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얘기 같은 남 얘기
우리나라는 지옥과 관계가 깊다. 우선 나라의 별명은 헬조선이다. 헬조선 사람들은 지하철을 지옥철이라고 부른다. 지옥불보다 뜨거운 게 한국의 교육열이다. 학교 가지 않는 아들 걱정에 엄마는 지옥철 틈바구니에서도 전화기를 놓지 않는다. 개인적인 통화라 듣지 않아야 하지만, 워낙 가까워 어쩔 수 없다.
"아들, 일어났어?"
("...")
"그건, 정당한 이유가 아니야. 어서 학교 가야지!"
("...")
"그렇게 자주 학교를 빠지면 어떻게?"
("...")
"엄마가 미안해...... “
지옥철 문이 열린다. 미안한 엄마는 다시 임금노동자가 되어 종종걸음으로 사라진다. 아들의 정당한 이유를 애써 지우면서 말이다. 나는 궁금했다. 아들이 말한 학교를 빠질만한 정당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아들은 왜 학교에 자주 빠질까? 엄마는 왜 미안할까? 두 사람 사이에는 요즘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엄마는 멀어져 갔지만, 엿들은 몇몇 단어들은 바싹 내 옆에 서 있다.
학교에 빠질만한 정당한 이유가 생각난다. 아들은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면 일진들이 오늘까지 마련해 오라고 한 돈을 준비하지 못한 것이다. 얼마 전 아버지 장례를 치른 엄마에게 솔직하게 말할 순 없지만, 결석할 만한 정당한 이유다. 자기 신체와 존엄성을 위험에서부터 구하는 것만 한 정당한 이유가 또 어디 있나. 아버지는 트럭 운전을 하셨다. 야간 운전이 계속됐다. 아버지는 깜빡하시다가 꾸벅하셨고, 다시 돌아오지 못하셨다. 경찰은 그걸 졸음운전이라고 했다. 엄마는 청소 일을 시작하셨다.
엄마가 미안한 이유도 생각났다. 아들이 몇십만 원짜리 겨울 패딩을 사달라고 한다. 자기 빼고 다 입었다고 했다. 학교에 가기 싫단다. 남편을 그렇게 보내고 나니 세상이 지옥으로 변했다. 사고처리도 보험 문제도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어제는 계단 청소를 하다가 미끄러졌다. 허리를 삐끗했는데 몸이 영 불편하다. 일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요령을 부린다며 작업반장이 혀를 찬다. 학원비가 제일 큰 걱정이다. 아들만큼은 번듯한 직업을 가져야 할 텐데. 그때까지 내가 뒷바라지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그게 얼마나 중요한지 살면서 뼈저리게 느꼈다. 이번 달엔 꼭 학원에 보내야 하는데, 미안하다.
나는 한국 사회를 이렇게 상상하고 있었다. 엄마와 아들의 통화 너머로 드러난 우리 사회의 삶은 건강해 보이지 않았다. 그 이유는 본디 내 심보가 뒤틀려 있기 때문일 수도 있고, 드라마나 뉴스를 통해 만들어진 나쁜 이미지가 겹쳐 보인 결과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내 삶도, 이웃들의 삶도 근사해 보이지 않았다. 간신히 올라탄 지하철은 지금 나를 어디로 데려가고 있는 걸까? 이 많은 이웃들은 지금 어디를 향해 뛰고 있는 걸까? 미친 듯 달려 출근하는 내 모습을 누군가 봤다면, 그는 내가 뛸 수밖에 없는 정당한 이유를 뭐라고 상상했을까? 도대체 나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달리는가?
이상한 안내방송
지하철을 한 번 갈아타야 한다. 갈아타기도 달리기의 연속이긴 하지만, 일단 타기만 하면 지하철 운행 시간표대로 가게 되어 있다. 큰 이변만 없다면 지각은 면하는 것이다. 어느 날, 갈아탄 지하철에서 이상한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당신은 혼자 사용하는 사람이 아니오니 다른 사람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아들, 남편, 아빠, 팀원, 친구로서의 마음가짐에 주의해 주시고, 자신의 주장을 말할 때는 되도록 작은 소리로 짧게 해 주시기 바랍니다.”
20년 넘게 회사를 다니다 보니 심사가 더럽게 꼬이고 있는 게 분명하다. 이 나이에 나만의 나를 찾겠다는 건 망상에 가깝다. 작은 소리로 짧게 할 자기주장도 없어진 지 오래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점심 메뉴는 ‘같은 걸로 주세요’다. 그런데도 이 안내방송을 무시할 수 없었다. 물론 나도 안다. 이것은 지하철에서 지켜야 할 통화 에티켓에 대한 것이다. 마음속 목소리가 안내방송을 저렇게 중얼댄 것이다. 이 세상에서 나를 사용할 땐 도대체 어떤 예절을 지켜야 하는 걸까.
갈아타는 지하철 승강장에서 종종 만나는 청년이 있다. 다운증후군 청년이다. 말을 참 재미있게 한다. 이 청년이 친구하고 통화하는 걸 듣노라면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위로 올라간다.
"야! 그렇게 억울한 일을 당했는데, 대통령을 만나야지! 피웅 피웅! 뭐라고? 그렇다면 이제 내가 나서야겠군!"
나도 아침부터 억울한 일을 당했다. 내 억울한 일이 뭐냐고? 나로서 살지 못한 거. 인문학 하는 사람들이 “너는 누구냐?”라고 자꾸 묻는데 뾰족하게 할 말이 없는 거. 누구의 무엇이기 전에 도대체 나란 사람이 있기는 한 것인지 헷갈리는 거. 그런데 이 문제는 대통령도 저 청년도 해결해 줄 수 없을 것 같다. 반드시 나 혼자 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