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형 인간에 대한 찬사는 끝이 없다. ‘아침형 인간은 저녁형 인간보다 평균 수명이 길다’, ‘같은 80년을 살아도 일찍 일어난 만큼 아침형 인간이 저녁형 인간보다 오래 산 셈이다’, ‘아침형 인간은 저녁형 인간보다 혈관질환이나 유방암에 걸릴 위험이 낮다’, ‘아침형 인간은 저녁형 인간보다 자살시도를 덜 하고, 성관계는 더 많이 갖는다’ 등등 말이다.
회사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자동으로 눈이 떠지는 기능이 발달한다. 눈과 함께 뇌도 깬다. 뇌는 빛보다 빠른 속도로 어제 밀린 업무와 오늘 해야 할 업무 그리고 내일 예정된 업무를 계산한다. 계산 결과는 보통 두 가지다. 첫째, “늦었다”, 둘째, “큰일 났다.”
이미 늦었고 큰일은 났지만 몸은 침대와 헤어질 생각이 없다. 두 팔은 베개를 더욱 거칠게 끌어안는다. 고개를 파묻고 깊은 한숨을 쉰다. 딱 1분만 더. 전쟁터로 끌려가는 학도병과 첫사랑 소녀의 이별 장면보다 진하다. 사실 진한 이별인 건 맞다. 영혼이 몸만 출근시키려니 안쓰러운 마음에 손을 놓지 못하는 것이다. 차마 영혼까지 출근시킬 순 없지 않은가. 무슨 부귀영화를 본다고 영혼까지 출근시키느냐 하는 것이 몸의 오래된 각오였다.
아침밥과 아침 운동은 원래 내일부터 하는 것이다. 오늘 아침은 늘 배고프고, 찌뿌둥하다. 아내가 정성껏 준비한 된장찌개가 유혹하고, 먹는 시간은 채 5분도 안되지만, 7시 58분에 출발하는 지하철을 놓치면 지각 확정이다. 미안하단 말만 남긴 채 뛰기 시작한다.
뛸 때마다 느낀다. 근육은 부족하고 지방은 넘실댄다. 헬스클럽 회원권이 생각났다. 원래 있던 헬스클럽이 망했다. 반도 못 쓴 회원권을 날릴 상황이다. 신장개업 전단지에 적힌 전화번호로 연락했더니, 일단 오라는 활기찬 목소리가 들린다. 그 대답을 들은 게 벌써 두 달 전이다. 한 번도 못갔다.
걸음아 나 살려라
지하철역까지는 눈을 감고도 갈 수 있다. 다른 신경 쓸 거 없이 내달리기만 하면 된다. 발이 여럿 달린 벌레처럼 잘 달렸다. 조금이라도 빨리 가야 한단 생각에 에스컬레이터에 올라탄다. 거기서도 뛴다. 나만 뛰는 게 아니다. 다들 같이 뛴다. 쿵쿵 소리가 공사장에서 쇠말뚝 박는 수준이다. 에스컬레이터가 자주 고장 나는 이유가 있다. 뛰지 말라는 안내문이 허수아비처럼 무능하다.
꼭 이런다. 개찰구가 보이면 지하철은 항상 우리 역에 거의 도착 직전인 것이다. 구원열차는 언제나 나에게 무심하다. 전광판은 이제 막 플랫폼으로 들어오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표시한다. 전력질주하면 간신히 탈 수 있을지 어떨지 간당간당하다. 이 와중에 교통요금 후불카드가 개찰구에서 한 번 걸린다. 삑삑거리더니 1초 후 길을 터 준다. 다시 계단. 걸음아 나 살려라. 잠이 덜 깬 근육은 오른발 왼발도 헷갈린다. 허벅지는 금방 후들거리고 무릎은 시리다. “출입문이 닫힙니다. 안전문이 닫힙니다.” 아슬아슬하게 다이빙 승차에 성공한다. 성공! 축하 안내방송이 들린다. 무리한 승차를 하면 위험하단다. 이 안내방송은 무리한 승차를 한 후에만 들린다. 그것도 또렷하게.
승차 성공의 기쁨도 잠시. 주변 눈초리가 대단하다. 눈으로 하는 욕과 말로 하는 욕은 위력이 같다. 최대한 모른 척 하지만, 나 때문에 밀린 아저씨는 어깨를 거칠게 휘두른다.
“거참, 그만 좀 밀어요!”
아저씨 뒤에 계시던 할머니께서 소리 지르신다.
“내가 밀고 싶어서 밀어요? 막 밀고 들어오니까 나도 할 수 없이 밀린 거잖아요!”
최대한 모른 척 한다. 안 들린다, 안 들린다, 안 들려야 한다.
다음 정거장 문이 열린다. 내렸다 다시 탄다. 내리는 사람들 덕분에 자동으로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다시 타기가 만만치 않은 상황. 승차를 위해 대기 중인 사람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다시 타기 위해 초조하게 기다리며 한 걸음씩 전진하다가 내가 탈 순서에 몸을 싹 돌린다. 엉덩이로 밀고 들어가기 위해서다.
처음에는 살살 민다. 어림없다. 밀어붙인다. 조금씩 가능성이 보인다. 몸 전체가 가까스로 들어가자마자 문이 닫히기 시작한다. 가방이 낄까봐 고개를 숙이고 문이 닫히는 걸 끝까지 지켜본다. 가방은 안전하다. 다행이다. 머리를 든다. 어! 들 수가 없다. 머리카락이 지하철 문에 제대로 끼였다. 지하철은 달리기 시작한다. 덜컹거리면서. 손잡이를 잡지 않았지만 나는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 사람들 속에 파묻혀 있기도 하거니와, 문에 낀 머리털이 제법 많기 때문이다. 아무 일 없다는 듯 계속 가방을 본다. 다음 정거장, 문이 열리고 머리가 해방된다. 몇 가닥 빠졌다. 그래도 고개를 드니 세상 편하다. 목을 뒤로 젖혀보고 옆으로도 돌려본다. 기능을 확인하는 것이다. 잘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