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닫힌 방-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

by life barista

도대체 화장실을 몇 번 가는 거야!

“다 회사와 직원들을 위한 거라고!"


도난방지, 보안과 안전을 위해 CCTV를 수 십 대 설치하면서 사장이 한 말이다. 사장의 목소리 톤이 높아질수록 직원들의 의심의 눈초리도 비례해 높아졌다. 누굴 바보로 아나? 아니, 사장님은 우릴 바보로 알지 않는다. CCTV는 바보 구경용이 아니다. 방금 큰 소리로 그 목적을 밝히지 않았던가. 도!난!방!지! 사장님은 우릴 도둑으로 안다.


직장갑질119는 CCTV 감시·부당지시와 관련된 제보가 181건(11.4%)이라고 밝혔다(2020년 6월 말 현재 접수된 이메일 제보 기준). 이 숫자는 신원 확인이 가능한 1,588건에서 뽑은 것이다.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불이익 걱정으로 이름을 밝히지 못하는 우리 현실을 감안하면, 실제 CCTV를 통한 직원 감시는 더 심할 것으로 보인다.


값싸고 성능 좋은 카메라는 스마트폰과 연동된다. 원하면 언제 어디서 편리하게 직원들을 감시할 수 있게 된 세상.


현행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하면 CCTV를 통한 직원 감시는 불법이다. 범죄, 화재 예방 등을 목적으로 CCTV를 설치했더라도 이를 설치 목적과 달리 사용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등의 처벌이 가능하다.



그리고 이와 다른 목적으로 직장 내 CCTV를 설치하려면 직원들의 동의가 필요하다. 이럴 때, 늘 문제되는 건 직원들의 ‘동의’를 받았는가 하는 것이다. 과연 누가 "싫어요!"를 외칠 수 있을까 의문이다. 그게 회사에서의 마지막 발언이 될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이 대목에서 공산당이 싫다고 용감하게 외쳤다가 모진 일을 당했다던 반공 신화를 떠올린 사람은 나 하나였으면 좋겠다.


올 초, 사장님의 부인이 경영관리본부장이 되었다. 취임할 때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근무 기강 확립!’을 외쳤다. 그의 주된 업무는 근태 관리였고, 관리 수단은 CCTV였다. 오늘 오후, 그가 카톡을 보냈다.


"김 과장, 당신은 도대체 하루에 화장실을 몇 번이나 가는 거야? 아예 책상을 화장실로 옮겨줄까?"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건


사실 김 과장은 얼마 전부터 시작된 프로젝트에 몰입 중이다. 야근은 물론, 주말까지 나와 일했지만 큰 불만은 없었다. 불만이 없는 이유 중 가장 큰 건 일이 주는 즐거움 때문이었다. 신제품 생산과 판매를 위한 아이디어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경쟁사의 대응과 그에 대한 우리 회사의 반격까지 머리에 딱 그려졌다. 마치 게임을 하는 것 같이 신났다. 입사 후 이렇게 신나게 일했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 사람은 자기 일에 몰입하고 있을 때 놀라운 능력을 발휘할 뿐만 아니라, 강한 행복감도 느낀다고 주장했던 심리학자 칙센트미하이의 이론을 몸소 경험하고 있는 요즘이었다.



놀라운 건 그것만이 아니었다. 경영관리 본부장의 카톡을 받은 후 김 과장은 거짓말처럼 아무것도 하기 싫어졌다. 뛰어난 성과와 행복감은 고사하고 자리에 오래 앉아있어야 한다는 의무감이 목과 허리를 짓눌렀다. 일이 될 리 없었다. 스트레스만 심해졌다. 어쩌다 자리에서 일어날 땐 자신도 모르게 CCTV 감시 사각지대를 찾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바른 자세로 앉아있었지만, 마음과 업무는 비뚤어지고 있었다.


인간은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이 말은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벗어난 익명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나의 이름표를 떼어내고, 이름에 엉켜있는 사회적 가면을 벗고, 나와 내가 순수하게 마주하는 텅 빈 공간. 그 공간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추구하는 자유의 땅인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를 놓고 다른 사람들과 벌이는 거래가 멈추는. 인간의 원초적 자유는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김 과장은 어제 읽다만 책이나 다시 볼까 해서 가방을 뒤적였다. 손에 들린 책은 사르트르의 『닫힌 방』이었다.

이 책은 책 제목이나 내용보다 아래 문장 하나가 더 유명하다.


“지옥은 바로 타인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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