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닫힌 방-타인은 왜 지옥일까

by life barista

『닫힌 방』에 갇힌 인간 군상들


장소는 지옥. 지옥호텔 점원이 손님들을 방으로 안내한다. 『닫힌 방』으로 안내된 사람은 모두 셋이다. 남자 한 명, 여자 두 명. 남자의 이름은 가르생이고, 여자들의 이름은 이네스와 에스텔이다. 이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기 위해선 많은 정보가 필요치 않다. 이들이 무엇을 욕구하는지만 살펴보면 된다. 그것도 지옥에까지 와서 말이다.



욕망의 항아리-유희왕


이네스는 여자 동성애자로 보인다. 모르는 남자와 여자가 자기 침대에서 애무하는 장면을 지옥에서 보며 기겁하며 소리 지른다. 함께 갇혀 있는 에스텔의 마음을 얻기 위해 달콤한 말을 한다. 갇혀 있는 방에는 거울이 없다. 이네스는 자기 눈이 에스텔의 거울이 될 거라며 유혹하지만 결국 실패한다. 가르생과 에스텔이 가까워지자 이네스는 두 사람을 오가며 교묘하게 방해한다. 자기들이 좁은 방에 갇혀 있는 건 모두 다 예정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옥 관리인이 왜 이런 짓을 하는지에 대해서도 나름 파악하고 있다.

에스텔은 생전에 자신의 갓난 딸을 호수에 빠뜨려 죽였다. 남편은 이에 충격을 받고 자살한다. 사실 그녀에겐 남편 말고 사랑하는 남자가 따고 있었다. 그 작자가 다른 여자와 놀아나자 지옥에서도 불같이 질투한다. 그가 그 여자에게 자기 남편의 자살 이야기와 자신이 딸을 죽인 일 등을 다 말했을 거라 짐작하며 절망한다.


에스텔은 가르생과의 사랑을 통해 이런 절망속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그녀의 가르생에 대한 육체적 집착은 대단하다. 그녀는 타자의 육적 욕망이 된 것을 통해 자기 존재를 확인받고자 한다. 끊임없이 몸의 감각을 확인한다. 에스텔은 이네스가 끝까지 자신의 사랑을 훼방한다고 생각해 칼로 그녀를 몇 차례 찌르기까지 한다. 칼이 종이칼인 탓에 실패하지만 말이다. 이네스는 웃음을 터트리면서 놀린다.


“뭐 하니, 뭐 해, 너 미쳤어? 나 이미 죽은 거 잘 알잖아.”


가르생은 반전운동 신문의 주관자였다. 전쟁이 터진 후, 그는 계속 반전운동을 하다가 총살당했다. 그러나 중요한 재판에서 증언을 회피했다. 지옥에서 그는 자신이 비겁한 놈이 아니었다는 걸 인정받고 싶어 한다.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는다고 여러 번 말한다. 증언을 피하고 도망친 것이 마음의 큰 짐이라는 걸 누구라도 아주기 바라듯
말이다.


가로생은 단 하나의 영혼이라도 자신을 용감하고 결백하다고 진심으로 믿어 준다면 구원받을 수 있다고 여긴다. 그에게 필요한 건 자신의 용감과 결백을 믿어줄 사람이지, 비겁한 자신을 사랑해 줄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에스텔에게 자신을 믿어달라고 그토록 애원한다. 그러나 감각을 통해 자기 존재를 확인하려는 에스텔은 이를 끝내 거절한다. 그녀에게 믿음따윈 중요하지 않다.

누군가의 품에 안겨있으면 그만이다.


죽어서까지 타인 앞에서 당당하고 싶은 가르생. 그는 다시 자신을 무조건 믿어 줄 누군가를 찾아야만 한다. 마침내 청동 동상을 들고 지옥의 닫힌 문을 부수려 한다. 그러나 정작 문이 열리자 방을 나가지 않고선 생각에
잠긴다. 생각을 끝냈는지 그는 이렇게 말한다.


“좋아, 계속하지.”




우리는 누구나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어 한다


『닫힌 방』을 읽는 내내, 인간 군상들은 참으로 답이 없다고 느껴졌다. 다른 곳도 아니라 지옥에서조차 사랑, 성적 일체감, 도덕적 명예 회복을 포기할 줄 모른다. 사랑, 성적 일체감, 도덕적 인정에는 공통점이 있다. 혼자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나 말고 남이 필요하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남은, 남이라고 써놓고 노예라고 읽어야 할 판이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알고, 나를 더 사랑하고, 나를 더 인정해주는 그런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런 노예는 지옥, 아니 천국에도 없다.



넘어진 사람 깔고 앉는 고약한 심보로 슬픈 사실을 하나 더 밝힌다. 인간은 자기 노예로부터 듣는 찬사가 거짓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아챈다. 노예는 주인의 손에 죽고 사는 것이 달린 존재다. 그런 자가 나에게 쏟아붓는 사랑과 인정에 감동하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사랑과 인정이란 본래 독립된 인격체가 자유롭게 선택할 경우에만 진정한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잘 안다.


따라서 노예가 제아무리 목숨을 다해 사랑과 존경을 바쳐도, 그게 다 자기 한 목숨 부지해보겠다며 벌이는 쇼라는 사실을 기가 막히게 눈치챈다. 독립되고 훌륭한 인격체의 진심에서 흘러나온 사랑과 인정, 우리가 바라는 건 바로 이런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잘난 남은 나에게 그렇게 호락호락 하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가 쉴 곳은 어디일까?

그곳은 역설적이지만, 아예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게 만들어주는 곳이다. 다시 말해, 노예든 인격체든 그 누구든 나를 바라보는 그 시선 자체가 없는 시공간이다. 나의 부재를 허락하는 곳에서 오히려
나의 존재는 충만해진다. 빼곡한 현실이 아니라, 여백같은 점선으로 나를 겨두는 그곳이 바로 천국이다.


이제 『닫힌 방』이 왜 지옥인지 드러난다. 다른 사람 세 명과 갇혀 있는 닫힌 방이란 곧 나의 부재가 불가능한 곳이다. 나는 늘 그들의 시선 안에 갇혀 있다. 나의 일거수일투족은 낱낱이 노출된다. 나는 지울수 없는 굵은 실선이다. 숨길 수도 없고, 변명의 여지도 없다. 이건 거기 있는
사람 모두 눈을 감고 잊어버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이네스는 이 점을 분명하게 지적한다.


아! 잊어버린다. 참 유치하네요.

난 당신을 내 뼛속에서까지 느끼는데.

당신의 침묵은 내 귓속에서 울려 대고. 당신은 입에 단단히 못질을 하고 당신 혀를 잘라낼 수는 있겠지만,

당신이 존재하고 있는 걸 막을 수 있겠어요? 당신 생각을 멈추기라도 하겠어요?

난 그 생각이 들려요,

마치 자명종 시계처럼 똑딱거리죠.



그렇다. 아무도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멈출 수 없다. 다른 사람이란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걸 자신의 존재 전체로 알아채고 있는 사람이다. 그 사람이 있는 한 나의 모든 말과 행동은 현실이 되고 만다. 그 현실들은 내가 어떤 사람이라는 기초로 만든다. 이제 그 기초 위에서 나는 잘려나가고 편집된다.


망각은 생존에 필수적이다. 우리는 무언가를 잊어버려야 살 수 있다. 그래야 그 크기만큼 새로운 것들을 변화라는 이름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우리가 잊어버려야 할 것 중 가장 큰 것은, 바로 나 자신에 대한 규정이다. 물건 아래 길게 달린 상품평처럼, 나에 대해 남들이 쭉 적어놓은 평가들, 그 평가들에 시달리며 스스로 자기 자신에게 내린 규정들. 이것들이 평생 따라다닌다면, 우리는 내 안에 있는 가능성을 꺼내놓지 못하고 늘 우울과 불안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내가 나를 보는 자아상은 흔히 그릇에 비유된다. 내 자아상이 된장 뚝배기 그릇이라고 해 보자. 여기에 어울리는 음식은 된장찌개나 청국장 등등일 것이고, 이런 자아상과 어울리는 자기 이미지를 갖추기 위해 노력할 가능성이 커진다. 그런데 문제는 세상은 늘 변한다는 점이다.


그 세상 속에는 나도 포함되어 있다. 나 역시 변한다. 어느 날 나는 와인을 담고 싶을 수 있다. 누군가는 나에게서 훌륭한 파스타를 담아내는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다. 와인과 파스타를 아무래도 뚝배기에 담을 순 없는 노릇이다. 나는 된장 뚝배기요, 그렇게만 봐달라고 아무리 애원해도, 세상은 그렇게 돌아기지 않는다. 와인과 파스타를 담아내야 할 때도 있는 것이다.


그때 나는 와인이나 파스타를 담으면 그만이다. 나는 된장 뚝배기인데 큰 일났다고 호들갑 떨 필요가 없다. 나라는 자아상은 사실 그릇보다는, 무엇인가가 옆에 있을 때 켜지는 센서등(sensor Lamp)에 가깝다. 센서등은 주변 관계에 따라 조명의 색깔, 밝기, 크기, 방향이 달라지는 민감한 것이다. 센서등에 변화가 있다면 센서등 자체만 아니라,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 천천히 그리고 꼼꼼하게 살펴봐야 한다. 즉, 와인이 담겨야 한다면 그 주변에 와인이 필요한 상황과 그걸 요구하는 누군가가 옆에 가까이 있다는 걸 알아채면 그뿐이다. 굳이 내가 와인잔이 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 나는 그동안 쭉 뚝배기였는데를 되뇔 필요는 더더욱 없다.



우리는 누구나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어 한다. 그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본성이다. 본성을 나쁘다고 평가해 버리면 세상 살기 어렵다. 다만, 다른 사람의 시선에 얽매여 꼭두각시처럼 손발을 움직인다면 타인이라는 지옥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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