인 솜털 갑옷 안으로 여린 꽃잎을 품고 있는 모습은 마치 아이를 품는 엄마의 모습 같습니다.
봄 햇살이 충분히 스며드는 날, 목련은 아주 천천히 꽃잎을 열 것입니다. 그 나무 아래 서 있으면, 나도 모르게 잠시 고요해집니다.
나의 봄 산책은 서두름 없이 이어집니다. 걷고, 멈춰 서고, 눈맞춤하고, 기다리고, 사진을 찍으며 꽃망울이 터지는 순간에 함께합니다. 작은 변화들을 바라보고, 그 경이로운 시간을 조용히 지나갑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걷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