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쩌다 이런 인간이 되었는가 1

김누리, 『경쟁교육은 야만이다』

by life barista

학력 위조


글쓰기 수업 세 번째 시간. 강사는 오늘 또 어떤 질문을 던질까? 나는 그 질문이 몰고 올 지난 경험과 새로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질문과 함께 읽을 책도 궁금했다. 뭔가 쓰기 위해 읽는 건, 단순한 읽기와는 달랐다. 쓰기 위한 읽기는 강사의 말대로, '읽어내기'였다. 읽어내기는 책에 있는 정보를 단순히 저장하는 것을 뛰어넘는다. 읽어내기는 다른 사람의 글로 자기 존재의 집을 짓는 것이다. 그 집에선 같은 세상도 다르게 보인다. 같은 사람에게서도 다른 영혼이 보인다. 이번 달에 나는 또 어떤 세계와 영혼을 만나게 될까.


강사가 들어왔다. 그는 수강생들을 조용하게 훑어봤다. 입을 굳게 다물고 고개를 떨군 채로 담담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부끄럽지만 자신의 학력에 대해 털어놓을 것이 있다고 했다. 나를 포함한 수강생 모두 깜짝 놀랐다. 어떤 사람은 실망스러운 탄식을 내뱉었다. 철학박사라고 하더니 거짓말이었구나. 유명인의 학력 위조 관련 기자회견장처럼 팽팽한 긴장감이 강의실을 휘감았다.


사실 저는 초등학교를 못 나왔습니다.


여기저기서 수근대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은 손으로 놀란 입을 막거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수선한 분위기를 끊고 강사가 말을 이었다.


대신 국민학교를 나왔습니다.


이 말을 이해한 사람은 박장대소했고, 이해하지 못한 사람은 웃는 사람들을 의아하게 쳐다봤다. 고개를 좌우로 돌리던 나는, 옆 사람이 하는 말을 듣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 있는 사람 모두 초등학교 못 나왔어요. 괜찮아요, 그까짓 거 용서해 드릴게요!



세상이 수상하다


강사는 세 번째 질문을 공개했다.


나는 어쩌다 이런 인간이 되었는가?


강사는 농담으로 수업을 시작한 이유를 설명했다. 초등학교란 말에는 학문의 기초를 배운다는 의미가 있다. 반면, 국민학교에는 그 이름대로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 쓸모 있는 국민을 만든다는 뜻이 담겼다. 국가가 원하는 국민 생산! 그랬다. 그때 국가는 대기업이 되려는 영세공장이었고, 나는 그 공장에서 생산되는 상품이었다.


나 자신을 상품으로 생각하니, 국민학교에서 당했던 이런저런 사건 사고가 떠올랐다. 국가를 대신해서 선생님은 나와 친구들을 관리했다. 관리 방법은 경쟁이었다. 우리는 줄넘기, 마루 광택 내기, 운동장에서 잔돌 골라내기, 교실 꾸미기까지 경쟁했고, 우수와 열등으로 분류되었다. 시험은 말할 것도 없었다. 받아쓰기, 쪽지 시험, 월말고사, 중간고사, 기말고사, 학력고사까지 12년 동안 쉼 없이 경쟁했다. 대학에 떨어지면, 유명 단과 학원과 종합 학원에 등록하기 위해 새벽에 긴 줄을 서야 했다. 재수, 삼수, 사수까지 불사했다. 경쟁 결과에 따라 사람 등급이 결정되었다.


이런 학교생활에 적응하면서, 모든 일을 원칙과 상식으로 판단하기보다는, 경쟁의 결과로 여겼다. 경쟁에서 패배한 자책감과 그에 따른 자기 처벌이 일상이 되었다. 경쟁 자체의 공정성과 역효과에 대해선 묻지 않고 어물쩍 넘어갔다. 진 놈이 말도 많다는 소리까지 듣긴 싫었다. 그래서였을까. 대체 누구에게 뭐가 좋은지도 모르면서, 좋은 게 좋다는 말을 참 많이 했다. 감시와 비판이 없었기에 편법과 반칙은 모두 좋은 일이 되거나, 없던 일이 되어 버렸다. 일은 없어졌는데 마음의 상처는 지금까지 쓰리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강사는 수강생들에게 언제부터 세상을 의심하기 시작했냐고 물었다.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께서 먼저 말씀하셨다. 어르신이 열 살쯤 되었을 때, 새마을운동이 한창이었다. 나라를 위한 일이라면서 동네 청년들이 도로 공사에 많이 불려 나갔다. 공사 경험이 있을 리 없던 청년들이 폭파 작업에서 많이 다치고 심지어 죽기도 했다. 그런데, 뉴스에는 다치거나 죽은 사람 이야기는 안 나오고, 새로 뚫린 신작로 이야기만 나왔다. 그게 다 누구 덕분이라며 동네 사람들은 만세까지 불렀다. 어르신은 신작로를 걸을 때마다, 무덤 위를 밟는 것 같아 미안했다. 그 어린 마음에도 이건 뭔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며, 말씀을 마치셨다.


나와 비슷한 연배의 아저씨가 손을 들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전교 1등 하던 놈은 유명한 골초였어요. 공부 못하는 놈들이 담배를 피우다 걸리면 피바람이 불었죠. 그런데 그놈이 걸리면 공부 스트레스가 얼마나 심하면, 저렇게 우수한 학생이 담배까지 피우겠냐며 사랑과 관용의 바람이 불었습니다. 서울대 법대를 갈 수 있는 그놈은 특수계급이었어요. 그 골초는 학창 시절 내내 특권을 누렸고, 그걸 당연하게 생각했어요. 어쩌다 햇병아리 교생이 그놈을 잡아 훈계라도 하면, 그놈은 아직 학교를 잘 몰라서 그런 것 같은데, 교무 주임에게 가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물어보라며 친절을 베풀기도 했어요. 결국 그놈은 서울대 법대에 갔고, 사법고시까지 붙어 검사가 되었단 소문을 들었습니다. 불온하게도 저는, 그 골초를 의심합니다. 특권을 당연한 듯 누렸던 귀족이, 치외법권 지역에 살았던 왕족이, 천민의 인권과 권리를 소중히 보호할 리 없잖아요.



없는 자들만의 신성한 의무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나는 군대에서 겪었던 수상한 세상을 떠올렸다. 1월에 입대한 나는 훈련병 첫 2주 동안 물도 제대로 마시지 못했다. 원래 인간은 오만가지 욕구를 주렁주렁 매달고 사는 법인데, 당시 군대는 젊디젊은 나의 욕구를 갈증 하나로 통일시켰다. 목마른 20대 군인에게 강원도 겨울 산골은 사막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강원도엔 시도 때도 없이 눈이 내렸다. 눈을 두 손으로 가득 담아 퍼먹는 건 당연했다. 제설작업은 일단 갈증부터 해결하고 시작되었다. 그러다가 한두 명씩 배를 움켜잡고 화장실로 뛰어갔다. 눈을 너무 많이 먹어 배탈이 난 것이다. 조교는 설사까지 통제했다. 10초 안에 끝내고 나온다, 실시!


이렇게 6주간 지옥 훈련을 평등하게 마친 우리에게 훈련연대 원사는 이렇게 외쳤다.


집안 친척 중에 장군, 장차관, 국회의원, 시장, 군수 등이 있는 사람은 앞으로!


바로 내 앞에 있던 놈이 눈치를 보면서 앞으로 나갔다. 이후 녀석을 전혀 보지 못해 궁금했는데, 제대하는 날 사단 신고식에서 만났다. 사단장 바둑병이라는 보직을 받아 근무했다면서, 정작 자기는 바둑을 둘지 모른다며 뒤통수를 긁적였다.


집안에 장군, 장차관 등 귀한 분이 없는 훈련병들은 60트럭에 실려 하염없이 강원도 산골로 옮겨졌다. 자정이 거의 다 돼 도착한 자대 연병장엔 2주 먼저 온 고참, 군대 용어로 아버지 군번 수백 명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2월 중순, 여전히 한겨울이라 살을 베는 듯한 겨울바람이 칼 소리를 내며 목덜미를 쳤다. 그럼에도 아버지 군번들의 눈은 분노와 경멸로 이글거렸다. 그들은 토끼를 잡아먹으려는 굶주린 호랑이처럼 으르렁거렸다. 수백 명이 한꺼번에 박수를 치고 함성을 질렀다. 두꺼운 장갑이 마주치는 소리는 수백 개의 북을 동시에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함성을 지를 때마다 하얀 입김이 터져 나오면서, 고참들의 모습은 괴기스러웠다.

선배들의 오싹한 환대가 끝나자, 어김없이 원사가 등장했다. 그는 아무 거리낌 없이 소리쳤다.


너희가 이 야밤에 여기까지 왔다는 건, 너희 집에 돈도 없고, 빽도 없단 뜻이다.


원사님 말씀이 맞습니다, 저희 집엔 돈도 없고, 빽도 없으니 잘 좀 부탁드립니다, 이런 속말이 담긴 쓴웃음이 여기저기에서 들렸다. 나도 두리번거리다 따라 웃었다. 아버지 군번들의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쟤들 웃네, 쟤들 고개 돌리네, 쟤들 미쳤네. 그날 밤, 하늘에 떠있던 수천 개의 별들마저 나를 조롱하는 것 같았다.

고위 공직자 인사청문회를 볼 때마다, 이때가 생각난다. 인사청문회에 나오신 대한민국 초엘리트의 자식들은 한결같이 군대를 면제받거나 외국인이었다. 입만 열면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외쳤던 분들이 어찌된 영문인지 자기 새끼에겐 신성한 일을 맡기지 않았다. 아들 병역 문제로 결국 대통령이 되지 못한 이상한 대쪽 판사도 있었지만, 그 후에도 자기 아들을 현역 군인으로 보낸 고위 공직자는 손에 꼽힐 정도다.


최근에 아들이 논산훈련소를 퇴소했다. 30여 년이 지났지만, 아들도 나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 요즘엔 내가 당한 것처럼 대놓고 족보를 묻지 않는다고 한다. 누구누구의 아들, 조카가 이번에 입소했다는 사실은 IT 시대에 걸맞게 부대가 미리 알고 챙긴다는 것이다. 눈치 없게 해당자들을 따로 불러 이야기하다가, 훈련병들 눈에 들킨 모양이다. 무슨 이야기를 했냐는 질문에, 공통적으로 나온 건 장군 같은 귀족의 계급이었다. 글을 쓰면 쓸수록 세상 참 불공평하단 생각이 든다. 어쩌면 내가 삐뚤어진 사람일지도 모른다. 차라리 내 문제면 좋겠다. 어쩌다 나는 이런 인간이 되었을까.



불평등을 원하는 사람들


강사는 『경쟁 교육은 야만이다』를 읽으면 여러분들이 가졌던 의심이 괜한 것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될 거라고 했다. 이 책의 저자인 김누리 교수의 당부처럼, 비판 의식을 갖고 이 책을 읽길 권했다. 특히, ‘이데올로기’란 단어에 유념하라고 했다. 이데올로기라는 말은 대학 때 많이 들었다. 대자보에 자주 등장한 단어였다. 그땐 왠지 이 말이 공산주의자만 쓰는 단어라는 생각이 들어 거부감이 심했다. 학창 시절 내내, 시험 보고 성적에 따라 등급이 매겨졌던 나로서는, 경쟁 교육이 왜 야만인지, 경쟁 교육과 이데올로기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 좀처럼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책은 불행한 우리 아이들을 살려야 한다는 말로 시작한다. 프랑스, 독일 등 세계 유명 언론들이 한국 교육의 문제점을 강도 높게 비판한다. 어떤 곳은 우리 교육이 인권 침해 수준이라고 했다. 계속해 책은 다양한 연구기관의 설문조사에서 드러난 우리 국민의 의식 수준을 지적한다. 그중 내 눈을 의심케 할 만한 것이 있었다. 우리가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나라에서 살면서, 동시에 가장 불평등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내용이었다.

이 설문(2014년 세계가치관조사)의 정확한 질문은 “당신은 소득이 보다 더 평등해져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차이가 더 벌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였습니다. 이 질문에 대해 한국인들은 ”보다 평등해져야 한다“는 대답이 24퍼센트 반면, ”더 차이가 벌어져야 한다“는 대답이 무려 59퍼센트였습니다. 불평등을 선호하는 이가 절반을 넘는 지구상 유일한 국가였습니다. 심지어 자유시장경제의 나라 미국도 평등이 30퍼센트, 불평등이 36퍼센트의 선호도를 보였습니다.


평등해야 한다라는 수치는 6년 뒤 2020년 조사 결과에선 12%로 반토막이 났다. 반면, 임금 차이가 더 벌어져야 한다는 의견은 65%까지 올라갔다. ‘우리의 양극화 수준은 OECD 최고 수준이다, 따라서 양극화 문제 해결을 위해 우리 모두 나서야 한다.’가 내가 아는 내용의 전부였다. 그런데, 이 설문조사에 나타난 우리의 모습은 더 심한 양극화를 원하고 있었다. 이거 뭔가 잘못 인용된 거 아니야? 의심이 들었다. 뉴스와 통계까지 검색했다. 불행하게도 위 수치는 모두 정확했다. 김누리 교수는 우리가 이런 의식을 갖게 된 이유를 이렇게 진단했다.


불평등에 대한 한국인들의 이러한 태도는 모든 것을 경쟁에서 결판 지워야 한다는 경쟁지상주의의 반영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차별에 찬성한다’는 기이한 현상도 같은 맥락에서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경쟁에서의 승자와 패자는 확실하게 차별적 대우를 받는 것이 정의라고 보는 이상한 사회인 것이지요.


마지막 문장이 마음에 걸렸다. 경쟁에서 이긴 사람과 진 사람을 다르게 대우하는 게 정의 아닌가? 이걸 왜 이상하다고 하지? 오히려 이긴 사람과 진 사람을 똑같이 대우하는 게 이상한 거 아닌가? 나도 모르는 사이 이마는 잔뜩 찡그려졌다.



소수의 생각을 누군가의 현실로


나는 이 책을 여러 번 읽었다. 충격적인 내용이 많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이 책의 저자와 내가 왜 다르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어서였다. 그 이유를 알게 된 건 이데올로기라는 단어를 파고든 뒤였다. 우리가 경쟁 교육의 폐쇄회로에 갇혀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잘못된 생각 때문입니다.


‘경쟁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경쟁은 좋은 것이다. 경쟁이 설혹 문제가 있더라도 그것은 불가피한 것이다. 경쟁이 있어야 발전하고, 경쟁을 통해 성장하는 것이다.’라는 생각들이 한국인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중략) 이처럼 ‘지배적인 잘못된 생각’을 ‘이데올로기’라고 합니다. 조금 학문적으로 표현하자면, 이데올로기란 ‘특정 사회나 집단에서 지배적인 잘못된 관념체계’를 뜻합니다. 그러니까 한국인들은 ‘경쟁 이데올로기’라고 하는 ‘한국 사회에서 지배적인 잘못된 관념체계’에 사로잡혀 있다는 말입니다.


나도 경쟁이 있어야 발전하고 경쟁을 통해 성장한다고 생각한다. 단순한 생각 정도가 아니다. 그렇게 믿는다. 그것이 진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자는 경쟁에 대한 나의 이러한 태도가 경쟁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란다. 저자가 의심스럽다. 그래서 이데올로기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좀 더 찾아봤다.


이데올로기에 대한 의견은 크게 마르크스주의적 관점과 자유주의적 관점으로 구분할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의 핵심 주장은, 이데올로기가 사람들로 하여금 어떤 의견을 현실 또는 진실이라고 믿도록 오도한다는 것이다. 자유주의적 관점의 핵심 주장은, 이데올로기가 전체주의로 빠질 위험이 있으므로 합리적 비판과 끊임없는 검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양자 모두 이데올로기의 부정적 영향력을 경계하고 있다.


현실(現實)이라는 한자를 분석했던 기억이 났다. 현(現)은 왕(王) 또는 옥(玉)과 본다는 의미인 견(見)으로 나눌 수 있다. 왕과 옥은 모두 권력을 상징하고, 견은 누군가의 관점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요컨대, 현(現)에는 권력자의 관점이 담겨 있다. 실(實)은 열매 또는 성과이다. 그렇다면 현실이란 말은 권력자의 관점이 만든 결과물이라는 의미가 된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내가 그동안 ‘이건 현실이야, 어쩔 수 없어, 받아들여야 해’라고 여겼던 것들이 어쩌면 극소수 누군가의 욕심이 만든 세계일 수도 있단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그동안 이런 생각을 단 한 번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경쟁해야만 발전한다’는 주장이 하나의 의견이라면, 나는 왜 그 말에 대해 질문하지 못했을까. 아무도 묻지 않은 탓에 우리 사회는 경쟁 전체주의 사회가 된 건 아닐까? 왜 우리는 학교에서 이런 이야기를 듣지 못했을까?



경쟁시키면 편하다


군대에서 선착순 달리기는 아주 효과적인 훈련이었다. 상급자가 보기에 군인정신이 조금이라도 빠졌다 싶으면, 축구 골대까지 선착순 달리기를 시켰다. 5등까지는 다음 달리기에서 빠지지만, 6등부터 꼴찌까지는 다음에도 계속 뛰어야 한다. 5등에 들기 위해 모두 악착같이 달린다. 하지만 신체조건도, 그날 컨디션도 모두 다르다. 아무리 노력해도 5등 안에 들 수 없는 사람도 있다. 억울했지만 아무도 토를 달지 못했다.


어느 날, 반전이 일어났다. 선착순 달리기는 그대로였다. 나 역시 전력을 다해 뛰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9, 10위권을 맴돌았던 나는 이번만큼은 꼭 해내고 말겠다고 이를 악물었다. 선두권에게는 불운이, 내겐 행운이 찾아왔다. 1, 2등을 다투던 두 친구가 서로 발에 걸려 넘어진 것이다. 그 바람에 선두권이 무너졌다. 덕분에 나는 가까스로 5등을 했다. 지친 나는 안도하며 땅에 털썩 주저앉았다가, 교관의 말에 벌떡 일어났다. 교관은 엉뚱하게도 공평을 들먹였다. 지금까지는 5등 안에 드는 사람들이 쉬었으니, 이번에는 6등 이하가 쉬는 게 공평하다는 것이다. 결국 5등 안에 간신히 들었던 나는 다시 뛰어야만 했다.


그 후, 나는 교관의 심기를 살피는 버릇이 생겼다. 최선을 다해 뛸 것인지, 아니면 속도를 조절할 것인지 눈치를 봤다. 그가 생각한 대로 생각하고, 그가 느끼는 대로 느끼고 싶었다. 어떻게 해서든 그에게 맞춰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바람은 간절했으나 희비는 늘 교차했다. 사실 교관에겐 누가 1등을 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그깟 달리기야 안 해도 그만이다. 그에게 중요한 건, 누가 경기 규칙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지를 나머지 것들에게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김누리 교수는 경쟁 교육이 우리나라에 뿌리내린 이유를 역사에서 찾았다. 그는 교육의 본래 목적을 ‘존엄한 인간, 개성 있는 자유인, 성숙한 민주시민’을 길러내는 것이라고 한다. 말만 들어도 황홀하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우리 교육의 목표는 황국 신민을 기르는 것이었다. 해방 후 이승만 독재와 군사 독재 시절에 우리 교육은 반공 투사와 산업 전사를 기르는 것이었다. 민주 정부가 된 후에는 자본주의의 요청에 따라 인적 자원을 기르는 것이 교육의 목표가 되었다. 요컨대, 역사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는 존엄한 인간, 개성 있는 자유인, 성숙한 민주시민을 제대로 길러본 적이 없었다.


우리의 교육은 누가 주인이고 누가 노예인지를 분명히 보여주는 역할에 충실했다. 일본 제국주의자, 권위주의자와 군인 독재자, 자유시장의 자본가가 번갈아 주인이 되었다. 반면, 조선인, 민주시민, 노동자는 지배당했다. 주인들은 군대 교관이 그랬던 것처럼, 경기 규칙을 마음대로 바꾸면서 누가 지배하고 있는지를 어릴 때부터 철저하게 교육했다. 제일 편한 방법이 노예끼리 경쟁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면 이상하리만큼 시키는 대로 다들 열심히 달렸다. 경쟁이 치열해지면 친구를, 이웃을 서로 밀고 당겼다. 노예들은 누가, 왜 이 경기를 시켰는지 묻지 않았다. 그저 경기에서 이기는 것만 생각했다. 경쟁은 가장 손쉬운 지배 전략이었다.



전쟁 생존자 사회


나는 단 한 번도 시험이 불공정하다고 느끼지 못했다. 자기 반에만 시험문제를 알려준다는 수학 선생님의 소문이 돌았을 때도, 어느 학원에서 우리 학교 최근 시험문제로 특별 수업한다고 해도, 육성회장 아들인 우리 반 반장이 쪽집게 과외를 받아 성적이 껑충 올랐다고 해도, 나는 시험을 믿었다. 등수가 떨어지면, 내 실력이 부족한 탓으로 돌렸다. 더 노력해서 다음 시험에선 보란 듯 좋은 성적을 내겠다고 자기 체면을 걸곤 했다.

내게 시험은 공정했고 결과는 정의로웠다. 따라서 나는 성적이 떨어질 때마다 자신을 혐오하고 처벌했다. 1등 한 아이가 누리는 특권과 오만함을 은근히 부러워했다. 다음 시험까지 패배감과 분노로 잠을 편히 잘 수 없었다. 그렇게 교실은 특권의식과 패배감에 젖은 두 계급으로 나누어졌다. 계급에 따라 부여된 차별을 모두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특권과 차별은 일상이 되었다.


한국에서는 80%가 넘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전쟁터를 경험합니다. 한국은 그런 의미에서 ‘전쟁 생존자 사회’입니다. 전쟁을 겪은 생존자는 일생에 걸쳐 트라우마를 갖게 됩니다. 이 전쟁터에서 살아남은 승자들은 대부분 자신의 능력이 뛰어나 부와 권력을 누린다는 인식, 오만한 엘리트 의식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반면 한국인의 대다수를 이루는 패자들은 인생을 시작하기도 전에 열등감, 무력감, 패배감, 좌절감, 그리고 절망감에 빠져 있습니다.


내가 경험한 죽을 것 같던 열등감을 이보다 더 잘 설명할 순 없을 것이다. 그랬다. 우리는 몰랐지만, 교실에서 우리는 전쟁을 경험했다. 우리는 삶과 죽음을 결정하는 전쟁을 시도 때도 없이 견뎌 냈다. 목숨은 붙어있었지만, 승패에 따라 자존감은 분기탱천하거나 쪼그라들었다. 취업하고 나서도, 인사고과나 승진 경쟁을 벌였다. 숨통을 조여오는 긴장과 불안 그리고 끝도 없는 우울감도 바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 때문이었다. 이대로라면 뭘 해도 행복하기 어려운 정신 상태 아닐까.


학창시절 불행을 내면화한 아이들이 과연 어른이 되어서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을까요? 중고등학교 시절에 한 번도 진정한 행복을 느끼지 못한 아이가 과연 성인이 되면 타인의 행복을 위해 일할 수 있을까요? 이는 한 사회의 정신적 성숙과 건강성과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질문입니다.



내 안에 노예감독관


『경쟁 교육은 야만이다』에는 정곡을 찌르는 말이 많다. 그중 하나가 ‘자신에 의한 착취’라는 말이다.

한국 사회에서 착취의 문제를 극복하기 어려운 이유는 ‘타인에 의한 착취’에서 ‘자신에 의한 착취’로 넘어갔기 때문입니다. 착취가 정치의 영역을 넘어 문화의 영역으로 넘어갔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는 이 끔찍한 자기 착취를 ‘자기 계발’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니 스스로 자기를 착취하지 않는 인간은 불안해합니다.


서점에 가면 자기계발서가 넘쳐난다. 김누리 교수에 따르면 이 책들은 내 안에서 노예 감독관 역할을 한다. 나도 의기소침할 때마다,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낄 때마다, 자기계발서에 매달렸다. 나는 뭐든지 할 수 있다, 나는 이번 달 매출왕도 될 수 있다, 나는 꿈을 실현하는 아침형 인간이다! 요즘은 그나마 자기계발서도 읽지 않는다. 자기계발서도 건강하고 젊을 때 읽는 거다. 사실 나는 잠을 충분히 자야 머리가 정상 작동된다. 이 악물고 노력해서 아침형 인간, 아닌 새벽형 인간을 흉내낼 수는 있었다. 하지만 하루 종일 졸음형 인간을 면할 수는 없었다.


은퇴를 앞두고 초조하고 불안했다. 아무리 자기 계발이 잘 되어 있어도, 늙고 병들면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결국 돈이 문제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제 주식, 부동산, 코인 등 투자안내서만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투자도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었다. 목숨 같은 돈을 상당히 잃고 난 후 선택한 것이 바로 이 글쓰기 수업이었다. 돌고 돌아 다시 나에게로 돌아온 것이다. 돈을 벌기 위해 나를 잔뜩 고무시켜 착취하는 짓을 나는 언제쯤 그만둘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내가 너무 나약하다는 생각이 든다.


독일의 철학자 테오도르 아도르노는 “민주주의의 최대 적은 약한 자아”라고 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자아가 약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공동체는 민주주의를 할 수 없다는 말이지요. 강한 자아를 가진 사람은 당당하게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타인의 의사를 존중하고 불의한 권력에 저항할 수 있습니다.


나는 약한 사람이다. 강한 척했을 뿐이다. 그래서 내 주장을 당당하게 말하지 못해왔다. 분명 잘못된 걸 알면서도 꾹 참았다. 학교에서 봤던 수많은 불의를 잘 참고 견딘 덕에, 나는 사회에서도 불공정과 차별을 잘 참고 견뎠다. 조폭 넘버3가 큰형님께 충성하듯, 나는 나를 지배하는 자들에게 충성했다. 그들이 갑질을 하던, 성차별을 하던 상관하지 않았다.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을 보면 모른 척했다. 괜히 나섰다가 그들 눈에 띄기라도 하면 나도 괴롭힘을 당할까 두려웠다. 나도 지배그룹에 끼고 싶었다. 나도 강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렇게 살다 보니 강한 사람에겐 한없이 약해지고, 약한 사람에겐 한없이 강해졌다.

자본의 입장에서 개성은 ‘오류 가능성’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자본이 바라는 이상적인 노동자는 군소리 없이, 비판 없이 시키는 대로 순종하는 인간입니다. 사유하지 않고, 지배자가 정답이라고 정해준 것을 잘 고르는 인간입니다. 바로 한국 교육이 그런 인간을 길러내고 있습니다.

나는 개성 없는 사람이다. 회색빛 도시에 맞게 무채색 옷만 입었다. 넥타이 하나를 사도 윗분들 표정을 상상하면서 골랐다. 신규 사업과 관련해 의견을 말하라고 하면 책상만 쳐다봤다. 누군가 톡톡 튀는 의견을 말하거나 날카롭게 비판하는 사람을 보면 애써 무시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이 괜히 있는 게 아니라면서 빈정대기도 했다. 그러나 속으로는 그의 창의성이 신기하고 부러웠다. 누군가 내 의견을 칭찬해 주면 행복했지만, 정작 나는 그들에게 그렇게 해주지 못했다.


어쩌다가 나는 이런 인간이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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