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뒤편에서

오랜 기다림을 즐깁니다

by 다시 나



봄이 오고 있습니다. 봄의 시작은 언제부터일까요. 달력을 넘길 때일까요, 얼었던 강물이 풀릴 때일까요. 돌이켜보면 우리는 한파 속에서도 겨울 이야기보다는 늘 봄을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추위가 조금만 누그러지면 "봄이 오려나 보다" 설레고, 다시 매서운 바람이 불면 "봄은 도대체 언제 오느냐"며 채근했지요.


이 정도면 우리의 간절한 열망이 기어이 봄을 데려오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겨울 속에 꼭꼭 숨어 망설이던 봄도, 자꾸만 자신을 불러 세우는 우리의 목소리에 못 이겨 더딘 걸음을 재촉해 당도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살을 할퀴던 바람이 어느덧 무뎌지고, 단단한 갑옷으로 무장했던 꽃봉오리 위로 햇살이 부드럽게 부서집니다. 이제 곧 꽃이 피겠구나 싶어 마음이 먼저 일렁입니다. 물론 봄은 결코 쉬이 오는 법이 없습니다. 한결 가벼워진 옷깃을 꽃샘추위로 다시 여미게 하고, 서둘러 고개를 내민 꽃들 위로 하얀 봄눈을 짓궂게 흩뿌리기도 하니까요.


봄꽃 위로 봄눈이 나부낀다



지난해 봄, 하얗게 피어난 목련꽃 위로 나부끼던 봄눈은 정말 장관이었습니다. 서둘러 핀 봄꽃이 안쓰럽다가도, 이내 이것이 겨울이 건네는 마지막 작별 인사라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그 겨울, 차가운 병실 창가에서 나는 내내 봄만 불러댔습니다. 그 일이 문득 미안해지기도 했습니다.


봄이 오면 고요했던 아파트 놀이터부터 살아납니다. 겨울 내내 비어있던 그네 위로 아이들이 모여들고, 먼지 쌓이던 시소 위로 아이들의 웃음이 얹힙니다. 동굴 같았던 미끄럼틀 사이로 아이들의 쫑알거림이 매끄럽게 미끄러져 통과합니다.


아이들뿐만이 아닙니다. 내 안에서 침묵하던 수다스러운 생명력도 꿈틀거리기 시작합니다. 오랫동안 움츠렸던 등을 펴고 운동화 끈을 단단히 조여 맵니다. 사뭇 가벼워진 몸과 마음으로 나는 봄의 품속으로 기꺼이 미끄러져 들어갑니다. 햇살을 그러모아 삐죽이 얼굴을 내미는 새싹들, 돌 틈 사이 들꽃들과 멈춰 서서 다정하게 눈을 맞추면서요.







숲으로 접어들면 텅 비어있던 공간이 생명으로 채워지는 경이로운 광경을 만납니다. 나무가 부풀어 오르고 줄기 끝으로 연한 초록색 물감이 번지기 시작합니다. 빈 공간마다 연분홍 진달래가 점점이 수를 놓고, 한껏 오므린 채 꼼짝 않던 봉오리에서 첫 꽃잎이 터져 나오면 그때부터 꽃들의 화려한 계주가 시작됩니다. 첫 꽃잎의 수줍은 등장부터 눈부신 벚꽃 잎의 흩날림까지, 봄은 이토록 찬란하게 눈부십니다.


산책길에서 만난 강아지도 털 위로 쏟아지는 따스한 햇살이 반가운 모양입니다. 경쾌한 그 발걸음은 곁에서 함께 걷는 이의 해묵은 시름까지 다 거두어 줄 것만 같습니다. 흩날리는 꽃잎을 밟지 않으려 지그재그로 걷기도 하고, 때로는 팔짝 뛰었다가 멈추기를 반복하는 나의 발걸음은 어느새 어린아이의 그것을 닮아있습니다.


봄길을 걸으며 생각합니다. 안온하고 아름다운 일상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하고요.

돌봄 없는 아름다움은 없습니다. 해가 길어지면서 거실 깊이 스며드는 봄햇살, 스치듯 지나는 상념들, 동면하듯 웅크렸던 몸을 일으켜 길 위에 서는 것, 걷다가 쏟아지는 봄볕에 몸을 맡긴 채 벤치에 앉아 순간순간 살아있다는 사실과 소박한 일상이 충분히 아름답다고 느낍니다.


봄은 봄볕을 듬뿍 먹고 분주하게 자랍니다. 그리고 지금, 온 힘을 다해 우리를 향해 달려오고 있습니다.

속력을 내는 봄의 뒤편에서, 나는 나만의 느릿한 보폭으로 이 눈부신 계절을 음미하며 걷고 있습니다.


봄을 기다린 누군가의 마음



오래 기다려 만난 봄이니까요.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